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의 대상’ 된 대한민국 아파트, 어떻게 진화했나
[진화하는 아파트] ① 소득 상위 70% 아파트 거주…선호에 비해 공급은 턱없이 작아
단독주택 명성 밀어내, 브랜드 고급화로 ‘부의 상징’ 등극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건축법 및 동법 시행령 상 ‘주택으로 쓰는 층수가 5층 이상인 공동주택’을 나타내는 아파트는 국내에서 명실공이 주거형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특유의 아파트 선호 현상은 프랑스 지리학자이자 한국학 교수인 발레리 줄레조의 동명 서적 ‘아파트 공화국’으로 표현되며 최근에도 각종 통계에서 극명히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동산 거래 플랫폼 ‘직방’이 자사 어플(App) 이용자 12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내년에 주택매입 계획이 있다”는 응답자 중 대다수가 아파트를 매입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매입 의사가 있는 응답자 50.5%가 ‘기존 아파트’를 매수할 예정이었으며 ‘신규 아파트 청약’이 23.7%, ‘아파트 분양권·입주권 매수’가 9.9%를 차지했다. ‘연립·빌라 매입’은 9.9%에 그쳤다. 즉 ‘내 집 마련’ 의사가 있는 잠재적 주택 매수자의 약 84%가 아파트를 선호하고 있는 셈이다.
2000년대 출발한 브랜드 아파트, 주거시장 장악
산업화와 도시화가 시작된 1960~1970년대 급증하던 도시인구에 주거시설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된 아파트는 2000년대 초반 들어 본격적인 고급화의 길로 들어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건설, 주택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2000년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이어진 발코니 확장 합법화로 인해 국내 주택시장에는 ‘상품성’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 아파트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아파트는 ‘중산층 거주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래미안’, ‘자이’부터 ‘푸르지오’, ‘e편한세상’, ‘아이파크’, ‘롯데캐슬’, ‘힐스테이트’ 등 현재 전국 주택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브랜드는 이때부터 생겨났다. 국내 건설사들은 분양가 규제 폐지에 발맞춰 높은 공급가격을 매긴 아파트를 판매하기 위해 고급화 브랜드를 내놓고 광고에 유명 연예인을 출연시키기 시작했다. 발코니 확장 설계와 주민공동시설 또한 적극 선보였다. 발코니 확장으로 인해 같은 전용면적 기준 한 가구의 실사용 면적은 커졌고 지하주차장이 조성되면서 지상공간은 어린이놀이터뿐 아니라 조경, 커뮤니티 시설이 차지하게 됐다. 특히 저층 주택가에 부족한 놀이시설과 녹지, 보안은 신축 브랜드 아파트의 차별점으로 부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온 가족이 단칸방에 사는 가정이 많았던 시절에는 소형 면적에도 방이 따로 있는 주공아파트, 시영아파트가 획기적인 주거형태였지만 여유가 있는 가정은 1990년대까지도 여전히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2000년대 규제완화를 거치며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 상품들이 고급화됐고 편의성 또한 좋아 아파트 선호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잘 살수록 아파트 거주, 주거계급화 극명
2010년대 들어 대형 건설사들은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재건축, 재개발 등 핵심 정비시장 수주를 위해 기존에 자사가 보유한 주거 브랜드보다 한 차원 높은 하이앤드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DL이앤씨가 ‘아크로’, 대우건설이 ‘푸르지오 써밋’을 선보인데 이어 현대건설이 ‘디에이치’, 롯데건설이 ‘르엘’을 내놨다.
2016년 입주한 서초구 반포동 소재 ‘아크로 리버파크’가 3.3㎡(공급면적 기준) 당 1억원 신화를 쓰며 아파트는 부의 상징으로 진화했다. 한강조망이 보이는 스카이라운지와 조식서비스 등도 화제가 됐다. ‘도심 속 타운하우스’ 형태로 설계된 용산구 ‘한남더힐’은 아예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임대 후 분양 방식으로 공급됐다. 실제 임대 후 분양 전환된 한남더힐은 지난해뿐 아니라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올해에도 100억원 대 거래가 나와 부유층 대상 하이앤드 아파트로 평가되고 있으며, 유명 연예인은 물론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사장 또한 주민으로 알려져 이 같은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매년 발표하는 ‘주거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등락을 거듭하던 소득분위 9~10분위에 속하는 고소득층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2014년 76.2%를 기록한 뒤 2021년까지 70% 중반 대를 유지하고 있다. 소득 1~4분위 저소득층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고소득층 절반 수준인 30% 대를 기록하고 있다.
각 가구 당 주거면적으로 보면 아파트 거주 여부에 따른 주거 양극화 현상을 더욱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국토연구원 조윤지 연구원이 발표한 ‘주거실태조사를 통해 본 최근 10년간 주거양극화 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비교적 넓은 집에 사는 주거면적 상위 20%가구 중 아파트에 사는 비중은 2008년 53.6%에서 10년이 지난 2018년 63.2%로 높아졌다. 반면 주거면적 하위 20%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2008년 22.9%에서 2018년 15.5%로 낮아졌다. “아파트 주민은 좁은 데 모여 사는 것”이라는 통념을 깬 결과다. 같은 기간 비싼 집에 사는 주택가격 상위 20%의 아파트 거주 비중도 68.3%에서 77.5%로 높아졌다.
그동안 젊은 1인가구가 늘고 집값이 급등하면서 아파트의 상대적인 고급주택화 현상을 더욱 부채질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연구원은 “주거면적 상·하위가구 간 격차는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오피스텔, 고시원 등 주택 이외의 거처가 증가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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