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케미칼’ 끌고 ‘유통’ 밀고…‘뉴 롯데 DNA’로 반전 노린다
[위기와 기회사이 롯데그룹] ④
케미칼 업황 부진했지만…계열사 개별 실적은 반등
다각화된 포트폴리오·과감한 투자로 체질개선 나서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최근 신용도에 ‘경고등’이 켜진 롯데그룹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롯데는 재계 순위(지난해 말 자산 기준)가 13년 만에 5위에서 6위로 내려앉고 최근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잇따라 하락하며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업황 부진이 컸다는 평가지만, 롯데는 위기 속에서도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신사업 투자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그룹 역시 유통, 바이오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에 나서는 등 ‘뉴롯데’를 만들기 위한 DNA 개선 작업에 한창이다. 신용평가 업계에서 실적 개선 기대감과 동시에 신용등급 방어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엇갈린 계열사별 평가…“실적 반등, 펀더멘탈 문제없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초, 국내 신평사 3사인 나이스신용평가(나이스신평), 한국신용평가(한신평),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롯데케미칼이 자체 현금창출력이 저하됐고 대규모 투자자금 소요로 인한 재무 부담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롯데케미칼 신용등급을 기존 ‘AA+(부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계열사 지원 가능성을 고려해 롯데지주, 롯데렌탈 등 일부 계열사 신용등급도 한 단계씩 하향 조정했다.
롯데그룹의 신용도 검토 시 적용되는 계열통합 신용도는 롯데지주가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등 4개사의 자체 신용도를 가중평균해 산출한다. 롯데그룹 신용도를 지지하는 기반은 크게 두 축이다.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한 화학 부문과 롯데쇼핑을 필두로 한 유통 부문이다. 이 외 롯데웰푸드·롯데칠성음료 등 식음료 부문과 호텔롯데 등 호텔 부문이 있다. 그러나신용평가사별 평가 결과는 상이하다. 한국기업평가는 롯데케미칼을 비롯해 6개사(롯데케미칼·롯데지주·롯데렌탈·롯데캐피탈·롯데물산·롯데오토리스)의 신용등급을 조정했으나 나이스신용평가는 4개사(롯데케미칼·롯데지주·롯데렌탈·롯데캐피탈), 한국신용평가는 2개사(롯데케미칼·롯데지주)의 신용 등급을 조정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신평사들의 평가가 다른 이유는 롯데케미칼을 제외한 개별 회사들은 실적이 반등하고 있고 펀더멘탈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롯데 계열사별 개별 실적을 살펴보면 반등 기조가 눈에 띈다. 이제 바닥 치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4분기 3958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나 올해 1분기에는 262억원으로 적자 규모를 줄였다. 석유화학 업황의 원가하락과 수요 회복 기조도 긍정적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3월 인수를 완료한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실적이 올해 2분기부터 연결 손익에 반영되는 부분도 희망적이다. SK증권은 7월 24일, 롯데케미칼 2분기 매출액을 전년 동기 대비 10.2% 감소한 4조9000억원, 영업이익은 흑자전환한 158억원으로 전망했다. 또 롯데정밀화학의 경우 가성소다 중심의 견조한 케미칼 부문 영업이익 및 스페셜티(고기능성) 호실적이 예상됨에 따라 롯데케미칼 연결 영업이익은 흑자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향후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효과는 점진적으로 가시화될 것”이라며 “하반기 본업 업황은 부진을 지속하겠지만, 공급 과잉 물량은 올해 말까지 소화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화학 대규모 증설 사이클 역시 올해 말 종료되는 만큼 연말 화학 업황 턴어라운드는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롯데쇼핑과 호텔롯데는 코로나19 이후 리오프닝 효과로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롯데쇼핑의 경우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125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64% 증가했고, 호텔롯데는 1분기 영업이익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특히 롯데쇼핑의 경우 마트·슈퍼 통합 소싱으로 이익률이 개선될 것으로 점쳐지며 2분기 방한 외국인 증가에 따른 수혜도 예상된다.
롯데는 신용등급으로 인한 유동성 우려에 대한 일부 시선에 대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롯데는 올해 상반기 회사채 3조6000억원을 선제적으로 발행해 지난해 연간 발행금액 5조원의 72%를 이미 조달 완료한 상태다. 또한 롯데는 지난 4월 4대 시중은행인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과 ‘미래 핵심사업 육성을 위한 공동 협약’을 체결하며 ▲2차 전지소재 ▲수소·암모니아 ▲리사이클·탄소저감 ▲바이오 등 미래 핵심사업 투자금(5년간 5조원)도 확보했다.
