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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길을 찾다…한국콜마 2조원대 기업으로 일군 비결은 ‘이순신 정신’ [이코노 인터뷰]

40대에 직원 3명으로 시작한 회사,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역사에서 얻은 경영 리더십…“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경영자”
최우선 가치는 사람…충무공 정신 계승 위해 서울여해재단 설립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콜마…미국 공장 부지 매입해 ‘제 2 도약’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사진 신인섭 기자]
[대담=이코노미스트 김설아 소비자생활부장·정리=선모은 기자] 고려 불화의 백미로 꼽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달밤에 바다 위에 뜬 보타락산에 앉아 진리를 구하는 선재동자에게 깨달음을 주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수월(水月)이라는 이름처럼 화려하고 정교한 고려 불화의 미감이 돋보인다. 하지만 국내 남아있는 수월관음도는 몇몇에 불과하다. 북미와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에 40여 점이 흩어져 있고, 다수는 일본에 있다.

이 수월관음도를 국내 민간 기업이 사들였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로 172cm, 가로 63cm의 푸른 비단에 그려진 수월관음도를 찾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이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다. 윤 회장은 지난 2016년 지주사인 한국콜마홀딩스를 통해 일본의 한 골동품상이 가지고 있던 수월관음도를 25억원을 들여 확보했다. 이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에서 역사를 향한 윤 회장의 각별한 애정이 드러난다.

7월 21일 서울 서초구 석오빌딩에서 만난 윤 회장은 “어떤 사람들은 국가가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국가가 챙기지 못하는 일은 기업이 하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업이 거들 수 있다면 국가에 보탬이 되지 않겠냐”는 취지에서다. 특히 “사람들은 어떤 정보를 나만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역설했다. “정보를 개방하고 공유해 여러 사람이 누릴 때 힘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윤 회장이 이순신 장군의 행적과 전언(傳言) 등을 담은 ‘이충무공전서’의 역주본을 출간 지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충무공전서는 이순신 장군의 공훈을 알리기 위해 1795년 정조의 명으로 편찬된 14권의 책이다. 사학자인 노산 이은상 선생이 이충무공전서를 1960년 국역본으로 출간했지만, 현재 폐간됐다. 윤 회장이 출간을 지원한 역주본에는 임진왜란과 관련한 연구 성과가 반영됐고, 번역의 오류도 수정·보완했다. 이충무공전서의 원문도 함께 실어 이순신 장군에 대한 문건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환경 탓할 이유 없어…‘자력갱생’해야

윤 회장이 이순신 장군에 관심을 쏟은 것은 이순신 장군이 “뛰어난 경영자이자, 인격자”였기 때문이다. 

“전쟁은 식량과 무기 조달부터 인력 훈련, 전략 구상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잘 맞물릴 때 성공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도 삼도수군통제사로 전쟁에 참여하며 전투마다 병사들의 식량과 물은 물론 숯, 무기 등을 조달했다.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환경을 개척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거북선이 대표적이다. 이순신 장군은 조정에서 무기와 군량미를 마냥 기다리지 않고 물고기와 소금을 팔아 자금을 마련, 거북선을 만들었다. 거북선에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깊숙이 담긴 이유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석오문화재단 이사장실 옆방에 작은 서재를 만들었다. 임직원이 자유롭게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순신 장군은 전쟁 중에서도 사람을 사랑하는 ‘애민 정신’을 놓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만 이끌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순신 장군을 따라다니는 5000척의 배가 있었다. 피난민을 실은 배였으니 어림잡아도 2만5000여 명의 피난민이 이순신 장군을 따라 전쟁을 견뎠다. 이순신 장군은 전장에선 치밀했고, 전략을 짤 때는 생각이 넘쳤다. 피난민과 함께 농사를 짓고 특별조세를 통해 쌀을 모아 반년을 버틸 양식을 만들기도 했다.”

전쟁 중 병사가 전사하면 시신을 수습해 손수 이름을 적어 각 지역으로 보냈다. 윤 회장은 “지금처럼 화장 시설이 없으니 전사한 병사의 시신은 자기 고향에 매장했다”며 “이순신 장군은 전사한 병사의 제문(祭文)을 직접 썼고 이름이 없는 사람은 성과 이름을 적어 함께 보냈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경영 능력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지닌 인물”이라는 평가다.

윤 회장은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외부 환경을 탓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자력으로 전쟁 물자를 구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순신 장군처럼 국내 기업들도 ‘자력갱생’의 정신을 키워야 한다는 뜻이다.

윤 회장은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칠천량 해전에서 무너져 내린 조선 수군을 일으켜 명량에서 대승을 거뒀다”며 “전국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조정의 지원을 기다리는 대신 빠르게 군수물자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도 사업 환경이 따라주던 그렇지 못하던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해야 한다”며 “자력갱생의 정신은 우리 기업이 시대를 초월해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 했다.

“독서하지 않을 이유 있나…삶의 지혜 책에서 찾길”

한국콜마도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밑바탕으로 일궈진 회사다. 윤 회장은 1990년 일본콜마와 합작해 한국콜마를 세웠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을 시작했다. ODM은 제조업체가 제품의 개발부터 생산까지 도맡는 형태의 생산방식이다. 다른 기업이 주문한 방식으로만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기술을 개발해 자체 제품 체계를 갖췄다는 뜻이다. 한국콜마는 현재 미국콜마로부터 콜마(KOLMAR) 상표권을 인수해 전 세계 콜마를 대표하고 있다. 윤 회장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고, 30여 년 만에 일군 성과다.

