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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검증 의뢰 쏟아지는 한국부동산원 “난감하네”

[공사비가 뭐길래] ③ 공사비 검증 제도, 추가 공사비 검증 법적 강제성 없어
직접 공사비 제외한 파업 등 간접비는 검증 대상서 제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박지윤 기자] 치솟는 공사비로 정비사업 현장에 공사 중단, 시공사 교체까지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합의점을 찾기 위해 한국부동산원(부동산원)을 찾는 조합과 시공사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원이 수행하는 공사비 검증제도는 권고사항일 뿐,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공사비 갈등 문제 해결에 대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원에 의뢰한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건수는 총 32건을 기록했다. 2021년 22건에서 1년 만에 10건 늘어났고, 공사비 검증 제도를 처음 시행한 2019년 3건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공사비 검증기관, 한국부동산원이 유일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제도는 정비사업에서 공사비를 일정비율 이상 증액하려고 하는 경우 사업시행자가 검증기관에 의뢰해 공사비의 적정성을 검증 받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제29조 제1항에 따르면 ▲토지 등 소유자 또는 조합원 20% 이상이 요청하거나 ▲공사비 증액비율(생산자 물가상승률 제외)이 사업시행계획인가 이전 시공자 선정할 경우 10% 이상 ▲사업시행계획인가 이후 시공자 선정할 경우 5% 이상일 때 이 제도를 신청할 수 있다. 또 ▲생산자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공사비 검증 완료 후 3% 이상 증액하는 경우에도 공사비 검증 제도 지원이 가능하다.

도정법 제29조 제2항에 따르면 검증기관은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의뢰가 들어오면 계약서상 공사비 관련 내용, 공사 물량·단가의 적정성, 각종 보험료 등 순공사비 밖의 제경비를 검증한다. 전문성이 부족한 사업시행자와 소유자 또는 조합원을 대신해 시공자가 제시한 공사비의 적정성을 검토해 변경계약을 체결할 때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재 실질적으로 공사비 검증 제도를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은 부동산원이 유일하다. 서울에서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검증 사업을 대행하겠다고 나섰지만 아직 팀을 구성하는 단계에 머물러있는 상태다.

하지만 정비업계에서는 공사비 검증 제도 결과가 권고사항에 그쳐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을 봉합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4월 7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특히 서울 강동구 대규모 재건축 단지인 둔촌주공 아파트의 경우 시공사와 조합이 공사비 증액 문제로 갈등을 벌이다가 공사 중단까지 이어지자 지난해 12월 말 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 의뢰를 신청했다. 하지만 부동산원은 추가 공사비 1조1385억원 가운데 약 1630억원(약 15%)에 대해서만 검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나머지 9700억원(약 85%) 상당의 공사비에 대해서는 검증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의견을 냈다.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산정 기준을 합의하지 않았거나 책임비율 다툼 사항, 조합의 불인정 항목, 제출자료 만으로는 객관적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상호 합의가 필요하거나 조정·중재와 같이 법리적 해석이나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은 부동산원이 개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시공사와 조합이 공사비에 대한 이견을 보이는 영역 가운데 법적으로 다퉈야 하는 부분이 많다”며 “현재 부동산원은 공사비 검증 결과에 대해 강제성을 갖고 있지 않은 기관이기 때문에 검증을 하더라도 시공사와 조합의 계약 문제 해결을 위해 권고는 할 수 있지만 사사로이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사비 분쟁 막을 제도적 방안 필요해

도정법 상 권고사항에 그치는 공사비 검증 제도로는 시공사와 조합 갈등을 봉합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비업계 전문가는 “추가 공사비에서 자잿값과 함께 금융비용 증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분쟁의 핵심인 경우가 많은데 부동산원에서 사실상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검증을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조합과 시공사가 서로 각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하면서 타협점을 찾지 못한 채로 시간만 흐르고 있는 실정”이라며 “정부에서 차라리 적극적으로 나서 서로 협의할 수 있는 테이블을 제도적으로 마련하거나 애초에 처음 입찰에 참여할 때 예정가격을 터무니 없이 낮게 설정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를 설정하는 것이 분쟁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건설업계는 부동산원에서 일반적인 직접 공사비는 대부분 검증을 해주는 반면, 파업 등 간접 공사비 증가액에 대해서는 검증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공사비 검증 전문 기관으로서의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검증을 못 받은 간접 공사비는 조합 집행부가 다시 다른 전문기관에 의뢰해서 검증 절차를 밟거나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준공 시점이 다 돼서 입주를 시작했는데도 공사비 협의가 안 되면 일부 현장에서는 컨테이너 박스를 단지 앞에 설치해 놓고 막아버리는 사태도 늘어날 것”이라며 “시공사들이 공사비 갈등과는 관련이 없는 일반 분양자들을 막을 수는 없으니 명단을 보면서 일반 분양자에게는 단지 통행을 허용하게 해주고 조합원들은 못 들어오게 하는 전략적인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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