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 2막’ 빅테크 지켜만 본 韓…LG·네이버·카카오·KT, 하반기 ‘반격’ [기승전-플랫폼]
2021년 ‘인프라 경쟁’ 후 소강상태 보였던 AI 시장
챗GPT 후 다시 경쟁 치열…차세대 모델 속속 공개
잠잠했던 韓 빅테크, LG부터 출격…특화 서비스로 ‘차별화’
‘사람 모인 곳에 돈이 돈다.’ 예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시장 원칙’ 중 하나입니다. 숱한 사례와 경험으로 증명된 이 명료한 문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지금에도 유효한 듯합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스마트폰 등장과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현실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옮겨 갔고, 여전히 돈을 돌게하고 있죠. 기차를 타고 내리는 정거장을 의미하는 ‘플랫폼’은 ICT 시대를 마주하며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서비스가 도달하는 ‘종착역’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매력을 높여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으려는 플랫폼 기업의 생리를 ‘경제적 관점’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당신이 머무는 종착역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의 2막이 올랐다.’
최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소강상태를 보였던 AI 시장에 다시 불이 붙었단 견해가 나온다. 상반기 내내 빅테크의 진격을 지켜만 본 국내 대기업들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경쟁에 합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AI 경쟁은 앞서 2020년부터 2021년까지 한차례 치열하게 전개된 바 있다. 당시 빅테크를 중심으로 자체 초대규모 AI 모델을 구축하고, 기술 자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됐다.
실제로 챗GPT의 기반이 된 GPT-3를 오픈AI가 출시한 시점은 2020년 6월이다. 구글도 2021년 5월 거대언어모델(LLM) ‘람다’(LaMDA)를 선보였다. 중국 빅테크도 비슷한 시기에 자체 초대규모 AI 모델을 마련했다. 화웨이가 2021년 5월 ‘판구’를 선보였고, 바이두는 2021년 7월 ‘어니’를 내놨다.
국내 ICT업계에서도 이 시기에 치열한 AI 경쟁이 벌어졌다. 네이버는 2021년 5월 국내 첫 초대규모 AI 모델인 ‘하이퍼클로바’를 세상에 공개했다. 카카오는 오픈AI의 GPT-3에 접목된 기술을 참고해 자체 모델인 코(Ko)-GPT를 2021년 11월 선보였다. LG그룹 연구조직 LG AI연구원이 ‘엑사원’을 개발한 시점은 2021년 12월이다.
‘소강상태’ AI 시장에 챗GPT가 지핀 불
2020년부터 2021년까지 굴지의 IT 기업들은 AI 인프라 확장은 물론 기술 자체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며 치열한 경쟁을 전개했다. 이 같은 기조가 2022년에 접어들면서 다소 주춤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2022년에 접어들면서 AI 인프라 확장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기보다, 그간 구축한 AI 인프라를 토대로 ‘적합한 서비스’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는 식으로 경쟁 방향성이 바뀌었다”며 “치열하게 전개되던 인프라 확장 경쟁이 주춤하면서 AI 시장이 다소 소강상태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2022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AI 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보다, 번역·추천·음성 인식과 같은 특화 서비스를 마련하는 데 집중한 분위기였단 설명이다.
소강상태에 접어든 AI 시장에 다시 불을 지핀 건 오픈AI다. 오픈AI는 GPT-3에서 ‘이전 질문까지 기억해 맥락에 적합한 답을 찾아주는 기능’을 추가한 GPT-3.5를 기반으로 챗GPT 서비스를 2022년 11월 선보였다.