신평사들은 향후 롯데의 신용도를 주력사업 자회사들의 신용도 변화 여부, 자회사 지분 추가인수 및 신규사업 투자 참여 등에 따른 자체적인 재무구조 변동 수준 및 지주 자체의 구조적 후순위성 강도 증가 여부, 자회사들로부터의 현금유입 규모 및 배당금 지급 변화 정도 등을 고려하여 등급 결정에 반영할 계획이다. 한신평 관계자는 “석유화학부문은 점진적인 수요 회복이 예상되는 가운데, 롯데정밀화학 및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를 통해 석유화학 사업변동성이 완화되면서 올해 영업실적은 전년 대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내년까지 글로벌 생산능력(CAPA)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점, 중국 자급률 상승으로 역내 경쟁이 심화될 위험이 상존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당분간 부진한 이익창출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롯데 관계자는 “등급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각 사와 실적 개선 현황, 재무안정성 및 장기성장성에 대해 적극 소통할 것”이라며 “신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시장경쟁력 및 안정적 경영 성과 창출에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통·바이오 중심 체질 개선 위한 ‘공격투자’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체질 변화를 위해 공격 투자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장 주목받는 분야는 가장 많은 자금이 투입되고 주목도가 높은 유통군과 바이오 분야다. 롯데는 향후 바이오·헬스케어, 모빌리티 등 신사업 분야에 15조2000억원, 기존 사업 부문인 유통·식품·화학 분야에 21조8000억원을 투자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 소재 바이오 의약품 생산공장을 2050억원(1억6000만 달러)에 인수했으며, ‘2030 글로벌 톱10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비전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3개 메가 플랜트, 총 36만ℓ 항체 의약품 생산 규모를 국내에 갖출 예정이다. 1개 플랜트 당 12만ℓ 규모의 항체 의약품 생산이 가능하며, 임상 물질 생산을 위한 소규모 배양기 및 완제 의약품 시설도 추가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이러한 중장기 계획에 적합한 메가 플랜트 거점으로 인천 송도 국제도시를 낙점했다. 지난 6월에는 롯데지주, 인천광역시,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함께 국내 바이오 의약품 생산시설의 조속한 건립을 위한 4자 간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헬스앤웰니스의 다른 한 축인 롯데헬스케어는 오는 9월 유전자 검사, 건강 검진 등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라 건강기능식품, 운동용품, 맞춤 식단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스케어 플랫폼 ‘캐즐’의 그랜드 오픈을 앞두고 있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롯데정보통신을 중심으로 자율주행셔틀 및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사업 역량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유통 분야에서도 투자가 이어진다. 오는 9월 22일 베트남 하노이에 프리미엄 쇼핑몰인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가 그랜드 오픈한다. 연 면적 35만4000㎡(10만 7000평) 규모로 쇼핑몰·오피스·호텔·레지던스가 들어선다. 유통군은 ‘고객의 첫 번째 쇼핑 목적지’라는 비전 달성을 위해 라이프스타일, 그로서리, 데이터 커머스 등 포트폴리오 고도화 추진 방안과 화학군은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 방안과 전지소재사업 및 수소암모니아 등 신사업 육성전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식품군은 기존 사업 밸류체인 고도화를 통한 수익성 개선, 글로벌 사업 확장 및 푸드테크를 활용한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국내 온라인 식료품 시장 경쟁력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롯데쇼핑은 글로벌 리테일테크 기업 오카도와 2025년 첫 자동화 물류센터(CFC)를 건립하는 등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 및 자동화 물류센터에 9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불확실한 환경에서 과거 행동 양식 바꿔야”
신동빈 회장 역시 2023년 하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에서 경영 키워드로 ‘언러닝 이노베이션’(Unlearning Innovation)을 제시했다. ‘배우거나 경험한 것을 잊는다’는 뜻의 언러닝을 활용, 과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현재의 성공에 제약을 가하는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버리고, 새로운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 용어다. 신 회장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없다”며 1월 열린 상반기 VCM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내놨다.
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새로운 영역의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상반기 VCM에서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 등은) 그룹과 회사의 비전 달성을 위해 꼭 필요한 투자라고 생각해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최근 신용등급 하락 등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는 주저하지 않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가 하반기 VCM에서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사업의 관점과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이를 위해 ▲해외 사업 및 신사업에 대한 지속적 고민 ▲외형 성장과 더불어 현금 흐름과 자본 비용 관리 강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경영 환경”이라며 ▲글로벌 경제 블록화 ▲고금리·물가 상승 ▲기술 발전 가속화 등을 언급한 후 “불확실한 미래에서 확실한 것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국내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것이란 사실”이라며 “해외 사업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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