‘논란’ 딱지 떼고 ‘아이들 필수 코스’로… 새 수장 맞은 K-레고랜드의 미래 [이코노 인터뷰]
취임 6개월 넘긴 이순규 레고랜드 코리아 사장
전구역이 키즈존…어린이만을 위한 놀이기구로 채워
겨울 휴장 끝에 3월 개장, 놀거리로 본격 현지화 나서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말 많고 탈 많던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레고랜드)가 개장 1년을 맞았다. 레고랜드는 국내 첫 글로벌 테마파크라는 점에서 개장 전부터 화제를 모았지만 여러 난관을 겪으며 위기에 봉착했다. 중도 유적지 훼손 논란부터 지난해 말 경기를 얼어붙게 한 자금시장 경색 파문의 시작점으로 지적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고객들 사이에서도 휴게시설 부족, 가격 논란, 안전 문제 등 부정적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기대와 우려 속에 지난 3월 24일 재개장한 레고랜드. 수렁에 빠졌던 레고랜드를 새롭게 바꿔보겠다며 나선 인물이 있다. 이제 막 취임 6개월 차를 맞은 이순규 사장이 그 주인공. 그는 레고랜드 사장으로 임명되기 전 레드불코리아, 나이키, 삼성전자 등 다양한 기업에서 글로벌 사장 관련 경험을 쌓아온 인물이다.
이러한 경력과 아들 둘을 둔 아빠로서의 경험을 살려 논란의 레고랜드를 아이들의 필수 코스로 만들어 보겠다는 게 이 사장의 목표다. 이제 막 개장 1년을 넘긴 시점, ‘이코노미스트’는 이 사장과 만나 K-레고랜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OFF→ON, 어린이가 움직이는 레고랜드
어린이의,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에 의한 낙원. 이 사장은 레고레드코리아의 정체성은 이 한 문장으로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테마파크의 경우 키 제한 등으로 아이들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잖아요. 이러한 측면에서 100% 어린이를 위한 기구로만 이뤄져 있다는 점이 레고랜드만의 확실한 차별점입니다.”
레고랜드코리아가 추구하는 가치는 ‘어린이가 주도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부모 손을 잡고 따라와 수동적으로 놀거리를 즐기기보다는 무엇 하나라도 더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레고랜드의 시작을 알리는 주체는 어린이들이에요. 매일 아침 10시 방문객 어린이 한 명을 뽑아 오프닝 쇼를 진행합니다. 어린이가 직접 소품을 오프(OFF)에서 온(ON)으로 당기는 세리머니가 끝나면 소소한 파티와 함께 레고랜드가 개장하죠.”
실제로 레고랜드코리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놀이기구의 특징은 단순히 아이들이 기구에 탑승하는 것 이상으로 직접 레고 소품을 활용해 움직이는 활동이 더해져있다는 점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놀이기구 ‘파이어 아카데미’는 인기 구역 레고 시티 안에 위치한 소방차를 이용해 불을 끄는 놀이기구다. 레고캐슬 안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드래곤을 쫓는 놀이기구 ‘드래곤 코스터’, 레고 파이러츠(해적선)에 올라타 상대방 배에 물총을 쏘며 노는 ‘스플래쉬 배틀’ 역시 아이들이 역동적으로 놀이에 참여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이처럼 레고로 가득한 세상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낙원이지만 어른들의 쉼터는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어트랙션(놀이기구·시설)이 주를 이루는 구조 탓에 ‘레고랜드는 부모의 체력훈련장’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겼다.
이 사장은 평소 부모와 단절된 아이들이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놀이의 주인공인 아이가 엄마, 아빠와 다시 한번 찾고 싶은 놀이공원으로 자리잡는 데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미다.
“앞으로 꾸준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다양한 이유로 부모와 단절돼있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알아요. 레고랜드의 가장 큰 목적은 이런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협력하면서 경험을 쌓도록 돕는 거예요. 아이와 협동해 벽을 오르는 ‘멍키 클라이밍’이 대표적 예시죠. 아이와 협동하면서 오래 남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럽과 다른 라이프 스타일, 현지 맞춤 ‘놀거리’로 승부한다
이미 세계 여러 국가에 레고랜드를 조성해놓은 멀린 엔터테인먼트이지만,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던 시설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 한국 시장만의 특징과 지리적 특성, 소비자 정서까지 모두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내놓은 차별화 요소는 테마파크 운영시간이다. 레고랜드의 운영시간은 기본적으로 북미·유럽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져 있다. 외국 어린이들은 저녁 시간인 7시가 지나면 잘 준비를 마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의 어린이들은 저녁 시간을 친구들과 놀거나 학원에 다녀오는 등 활발하게 보낸다.
“한국 어린이들의 생활습관을 반영해서 레고랜드코리아는 4월 말부터 10월까지 주말(금~일요일)에 오후 9시까지 야간 개장에 돌입하기로 했어요. 세계 10개 레고랜드 테마파크 중 최초의 시도입니다.”