챗GPT는 ‘질문에 유려한 문장으로 답변’하는 성능을 뽐냈다. 대답하는 AI의 등장은 ‘아이폰 모멘트’로도 비유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의 일상이 바뀐 것과 같은 수준의 변화가 챗GPT의 등장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챗GPT는 출시 100일도 안 돼 사용자 1억명을 끌어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챗GPT의 성공을 지켜본 세계 빅테크는 다시 AI 기술 경쟁을 시작했다. 생성형 AI 서비스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소비자의 선택에서 멀어질 수 있는 위기감이 퍼진 데 따른 현상이다. 실제로 구글은 챗GPT 등장 직후 ‘코드레드’(Code Red·심각한 위기 상황)를 선언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는 초대규모 모델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매력적인 생성형 AI를 구축하려면 성능이 높은 초대규모 모델이 갖춰져야 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빅테크는 기존 모델의 성능을 높인 차세대 초대규모 AI 모델을 속속 공개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를 마련, 시장 경쟁에 대응하겠단 취지다.
지금의 경쟁을 촉발한 오픈AI는 GPT-3.5를 개선한 모델인 GPT-4를 지난 3월 공개하고, 챗GPT의 성능을 끌어올린 바 있다. 구글은 챗GPT로 인한 경쟁력 하락을 염려, 람다를 기반으로 AI 챗봇 서비스 ‘바드’를 지난 2월 서둘러 공개했다. 바드의 초기 모델의 시장 반응이 신통치 않자, 지난 5월 ‘현존 최대 규모 AI 모델’인 팜2를 선보이고 대응에 나섰다. 팜2를 기반으로 바드 성능을 대폭 끌어올려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겠단 취지다. 여기에 더해 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미국 빅테크는 물론, 바이두 등 중국 기업들도 차세대 초대규모 AI 모델을 최근 공개하고 나섰다. MS의 경우 오픈AI·메타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자사 검색 엔진 ‘빙’의 기능을 고도화하는 식으로 시장 경쟁에 대응하고 있다.
업계에서 현재 ICT 시장 상황을 ‘AI 경쟁의 2막’이라고 평하는 이유다. IT업계 관계자는 “2021년까지 AI 인프라 확장에 주력했던 기조가 2023년에 접어들면서 다시 나타나는 상황”이라며 “그간 AI 인프라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세계 빅테크 중심으로 차세대 초대규모 AI 모델을 공개하는 등 ‘챗GPT 대응 방안’이 신속하게 전개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상반기 잠잠했던 韓 빅테크…LG·네이버 하반기 출격
세계 빅테크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올해 상반기 내내 국내 IT 대기업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국내 양대 플랫폼 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카카오가 지난 2월 ‘생성형 AI 서비스 고도화’에 대한 개발 방향성을 공개한 바 있지만, 아직 신규 모델을 내놓지 못했다.
국내 대기업 중 ‘빅테크와 견줄 수준’의 차세대 초대규모 AI 모델을 내놓은 곳은 현재 LG그룹이 유일하다. LG AI연구원은 지난 19일 ‘LG AI 토크 콘서트 2023’을 개최하고, 엑사원 2.0을 공개했다. 엑사원 2.0은 2021년 12월 출시한 ‘엑사원’의 학습 데이터를 4배 높여 성능을 끌어올린 모델이다. ㈜LG 측은 엑사원 2.0을 “전문가가 사용할 수 있는 초거대 멀티모달(Multimodal) AI”라고 설명했다. 언어와 이미지를 양방향으로 생성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능 역시 그간 빅테크가 공개한 차세대 초대규모 AI 모델과 비슷한 수준이다. 초대규모 AI의 성능은 통상 매개변수(파라미터) 수로 가늠한다. 엑사원 2.0의 최대 파라미터 수는 3000억개로 국내 최대 수준이다. 챗GPT 초기 모델에 사용된 GPT-3.5의 파라미터 수(1750억개)보다 크다. 복잡한 AI 서비스 구현이 가능하단 의미다.
LG AI연구원은 엑사원 2.0을 기반으로 마련한 신규 생성형 AI 서비스 3가지도 함께 공개했다. 엑사원 2.0은 범용적인 서비스 제공보다 연구원·개발자를 돕기 위한 기능을 갖췄다는 특징을 지닌다. 특허·논문 등 약 4500만건의 전문 문헌과 3억5000만장의 이미지를 학습한 것도 이 때문이다. LG AI연구원은 엑사원 2.0의 특성을 살려 ▲전문가용 대화형 AI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 ▲신소재·신물질·신약 관련 탐색에 적합한 AI 플랫폼 디스커버리(Discovery) ▲이미지를 언어로 표현하고, 언어를 이미지로 시각화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 플랫폼 아틀리에(Atelier)를 마련했다.
