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정비사업’…불황에도 수주경쟁 여전한 까닭은?
[재개발·재건축 大漁 온다]③
주택시장 등락 ‘학습효과’에 수년 뒤 대비
타 사업 대비 리스크 적어, 공사비 갈등도 해결 수순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국내 건설사들은 IMF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다 겪었다. 몇 년 만 버티면 지금의 불황이 지나고 다시 주택시장이 살아날 것을 알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버틸만한 체력이 충분하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건설사들의 기대감이 장밋빛 환상만은 아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미 올 하반기 들어 시공사들의 주택사업 전망이 개선되고 있다. 7월 전국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올해 들어 최고치인 93.2를 기록했다. 수도권은 전월 대비 21.1p 상승한 100.8을, 서울은 22.5p 오른 110.0을 기록했다. 지수가 95~105 사이면 ‘보합’, 105~115에 속하면 ‘보합-상승’ 즉 강보합 상태로 본다. 서울 부동산시장 여건이 상승국면 직전 단계에 접어들며 급속도로 회복하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주택건설수주지수 역시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보인 가운데 공공택지나 민간택지 사업 수주보다 재건축, 재개발 수주지수가 큰 상승폭을 보였다. 7월 재건축, 재개발 수주지수는 각각 96.4, 94.8로 전월 대비 10.0p, 8.4p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주산연은 “2022년 7월 당시 금리인상과 자금조달지수의 대폭 하락으로 사업전망이 좋지 않았던 주택사업이 점차 회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서울의 경우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시행됨에 따라 재개발 및 재건축과 같은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 시기가 당겨져 시공사들의 업황은 긍정적인 전망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부족한 신규 주택, 살 사람은 산다
지금의 현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고질적인 택지부족 문제와 수년간 이어진 규제 드라이브로 신규 주택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서울시 아파트 평균연식은 22.4년으로 대전광역시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직방이 청약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금리인상 및 분양가 상승 흐름에도 지난달 서울 아파트 청약경쟁률은 101.1대 1을 기록했다.
택지공급이 없는 서울에선 이 같은 주택공급 대부분이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통해 나온다. 이에 따라 조합원 분양분을 제외한 일반공급 물량이 소수에 그치며 수요자 간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개포, 반포 등 강남권 저층 아파트 재건축이 끝나고 도시정비시장의 주류가 일반공급이 더욱 적어질 수밖에 없는 중층 재건축으로 넘어가면서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언제나 대기수요가 풍부한 서울에선 사실상 미분양 리스크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건설사 입장에서 주택사업은 공사 난이도가 높은 해외 토목·플랜트 사업과 함께 여타 개발사업 대비 사업 위험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정비사업 시공을 맡게 되면 직접 개발시행을 하지 않고 공사비를 받기 때문에 전체 가구 수 대비 조합원 분양분이 많을수록 오히려 리스크가 적은 구조다.
본격적으로 이주 및 공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업 진행 조달 비용도 크지 않다. 이 때문에 매출 대비 이익률이 높지 않더라도 1군 건설사들은 앞 다퉈 서울 핵심지 정비사업 수주에 뛰어들고 있다.
정비시장 휩쓴 공사비 갈등, 바닥쳤나
‘둔촌주공 사태’로 불거졌던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 문제도 장기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공사비 인상의 주 원인이던 철근 콘크리트 등 자잿값이 본격 하락세를 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로 수급이 불안해지면서 t당 100만원을 돌파했던 철근시세가 최근 88만원대로 떨어진 상태다. 이달부터 국내 최대 철강사인 포스코가 코일철근 제품을 본격 선보이며 철근 공급이 늘면서 가격은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주택 공사비에 대한 시장 눈높이도 올라가고 있다. 국토부가 정기공시하는 기본형 공사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을뿐 아니라 최근 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개한 공공분양 아파트 공사비 역시 3.3㎡ 당 700만원 수준으로 나타나면서 민간 정비사업 공사비는 3.3㎡ 당 최소 800만원은 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 3일부터 행정예고한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 일부 개정안을 통해 공공이 아닌 민간공사 계약에 대해서도 물가변동 흐름이 공사비에 명확히 반영될 수 있도록 보완할 계획을 밝혔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계약체결 후 90일 이상 경과된 잔여공사에 대해서는 기존 공사비 산출 내역서에 명시된 품목, 비목뿐 아니라 비목군 및 지수를 확대 반영해 해당 비용의 상승분이 잔여공사 계약금액의 3% 이상일 때 공사비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다. 계약금액을 조정할 때는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4조에 의해 산출된 품목조정률 또는 지수조정률을 활용하도록 명시한다.
국토부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민간건설공사의 물가변동은 세부기준이 불명확해 계약당사자간 이견이 발생하거나 수급인의 적극적인 물가변동 반영 요청에 제약이 있다”면서 “물가변동 조정방법을 명확화하고, 조정절차 등 구체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민간건설공사 물가변동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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