한국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탈거리 이상의 놀거리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롯데월드를 대표하는 퍼레이드, 에버랜드를 대표하는 계절별 꽃 축제처럼 별도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이 사장은 매시간 테마파크 내 어디선가는 탈거리 외 볼거리가 마련되는 구조를 만들어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레고랜드가 마련한 해결책은 댄스 파티다. 레고 시티 안에 무대를 설치해 하루 1~2회 어린이를 위한 파티를 열었다. 본격적으로 야간 개장이 시작되면 횟수를 3회로 늘릴 계획이다. 파티는 나이 불문 즐길 수 있는 H.O.T ‘캔디’ 등의 대중가요부터 시작해 방탄소년단(BTS) 음악을 틀어주며 흥을 돋구고, 자체제작 레고랜드 음악으로 마무리된다. 그 순간 아이들은 마치 파티에 놀러온 것처럼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에 몸을 맡긴다.
“한국에 놀러온 영국 레고랜드 임원이 말해줬던 후기가 인상 깊어요. 이러한 방식의 파티를 영국에서 열면 분명 아이들이 부끄러워할 텐데 한국 아이들은 정말 즐거워하는 모습이 놀랍다는 말이었어요. 역시 흥이 많은 민족인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죠.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액티비티의 화룡점정을 찍는 곳은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레고랜드 호텔이다. 호텔은 레고랜드에서의 시간을 완성하는 장소로, 1층 로비부터 방안까지 모든 곳이 레고로 꽉 차 있다.
“테마파크는 통상 아침 10시부터 저녁까지만 운영되는 공간인 반면 호텔은 하루종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전문강사로부터 배우는 레고 수업부터 댄스파티까지 호텔 안에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장치들을 잔뜩 만들어놨죠.”
154개에 달하는 방 하나하나 모두 스위트룸 형태로 구성돼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총 5명이 잘 수 있는 매트리스로 구성돼 있어 아이들이 널찍한 공간에서 편히 쉴 수 있다.
“방 안에 들어가면 카페트에 놓은 황금색 열쇠로 레고로 만들어진 금고를 열 수 있도록 만들어놨어요. 금고 안에 레고랜드만의 선물을 넣어뒀죠. 우리 아이의 첫 ‘방탈출’ 같은 느낌을 선사하는 거예요.”
개장 1주년 맞았지만...과제는 ‘산적’
레고랜드코리아는 지난 5월 5일 개장 1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걸어온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기에 갖은 고난을 딛고 재도약을 선언했다. 업계에선 레고랜드코리아가 과연 국내 대표 테마파크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지 2막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앞으로의 길이 호락호락하진 않다. 레고랜드 호텔 주변을 빙 돌아가면 곳곳에 ‘중도유적과 조상묘소 파괴한 패륜랜드’ 등 자극적인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다수 걸려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레고랜드를 향한 비난 어린 시선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경제적 손실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벗고 지역 자연유산과의 공생에 힘쓰는 것이 레고랜드 앞에 놓인 과제다.
“레고랜드가 중도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아요. 하중도 1/3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죠. 하지만 지역관광과의 시너지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온라인 관광 업체들을 초청해 레고랜드를 케이블카 시설물들과 함께 투어할 수 있도록 루트를 짜고 있어요. 중도개발공사와 레고랜드를 동일시하는 시각 역시 다소 난처합니다. 대중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레고랜드는 재무건전성이 아주 건전한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레고랜드의 모체가 멀린 엔터테인먼트라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에도 장단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다년간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시설의 완성도를 높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점인 반면 글로벌 규정을 국내 환경에 유연하게 적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이 사장에겐 또 다른 숙제다.
이때 빛을 발한 것이 바로 이 사장이 보유한 글로벌 기업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다. 이 사장은 부임에 앞서 멀린엔터테인먼트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세일즈 및 마케팅 총괄을 맡았다. 또 나이키, 펩시콜라, 레드불 등 글로벌 기업의 한국 사장도 역임한 바 있다.
“스스로 ‘중개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본사는 내부 규정과 정책을 전 세계적으로 동일시하고자 하는 니즈가 있는 반면에 한국에는 한국만의 특정한 상황이 존재하잖아요. 그 사이 지점을 조율하는 게 제 역할인 거죠.”
이 사장은 이런 경영 방식을 ‘스틱홀더 매니지먼트’라고 칭했다. 한국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시장에 필요한 요소들을 제때 논의해, 적절한 시점에 지원을 받는 식이다. 결국 국내 소비자의 패턴을 잘 읽고, 글로벌 정책 테두리 안에서 각각의 상황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가 가장 큰 숙제인 셈이다.
“외국계 회사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속도가 매우 중요한 시장이에요. 국내 기업들이 신제품 출시 및 대응 프로세스가 아주 발달해있는 데엔 이런 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레고랜드코리아와 같은 한국의 외국계 기업은 더 공격적으로 소통을 이어가야 해요. 선제적인 접근을 하지 않으면 쉽게 뒤처지기 마련이거든요.”
이 사장은 거듭 레고랜드코리아를 두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소비자와 계속해서 문제점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이를 개선해나가는 단계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추가 투자를 계속해나가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레고랜드의 미션은 한국에 있는 모든 어린이와 가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장소가 되는 것이에요. 레고의 역사가 시작된 덴마크나 가장 오래된 레고랜드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 어렸을 때부터 아이와 함께 방문하는 문화가 형성돼 있거든요. ‘아이가 있으면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박혀 있어요. 이런 장소들을 일종의 롤모델로 삼아 더욱 앞으로 나아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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