엑사원 2.0에 이어 하이퍼클로바X가 공개될 전망이다. 네이버는 지난 21일 자사 기술 채널인 ‘채널 테크’를 통해 차세대 AI 서비스 출시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2021년 5월 내놓은 하이퍼클로바를 개선한 모델인 하이퍼클로바X의 공개 일정을 8월 24일로 확정했다. 하이퍼클로바X의 파라미터 수는 2040개로 알려져 있다. 기존 모델과 동일하지만, 네이버 측은 “챗GPT 보다 한국어를 6500배 더 많이 학습해 국내 시장에 특화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의 공개 일정과 함께 이를 기반으로 마련할 신규 생성형 AI 서비스의 밑그림도 공개했다. 대표적 서비스론 ‘큐:’(Cue:)가 꼽힌다.9월 베타(시험) 서비스를 시작하는 큐:는 검색에 특화된 생성형 AI 서비스다. 네이버 측은 “그간 쌓은 양질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새로운 검색 경험을 제공할 서비스”라며 “복합적인 의도가 포함된 긴 질의를 이해하고, 검색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이 큐:의 핵심 기능”이라고 전했다.
네이버 플랫폼에서 활동 중인 창작자·중소상공인(SME) 등 파트너를 위한 도구에도 하이퍼클로바X를 적용할 방침이다. 콘텐츠 제작 툴 ‘스마트에디터’에 하이퍼클로바X를 결합, 새로운 버전의 글쓰기 도구를 오는 9월 일부 블로그 창작자를 대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오는 10월부터는 본격적인 기업간거래(B2B) 시장 확장에 나선다. 네이버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 중인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AI 도구 ‘클로바 스튜디오’에 하이퍼클로바X 모델을 탑재할 계획이다.
막바지 ‘담금질’ 서두르는 카카오·KT
카카오·KT는 네이버·LG와 달리 아직 차세대 초대규모 AI 모델의 공개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카카오는 연구개발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을 통해 2021년 11월 선보인 코(Ko)-GPT란 초대규모 AI 모델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코-GPT를 개선한 차세대 모델을 코-GPT 2.0이란 이름으로 연내 출시할 계획이다.
카카오는 코-GPT 2.0이 마련되면, 이를 기반으로 ▲카카오톡 기반의 AI 챗봇 ▲AI 아티스트 ‘칼로’(Karlo)의 고도화 ▲헬스케어 AI 판독 서비스 ▲신약 개발 플랫폼 접목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칼로는 카카오 AI 개발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이 제작한 이미지 생성 AI다. 회사는 최근 학습량을 기존 대비 2배 이상 늘린 칼로 2.0을 공개하고, 무료 생성 가능 이미지 수를 월 500장에서 60만장으로 확대했다. 칼로 2.0 모델은 사용자의 명령어를 보다 잘 이해하고, 높은 해상도의 그림을 3초 만에 생성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통신사인 KT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초대규모 AI 모델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뒤, 그간 AI·빅테이터·클라우드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왔다. 독자적인 초대규모 AI 모델 마련에 뛰어든 이유다.
KT는 이르면 3분기 내 초대규모 AI 모델 ‘믿음’을 출시할 계획이다. 인프라 구축부터 응용 서비스까지 모두 지원하는 모델로 구현할 계획이다. KT는 믿음을 기반으로 기업 간 거래(B2B) 영역에서 성과를 올리겠단 포부를 밝힌 바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국내 ICT 대기업들은 AI 기술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집행해 온 빅테크와 직접 경쟁하기보다 ‘특화 서비스’ 마련에 집중하는 모습”이라며 “한글에 특화돼 국내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서비스나, 전문가 영역에서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등의 ‘타깃 전’략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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