윤 회장은 한국콜마를 성장시키며 마주한 수많은 중대사 앞에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제 역할을 했다고 했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사람을 채용하는 것까지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토대 삼아 진행해 왔다. 임직원을 발탁할 때도 마찬가지다. 윤 회장은 “기업은 임직원의 능력을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며 “이순신 장군도 휘하 1000여 명의 장군을 신분이 아닌 능력에 따라 차별 없이 등용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유능하다거나 무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며 “그 사람에게 재능을 적극적으로 발굴, 성장할 힘이 있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회장이 한국콜마그룹의 모든 임직원에게 책 읽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매년 6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2006년부터 임직원의 독서량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이들이 읽은 책의 두께를 추산하면 백두산의 높이를 훌쩍 넘는 4367m에 달한다”고 했다. 윤 회장도 일주일에 3권가량의 책을 읽는다.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삶의 지혜를 찾은 지는 수십년이 지났다. 특히 ‘역사서’는 시대를 초월한 스승이라고 했다. 김주영의 소설 ‘객주’는 6번, 최명희의 소설 ‘혼불’은 7번 읽었다. 그는 “옛것을 모르면 새로움이 없고 역사를 잊으면 잘못을 되풀이한다”며 “역사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하니 이런 종류의 책에서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서울 서초구 석오빌딩에 들어선 석오문화재단 이사장실에 앉아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윤 회장은 경영 상황의 위기도 늘 책으로 돌파했다. 그는 “개인이 성장하는 데 책보다 좋은 것이 있느냐”며 “책을 통해 정신을 맑고 단단하게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임직원들에게도 책 읽기를 권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인문 경영이라는 단어에서 ‘문’은 ‘무늬’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마다 무늬는 다르고, 회사는 여러 사람이 모여 일하는 곳인 만큼 함께 일하는 사람을 잘 알고 융합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한국콜마를 사람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수많은 경영 판단에서도 늘 ‘사람’을 가운데 뒀다”고 말했다.

“가치 담겨야 팔린다”…한국의 가치 발굴해야

윤 회장은 이순신 장군의 철학을 중소·중견기업 경영자가 배울 수 있도록 서울여해재단을 설립했다. 이순신 장군의 자(字)인 여해(汝諧)를 딴 기관이다. 서울여해재단은 이순신 장군의 조직 및 경영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가르치는 이순신 학교를 통해 정규 강의와 학술 세미나를 진행하고 전적지 답사와 소식지 발간 등 활동도 펼치고 있다. 올해 이충무공전서의 역주본을 새롭게 출간하는 데도 서울여해재단이 힘썼다. 석오문화재단을 통해서는 2020년 일본의 요시다 유타가 교수의 장서 9000여 권을 인수해 영남대에 기증했다.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현대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하게 쓰일 자료라는 판단에서다.

윤 회장이 역사에 관심을 쏟는 것은 제품의 가치를 문화가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콜마를 설립하려고 미국으로 향했을 때 미국콜마와 협의가 되지 않아 결국 일본콜마와 협력했다. 이후 미국 진출을 위해 여러 차례 제품을 출시해도 제품 생산부터 공장 설립까지 여러 난관이 있었다. 지금이야 다르지만 그때 당시 한국의 위상은 낮았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가치도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최고는 아니다. 핵심은 ‘가치’다. 가치를 붙여야 해외사업이 가능하다. 역사와 문화에 투자하는 것이 결국 국내 기업들이 해외사업을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스타(STAR)산업’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윤 회장은 한국콜마의 대내외 기업 가치를 알리기 위해 ‘의식주’에 의약품과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 이 회사가 집중하는 3개 산업을 합해 스타산업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산업은 의식주로 발달한다”며 “대웅제약에 입사하며 내 회사를 세우겠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의식주가 해결되면 사람들은 어디 눈을 돌릴까’를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식주와 가까이 연결된 것이 화장품과 의약품, 건강기능식품”이라며 “의식주 다음으로 생활에 꼭 필요한, 확장 가능성이 큰 사업이지만 와닿지 않으니 스타산업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설명했다.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라…자신 위해 일하라”

한국콜마는 국내 화장품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는 이제 세계 시장에서 제2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품질은 세계 최고”라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공장 부지를 매입했고 이곳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해외사업의 전진 기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한국콜마는 그동안 중국 시장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강력한 규제로 당장 시장 위기를 돌파하기 어려운 만큼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윤 회장은 “미국 공장을 키울 계획”이라며 “기초화장품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콜마가 최고의 품질을 자부한다”고 했다.

윤 회장은 임직원들에게는 회사를 위해 일해서는 안 된다고도 조언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는 ‘자기 일에 충실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회사를 위해서 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일하길 바란다”고 했다. 또한 “품성은 갖춰야 한다”며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연매출 2조원, 임직원 1000여 명의 기업을 일군 창업주로서의 면모가 뭍어나는 당부다.

윤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다 지난해 한국콜마 회장으로 복귀했다. 내곡동에 집무실이 있지만, 인왕산 기슭이 보이는 석오문화재단 이사장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여든을 바라보는 원로(元老)는 “창업주로서 한국콜마의 기업문화가 무너지지 않게 연결하는 일이 마지막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콜마는 기술을 중시하는 기업이지만, 특히 사람을 존중하는 기술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윤 회장은 “기술의 가치를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고려하면 사람을 생각하는 문화가 깨진다”며 “그런 기업은 오래 가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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