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마련 ‘표준계약서’ 실효성 지적 나와 …“웹툰 작가 노동 시간 기준 강화해야”
[웹툰 시장으로 번지는 ‘검정 고무신’ 그림자]④
문체부, 업계 의견 수렴 통해 표준계약서 개정 추진 중
법적 강제력 없어 실효성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가 출판·캐릭터 업체와 저작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겪으며 세상을 떠난 가운데, 최근 정부가 웹툰 창작자 권익 보호를 위한 표준계약서 개정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 작가들의 불공정 계약을 막고자 저작권 관련 교육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겠단 계획이다. 다만 표준계약서의 경우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일 뿐,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월 부처 내 특별조사팀을 설치해 고(故) 이우영 작가가 생전에 출판·캐릭터 업체와 맺었던 계약이 예술인권리보장법에 위반되는지 전면 조사에 착수했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지난 2021년 제정된 법으로 불공정 계약 조건 강요, 수익배분 거부, 표현의 자유 침해, 성폭력 등 예술인 권리 침해를 폭넓게 구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한국만화가협회가 예술인 신문고를 통해 ‘검정고무신’ 계약이 불공정 계약이라고 신고하며 조사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표준계약서 개정에 나선 문체부…법률서비스도 제공
아울러 문체부는 웹툰 업계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불공정 계약과 관련해 이미 지난해부터 ‘웹툰 상생협의체’를 구성했다. 창작자와 업체간 불공정 계약을 개선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상생협의체는 웹툰 창작자와 업계(제작사, 플랫폼), 정부(문체부, 공정위)가 함께 공정한 계약문화 조성을 비롯해 웹툰 분야 상생 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한 소통창구다. 웹툰 등 각 콘텐츠 장르의 상생협의체 운영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콘텐츠 산업의 공정환경 조성에 관한 이행과제에 해당한다.
상생협의체 위원 12명(창작자 4명, 제작사 2명, 플랫폼 2명, 변호사 1명, 학계 1명, 문체부 1명, 공정위 1명)과 객원 위원(회차별 초청 최대 4명)은 2022년 2월 협의체 출범 이후 2022년 10월까지 총 8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문체부는 매달 회의에 앞서 창작자와 업계를 대상으로 사전 간담회 총 10회를 진행해 현장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자 노력했다.
이후 문체부는 2022년 12월 웹툰상생협의체 합의의 결실로 공정거래위원회와 창작자, 14개 만화·웹툰 분야 협회·단체, 웹툰업계 등과 함께 ‘웹툰 생태계 상생 환경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상생협의체는 그동안 창작자가 제시한 ▲매출 관련 정보 공개 ▲수익배분 방식 개선 ▲창작자 저작권 보장 강화 ▲창작자 복지 증진 안건 ▲웹툰 표준식별체계 도입 ▲다양성 만화 진흥 ▲웹툰 불법유통 대응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 개정 안건 등을 균형 있게 다뤘다. 총 8개 조문으로 구성한 상생협약문은 위 안건에 대한 위원 간 합의사항과 제도 개선 계획, 후속 논의 방안 등을 포함했다.
특히 문체부는 올해 표준계약서 개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표준계약서는 오랜 기간 개정되지 않아 현장에서의 적용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업계와 창작자단체, 공정위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전면 개정할 계획이다.
웹툰 작가들은 이번 표준계약서 개정과 관련해 유급 휴재권을 포함한 휴재권 보장, 회차별 컷 수 상한제 등의 내용이 담기길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해 문체부 관계자는 “현재 창작자를 비롯해 웹툰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있다. 새로운 표준계약서 고시 날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계약 방식이 다양해지고 관련 환경이 크게 바뀐 만큼, 표준계약서도 대폭 수정할 계획이다. 창작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산업 발전도 같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문체부는 표준계약서 개정과 함께 웹툰 작가들에 대한 법률지원 서비스도 강화하기로 했다. 이는 저작권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 저작권 계약과 관련해 독소조항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문체부는 지난 4월 한국저작권위원회와 함께 ‘저작권법률지원센터’를 열었다. 서울 용산구 저작권위원회 서울사무소 내에 설치되며, 장르별로 분산돼 있던 저작권 법률지원 기능을 저작권법률지원센터에서 총괄하게 된다. 또한 예술인신문고, 공정상생센터 등 각 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법률센터는 저작권에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 저작권 계약과 관련해 독소조항에 걸리지 않았는지를 면밀히 추적하고, 이를 시정·구제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며 “문체부는 향후 검정고무신 사태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문체부는 한국저작권위원회와 함께 창작자들의 저작권 불공정 계약을 방지하고자 찾아가는 저작권 교육도 실시하기로 했다. 올해 말까지 창작자와 업계 종사자, 작가 지망생 등 약 2000명을 대상으로 총 50회에 걸쳐 저작권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표준계약서 개정, 미봉책에 불과…미사용 응답 비율 46.7%
다만 일각에서는 표준계약서 개정 및 저작권 관련 지원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표준계약서의 경우 어디까지나 가이드라인일 뿐,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표준계약서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작가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2022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만화분야 표준계약서를 인지하고 있는 작가의 비율은 71.6%로 전년 대비 13.0%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표준계약서 참고 여부와 관련된 질문에서 ‘표준계약서 양식 미사용’ 응답 비율이 46.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41.4%의 작가는 ‘일부 계약 조항만 활용한다’고 답했으며, ‘표준계약서 양식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답변은 11.9%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표준계약서가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58.3%였으며, 보통이라고 답한 작가는 12.2%,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한 작가는 29.5%인 것으로 집계됐다.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서는 ‘업계 계약 관행과 달라서’가 51.4%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기타 응답으로는 ‘강제성이 없다’, ‘플랫폼이나 사업체 등에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지 않아서’ 등의 답변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창작자의 저작권을 근본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국회 측에서 저작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웹툰업계 관계자는 “표준계약서가 ‘만능열쇠’는 분명 아니다. 창작자와 플랫폼 양쪽의 입맛을 모두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표준계약서는 창작자 입장에서 이를 활용해 불공정한 계약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표준계약서는 한 번의 개정으로 끝나면 안 된다. 여러 피드백을 통해 계속해서 수정돼야 한다”며 “특히 웹툰 작가들의 과도한 노동이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노동 시간에 대한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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