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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 최고’ 편견 깨부셔야”…이제는 알록달록 보석의 시대 [이코노 인터뷰]

‘화이트 다이아’에 편중된 수요…유색 천연석의 가치 가려져 있어
밀거래 만연한 국내 주얼리 시장, 제도 개편으로 양지 끌어올려야

윤성원 주얼리 스페셜리스트·한양대 보석학 겸임교수가 서울시 한남동에 위치한 주얼리 쇼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서현 기자] “보석으로 소통하는 즐거움.”

‘주얼리 스토리텔러’로 통하는 윤성원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보석학 겸임교수가 내놓은 신간, ‘젬스톤, 매혹의 컬러’의 프롤로그를 시작하는 문구다. 

다소 생소한 주얼리 스페셜리스트는 주얼리와 보석을 연구 또는 컨설팅하고, 브랜드나 소비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등 보석과 관련한 모든 것을 다루는 일을 한다. 윤 교수는 뉴욕에서 보석 감정, 디자인, 세공을 공부한 뒤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석사과정 학생들을 8년째 가르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VIP 고객, 직원들에게 하이주얼리를 교육하는 것도 그의 주요 업무다.

궁극적으로 그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불모지에 위치한 주얼리 시장을 더 많은 이에게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형형색색, 다이아몬드와 다른 유색석만의 매력

지난달 20일 발간된 윤성원 교수의 신간, ‘젬스톤, 매혹의 컬러’. [사진 신인섭 기자]

윤 교수가 이번 신간을 내놓은 목적은 간단명료하다. 다이아몬드에 매몰돼있을 뿐 아니라 천연석이 아닌 '인공 큐빅'에 열광하는 국내 시장 수요에 맞서 유색 천연석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얼리 시장에는 화이트 다이아몬드만이 최고라는 편견이 단단히 자리잡혀 있어요. 백의 민족이라 불리는 전통부터 튀기 싫어하는 민족성, 보편화되지 않은 파티 문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줬죠. 그래서 유색 보석의 가치가 충분히 알려져있지 않아요. 심지어는 4대 보석(다이아몬드·루비·사파이어·에메랄드)을 제외한 토파즈 등은 잡석으로라고 여기는 경우까지 있죠.”
 
보석 원석(젬스톤)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색상 하나하나에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녹아있고, 그것이 보석 고유의 형체와 합쳐져 높은 가치를 이끌어낸다. 오랜 세월 땅속에서 자란 자연의 신비로움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자연은 다소 정신없는 주방에서 젬스톤을 만들어요. 이때 들어가는 소량의 화학원소가 색을 미묘하게, 또는 확연히 차이 나도록 바꾸죠. 다이아몬드는 통상 색상·투명도·컷·캐럿(4C) 네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평가해야 하는 반면 유색 보석은 색상이 가장 중요해요. 적당히 밝고 비비드한 색이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크리스티 5월 경매에 출품된 선라이즈 루비 보석. [제공 윤성원 교수]

그가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보석은 다름 아닌 ‘더 선라이즈 루비’다. 현재 최고가 루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보석으로 5월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바 있다. 25캐럿에 가장 아름답다 평가받는 피전 블러드색을 띠고 있으며 원산지는 버마(미얀마)다.

해당 보석은 현재 글로벌 주얼리 업계에서 가장 큰 화제다. 나치 독일에 부역하면서 부를 쌓은 독일 사업가의 부인인 칼렉터가 소유하던 보석이라는 점에서다. 보석은 사실 여부를 떠나 긍정 또는 부정적 스토리가 가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낙찰 결과에 귀추가 주목됐다. 보석은 한화 약 187억원에 낙찰됐다.

“지난 2018년 소더비 제네바 경매에서 412억원에 낙찰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진주 펜던트를 알고 계신가요? 이 펜던트를 소장하고 있던 소장자가 지난해 사망했거든요. 그 유품이 이번 경매에 나온 거예요. 다시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면 실물로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비행기를 타고 가서 직접 보고 왔죠(웃음).”

변화무쌍 주얼리 시장, 글로벌 트렌드 발맞추려면  

지난달 신세계 강남점에서 열린 랩다이아몬드 브랜드‘어니스트 서울’팝업스토어에 손님이 방문해 제품을 착용해보고 있는 모습. [사진 신세계]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처럼 주얼리 시장 역시 사회 트렌드와 맥을 같이 한다. 가장 최근 화두로 떠오른 것은 ‘랩그로운(Lab grown) 다이아몬드’다. 연구실에서 고온고압 또는 화학기상증착 방식으로 생산한 인공 다이아몬드로, 친환경적으로 제작된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그 과정에서 지속가능성과 윤리적 채굴에 많은 관심을 보이던 MZ세대와 수요가 맞물리면서, 수요가 폭증했다. 

장기간 이어진 코로나 국면에 마음에 안정을 주는 블루, 그린 계열 색상이 새롭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또 최근 하이엔드 레벨에서는 처리되지 않은 전통보석이 특유의 비비드한 색상을 자랑하며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또 주목해볼 만한 점은 최근 진주목걸이가 젠더뉴트럴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에요. 진주가 유행하지 않은 적은 없지만, 이제는 남자까지 합세해서 그 어느 때보다 진주의 인기가 높은 추세에요. 세계 최대 패션 자선행사 ‘멧 갈라’에서도 그 존재감을 톡톡히 뽐냈죠.”

이처럼 사회의 흐름과 맞물려 돌아가는 글로벌 시장과 달리 국내 시장은 다소 경직돼있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나라 주얼리 시장의 역사는 타 국가에 비해 심히 짧다. 지난 1960년대 이후에 들어서야 부유층을 중심으로 보석을 소유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났고, 보석을 향유하는 문화가 없다보니 그마저도 새하얗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에 편중됐다. 

“우리나라 주얼리 시장만이 가진 특이점이기도 한데요. 값비싼 다이아몬드에 대한 수요가 크다 보니 이를 싼값에 모방한 ‘큐빅’에 눈길이 쏠린 거죠. 이런 식으로 ‘사는 것만 사는’ 문화가 팽배하다 보니 ‘파는 것만 파는’ 관행이 자리잡게 됐어요. 국내 주얼리·보석 시장의 아직까지 턱없이 작은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죠.”

윤 교수는 국내 보석 시장 앞에 놓인 과제는 제도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내 보석 가공 기술에 대한 평가가 좋은 반면, 보석이 ‘사치성 소비재’라는 인식에 시장의 발목이 잡혀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주얼리를 대상으로 매겼던 비현실적 과세 때문에 아직까지도 음성(현금)으로 거래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아요. 국내 주얼리 시장 규모가 공식적인 수치로 봤을 때는 6조 수준이지만 실제로는 15~20조에 달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죠.” 

지난 1990년대까지 주얼리 산업은 수입금지, 대출제한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70% 이상이 매출신고를 누락하는 기형의 모습을 띠게 됐다. 관세, 특별소비세, 부가세 등 40%가 넘는 세금을 부과하면서 밀거래가 성행하게 된 것이다.
 
“보석 거래 구조를 양지로 끌어올리려면 제도 개편이 필요해요. 종로 귀금속 거리에서 일하는 상인만 해도 워낙 영세해요. 그렇다 보니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거죠. 기본적인 기술지원, 금융지원, 행정지원조차 안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예요. 종국적으로 오랜 시간 자본을 들여 브랜드를 육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려면 정부의 기술개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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