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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보험 있으니 세트로 치료 받으세요”…한방진료비 6년새 3배

[의료계vs보험사 전쟁] ② 보험업계 “한방 과잉진료·첩약이 보험료 상승 부추겨”
소비자 10명 중 4명 약 양 ‘많다’…10일 첩약 대부분 버려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윤형준 기자] 교통사고 환자가 한의원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다. 이때부터 한방진료는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적용을 받기 시작했다. 첩약과 탕전료, 약침술, 추나요법, 일부 한방물리요법 등 교통사고 후 한방비급여 치료를 받아도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에서 보전이 가능해 진료비 부담이 없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의원들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교통사고 후 한의원 진료비도 자동차보험에서 보상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 사실을 몰라 정형외과, 대형병원만을 찾았다. 결국 한의원들은 2010년대 초부터 전국 네트워크 가맹시스템을 만들었고 교통사고 환자가 한의원 치료를 받아도 보험적용이 된다는 것을 적극 홍보했다. 지난 몇 년간 교통사고 환자 한방진료비가 크게 뛴 것은 한의계의 환자 유치가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물론 부작용도 감지된다. 자동차보험 보상을 이유로 환자에게 지나친 첩약처방, 과잉진료, 황제병실 등을 권하는 한의원들이 늘기 시작했다. 외상이 아닌 내상 치료라는 이유로 치료를 장기화하고 단순 진료만 받아도 10일치의 고액 첩약을 처방한다.

교통사고 환자만 받아도 많은 돈을 벌다보니 아예 ‘교통사고 전문 한의원’ 간판을 단 곳도 늘었다. 보험업계가 한방진료를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조건 한약은 열흘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한방진료 환자는 2014년 47만5337명에서 2019년 126만8443명으로 약 167% 증가했다. 같은 기간 6%의 증가율을 보인 양방진료 환자 수에 비해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2010년대 들어 한의계가 ‘한방진료비=자동차보험 적용’을 널리 알린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2016년 총 자동차보험 진료비에서 한방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7.7%였지만 지난해에는 58.2%까지 높아졌다. 2021년 기준 전체 의료기관(9만8479개소) 대비 한방병원·한의원의 비중은 15.2%에 불과하지만 교통사고 후 치료에서는 양방보다 한방진료비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한방진료수가가 그만큼 고액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방진료비가 상승한 요인 중 하나는 첩약이다. 한의원이 환자에게 증상이나 부상에 따른 명확한 기준 없이 1회 처방 시 최대 첩약 일수인 10일치를 내려 진료비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지적이다.

자동차보험 첩약 진료비는 2016년 1237억원에서 지난해 2805억원으로, 최근 6년간 2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환자 대부분이 경상환자인데, 이들의 75.9%가 10일 이상의 첩약을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상환자란 교통사고 부상 정도를 나눈 등급인 상해급수 중 12~14급이 해당되는 이들이다. 이 정도 부상일 경우 간단한 외상이 대부분이지만 한의원들이 약재를 10일치를 지어줘 과잉진료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 등 4대 대형 손해보험사의 지난해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한방진료비 평균은 108만3000원으로 처음으로 100만원선을 넘겼다. 66만7000원이었던 2017년과 비교하면 5년 새 62.4%나 증가했다. 양방진료비 평균인 33만5000원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다. 

버려지는 약이 4분의 3

이와 관련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란 시민단체가 2020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통사고 환자 중 처방받은 한약을 모두 복용하는 경우는 25.8%에 불과했다. 환자 4명 중 3명은 10일치 첩약 중 상당 수를 다 먹지 않고 버리고 있단 얘기다.

첩약을 복용하지 않는 이유는(복수응답) ‘귀찮아서’가 28.6%,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22.3%, ‘한약(첩약)을 믿을 수가 없어서(부작용 우려 등)’ 21%, ‘너무 많아서’ 9.6%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또 1회 처방 시 처방받은 첩약의 양이 ‘많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39.7%였다. 1회 처방 시 며칠분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은 결과엔 ‘3-4일’이라는 응답이 25.3%로 가장 높았다.

경기 성남 분당구에 사는 주부 이가영(44·가명)씨는 과거 교통사고 후 한의원 진료를 받았는데, 당시 15일분의 한약 2상자(40봉)를 첩약 받았다. 약값만 30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이씨는 결국 한 상자도 다 복용하지 못하고 30봉 가량을 버렸다. 

이씨는 “병원에서 처음부터 너무 많은 양을 처방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대부분 버렸다”며 “보험금이 나온다고 해서 받았지,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양을 다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환자 10명 중 6명은 첩약처방에 쓰는 비용을 아깝다고 여겼다. 교통사고 치료 시 첩약 비용을 보험사에서 지급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지불해야 한다면 약을 며칠분 받겠는지 질문한 결과 ‘받지 않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60.5%로 과반이었다. 이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셈이다.

‘황제 입원’ ‘세트 청구’…한의진료비 증가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의계가 주장하는 10일치 첩약은 실제 약효 여부를 떠나 소비자들이 효용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한의계의 약짓기가 ‘돈벌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의계는 전문학회의 의견과 동의보감과 방약합편 등 기성한의서에 기재된 처방 등을 충분히 고려해 교통사고 환자의 첩약 1회 최대 처방일수를 1제 단위인 ‘10일’로 투약해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달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토부는 의학적 주장을 무시하고, 보험회사의 이익확대를 위해 첩약 최대 일수를 5일로 일방적으로 줄이려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른바 ‘황제 입원’은 한의원의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힌다. 검색포털 및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교통사고’, ‘입원’ 등으로 검색하면 ‘교통사고 집중 치료’, ‘자동차보험 적용’ 등의 문구를 소개·홍보에 사용하고 있는 한의원들이 다수다. 안마의자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로고가 띄워진 대형 TV,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연출한 입원실 내부를 홍보에 내세우고 있다. 어차피 돈은 보험사가 내니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도 받고 고급 시설에서 쉴 수 있으니 손해 볼 게 없는 셈이다. 

한방진료비가 폭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세트 청구’다. 세트 청구란 환자의 증상과 관계없이 침·구·물리치료·부항·한약 처방 등 한방의 다수 진료항목을 한꺼번에 처방하는 진료행태를 뜻한다. 일부 한방병원에서 증상·상해정도와 무관하게 복합치료가 효과적이라는 명분으로 세트 청구를 권장한 것이 과잉진료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의계 “과잉 첩약, 일부…문제 병원 개선 마쳐”

내상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서 장기 치료를 받는 것도 진료비 상승의 원인 중 하나다. 한의계는 교통사고 환자의 경우 어혈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혈이란 체내 혈액이 제대로 순환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혈을 치료해 교통사고 후유증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어혈치료는 외상이 아닌 내상을 치료하는 진료로 한의원이 병원 홍보 시 가장 중요하게 내세우는 부분”이라며 “전치 몇 주 같은 정확한 외상 진단이 아니다 보니 한의원들은 무조건 장기치료와 과도한 첩약을 권하며 진료비 상승을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다만 한의계는 과잉 첩약·진료는 일부의 사례라고 일축했다. 한 한의계 관계자는 “문제 소지가 있던 병원들은 학계·업계가 협의해 지난해 개선을 마쳤다”며 “환자 진료와 첩약 일수를 명확하게 지키고 있음에도, 보험업계에서 계속 압박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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