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검정 고무신 ‘희소식’ 나왔지만…고인 남긴 원고 출판 여전히 ‘불투명’

저작권위 “권한 없는 사업자가 저작권 신청…등록 말소”
문체부 “사업자, 미지급한 수익 원작자에게 분배해야”
사업자가 제기한 손배소 진행 중…“작가가 내 권리 침해”

고(故) 이우영 작가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그리고 있는 모습. [사진 이우영 작가 유튜브 캡처]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이제야 희소식이 나왔다. 그러나 고인이 남긴 만화 ‘검정 고무신’ 원고가 세상의 빛을 보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만화 ‘검정 고무신’ 대표 캐릭터 9종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말소하는 결정이 최근 나왔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직권에 따른 처분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작품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장진혁 형설앤 대표가 저작권 등록 신청했다는 점을 처분 근거로 삼았다. 장 대표가 권한이 없음에도 저작권 등록 신청을 해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취지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등은 이를 두고 ‘검정 고무신’ 공동저작권자로 올랐던 장 대표에게 저작자 자격이 없다는 점이 확인된 사안이라고 해석한다. 이의제기 기간을 거쳐, 등록 말소가 최종적으로 확정된다면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자동 귀속된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에서도 ‘검정 고무신’ 원작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놨다. 문체부는 지난 3월부터 ‘검정 고무신’ 관련 특별조사팀을 꾸리고 저작권 분쟁 사안을 들여다봤다. 특히 지난 2008년 장 대표와 원작자 사이에 체결된 3차 사업권설정계약서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문체부는 4개월 조사 끝에 해당 계약이 예술인 권리보장법 제13조제1항제2호를 위반한 불공정행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형설앤과 장 대표가 그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수익을 원작자에게 분배하라는 취지의 시정명령을 내렸다. 문체부는 또 ‘저작권자 간 체결한 계약에 불공정한 내용이 포함됐다’고 판단, 형설앤·장 대표에게 ‘계약서 내용을 변경해 원작자에 대한 불이익 행위를 중단할 것’이란 명령도 전달했다.

만화 ‘검정 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는 지난 3월 세상을 등졌다. 고(故) 이우영 작가는 사업가와 맺은 계약 때문에, 생애 마지막까지 분쟁을 겪다 눈을 감았다. ‘검정 고무신’을 만들었음에도, 사업자 측으로부터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소송을 당해야만 했다. 해당 분쟁은 고인의 동생인 이우진 작가와 유족들이 이어가고 있다. 이우진 작가는 고인의 군 복무 시절은 물론 ‘검정 고무신’ 연재 내내 그림 작업을 도왔다.
검정고무신 저작권 분쟁 관련 자료. 글 작가, 그림 작가, 사업자가 맺은 1·2·3차 사업권 설정계약서 사본, 손해배상청구권 등 양도 각서 사본, 이우영 작가의 진술서 사본. [사진 정두용 기자]

독소 조항을 포함한 계약의 불공정성이 대외에 알려진 후 4개월. 한국저작권위원회·문체부가 원작자에 손을 들어주는 판단을 내렸지만, 고인을 끝까지 괴롭힌 ‘원고 발행’은 아직 불투명하다. 이우진 작가는 “형은 사업자와 ‘저작권 분쟁’을 겪는 와중에도 ‘검정 고무신’을 계속해서 그려왔다”며 “소송 때문에 준비된 얘기를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는 점을 형은 가장 가슴 아파했다”고 말했다.

2019년 장 대표는 이영일 작가(‘검정 고무신’ 글 작가·필명 도레미)와 함께 이우영·이우진 작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 3차 사업권설정계약서를 근거로 ‘공동저작권자인 자신의 허락 없이 여러 차례 독단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이우영·이우진 작가가 작품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공유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했다는 취지다.

해당 소송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사업 권한에 대한 정리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단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고인이 남긴 ‘검정 고무신’ 원고를 세상에 내놓는 건 또 다른 분쟁을 발생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문체부가 유족에 유리한 판단을 내렸지만, 원고를 세상에 당장 내놓지 못하는 이유다.

이우진 작가에게 법률 자문 중인 김성주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국저작권위원회·문체부의 판단 내용은 소송에 증거로 제출할 것”이라면서도 “사업자가 시정명령 등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하는 등의 변수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우진 작가가 보관하고 있는 고인의 원고 출판은 물론 ‘검정 고무신’ 작품활동을 이어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는 만큼 법원의 정당한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만화 ‘검정 고무신’은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소년챔프에서 연재되며 인기를 끌었다. 인기작의 상징인 ‘단행본 출판’은 물론 애니메이션도 4기까지 제작돼 KBS에서 방영됐다.

장 대표는 ‘검정 고무신’ 단행본 연재가 완결된 뒤, 9개 캐릭터를 통해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취지로 작가들에게 접근했다. 사업상 필요하다는 이유로 ‘공동저작권’도 요구했다. 이때 3차 사업권설정계약도 맺는다. 장 대표는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사업장인 형설앤을 통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다. 유족 측이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애니메이션·피규어·의류 제작 등 ‘검정 고무신’ 관련 사업 수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200개 안팎이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장 대표는 3차 사업권설정계약 해석을 근거로 원작자에게 투자 수익을 배분하지 않았다.

3차 사압권설정계약은 ▲계약에 따른 사업 범위의 지나친 포괄성 ▲사업화 권리 설정 기간의 영구성 ▲계약에 따른 금전적 대가 미지불 ▲사업자를 통하지 않고는 창작 행위 불가능 등의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이우진 작가(왼쪽)와 김성주 변호사가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지난 5월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2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3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4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

5“내 버스 언제오나” 폭설 퇴근대란에 서울 지하철·버스 증회 운행

6안정보다 변화…이환주 KB라이프 대표, 차기 국민은행장 후보로

7 KB국민은행장 후보에 이환주 KB라이프 대표

8한스미디어, ‘인공지능 마케팅’ 기술 담긴 ‘AI로 팔아라’ 출간

9포스코, 포항에 민·관·연 협력 ‘대규모 바다숲’ 조성

실시간 뉴스

1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2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3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4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

5“내 버스 언제오나” 폭설 퇴근대란에 서울 지하철·버스 증회 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