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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으로 암 치료, 길 열릴까…‘암백신’ 개발하는 국내 기업은

[백신도 암 치료제가 된다]①
백신처럼 면역 반응 일으켜 항암 효과
항암제보다 부작용 적어…안전성 높아

국내외 기업들이 암 치료제의 일종인 ‘암백신’에 주목하고 있다. 암백신은 백신처럼 안전하면서도,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약물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백신은 병원체 단백질을 몸속에 집어넣어 병원체가 실제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면역 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돕는 물질이다. 쉽게 말해 병원체가 감염될 상황을 대비해 면역 체계가 연습할 수 있도록 학습시키는 약물을 백신이라고 한다.

백신은 다른 약물보다 상업성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각종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백신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이외에도 다른 감염병이 창궐할 수 있는 만큼, 백신을 향한 시장의 관심은 당분간 커질 전망이다.

백신이 단순히 감염병을 막는 데만 쓰이는 건 아니다.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암 치료에도 백신이 쓰인다. 암백신으로 불리는 치료용 백신이 대상이다. 암백신은 실제 암이 발생할 가능성을 낮추는 예방용 백신과, 암 환자를 치료하는 치료용 백신으로 나뉜다.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알려진 가다실이 현재 상용화된 대표적인 예방용 암백신이다.

치료용 암백신은 백신보다 치료제에 가까운 개념이다. 암세포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을 생성하는데, 암백신은 백신처럼 면역 반응을 활성화하는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 암세포가 스스로 사멸하도록 만든다. 치료제이지만 백신과 원리가 같아 암백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올해 초 열린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도 암백신을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코로나19로 인해 상용화의 길을 연 메신저 리보핵산(mRNA)이 암백신 개발에 쓰일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면서다. 국내외 바이오 기업들은 앞다퉈 mRNA 기반의 암백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도 2030년까지 암백신을 내놓겠다고 공표하며, 이런 분위기에 올라탔다.

암백신은 현재 널리 쓰이는 약물이 아니다. 자궁경부암 백신인 가다실 정도가 상용화됐으며, 실제 암 치료제로 사용되는 암백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개발 의지는 세계적으로 뜨겁다. 항암제는 정상세포를 파괴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백신은 안전성이 높은 약물이라 실제 암백신이 개발된다면 ‘안전한 항암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제넥신·셀리드 등 암백신 개발 박차

국내 기업 중에서도 암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곳이 있다. 제넥신은 암백신 후보물질인 GX-188E를 자궁경부암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디옥시리보핵산(DNA) 유전자를 활용한 암백신 후보물질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이 약물을 신속처리대상으로도 지정했다. 의약품은 임상 1상부터 3상까지 마쳐야 신약 허가가 가능한데, 신속처리대상으로 지정되면 임상 2상 단계에서도 신약으로 허가받을 수 있다.

제넥신은 올해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GX-188E와 림프구감소증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GX-I7, 키트루다의 삼중요법에 대한 연구자 주도 임상 2상 초록을 공개하며 참가자들의 이목도 모았다.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양성인 두경부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였다. 제넥신은 이번 임상에서 삼중요법의 효용성과 안전성을 확인했다. GX-188E는 자궁경부암 치료제로 개발 중이었는데, 두경부암으로 적응증을 확대한 데 대해서도 의의가 있다는 설명이다.

애스톤사이언스는 플라스미드 DNA를 활용한 암백신 AST-301을 개발하고 있다. 유방암과 위암 등 고형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목적이다. 회사는 올해 열린 AACR에서 사람상피세포증식인자수용체 2형(HER2) 양성 위암 인간화 마우스 모델에 대한 AST-301과 키트루다의 병용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두 약물의 병용 효과와 안전성, 면역세포의 변화 등을 살펴봤고, 이 약물을 치료제로 개발할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애스톤사이언스는 재발성 혹은 진행성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암백신 후보물질 AST-021p도 개발 중이다. AST-301과 달리 펩타이드 기술을 활용한 암백신 후보물질이다. 회사는 현재 AST-021p의 면역원성과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올해 하반기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셀리드는 암백신 개발 플랫폼인 셀리박스를 국내외 여러 기업에 기술 수출하며 백신 개발 역량을 다지고 있다. 셀리박스는 환자의 B세포, 단구를 항원 제시 세포로 이용하는 암백신 개발 기반 기술이다. 암항원과 면역증강제(α-GC)가 포함돼 있어, 다양한 면역 작용을 유도한다. 회사는 앞서 LG화학에 셀리박스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이 기업과 새로운 항원을 활용하는 암백신 개발에 착수했다.

한미약품은 mRNA를 기반으로 한 암백신 후보물질 HM99462를 개발하고 있다.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 KRAS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이다. KRAS는 세포 성장과 분화, 증식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돌연변이를 일으켜 폐암과 대장암, 췌장암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M99462는 이 KRAS를 억제한다. 한미약품은 다른 약물과 HM99462를 함께 활용해 다양한 암종을 치료할 방법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에는 이 물질이 KRAS 돌연변이가 있는 폐암 마우스 모델에서 항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발표한 바 있다.
 
암백신 선도 기업 없어…국내 기업에 기회

암백신은 효과적인 치료제를 내놓은 기업이 없다. 국내외 여러 기업에 선도 기업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국내 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 한 신약 개발 기업 관계자는 “예방용 백신과 치료용 백신 모두 강자가 없어 국내 기업에도 이목이 쏠리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이 세계 암백신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선 다양한 제도 및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보고서를 통해 “암백신과 관련한 인허가 기준과 절차를 미리 마련해 기업이 연구개발(R&D)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조건부 허가 제도 등을 통해 제품의 상용화와 대중화를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암백신은 이제껏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혁신 신약인 만큼, 적절한 급여 모델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대체 약제가 없다면 위험 분담제나 경제성 평가 면제 특례 형식으로 보험급여, 가격을 결정한다”며 “암백신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약가 체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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