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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맞은 K-라면, 공업용 소기름 ‘우지 파동’에 갈린 라면史

[농심 vs 삼양, 라면명가 3차전] ①
1989년 ‘우지 파동’으로 격차 벌어진 K라면
공업용 소기름 누명, 삼양 1997년 최종 무죄

라면의 원조인 ‘삼양라면’은 1963년 9월 출시됐다. 사진은 삼양이 최초로 내놓은 라면. [사진 삼양라운드스퀘어]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라면은 상징적인 식품산업 중 하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77개다. 2021년 집계에서는 73개로 이는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소비량이다. 이처럼 라면 소비 대국에서 농심과 삼양라운드스퀘어(前 삼양식품·이하 삼양)는 국내 라면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각각 라면 1위와 원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삼양은 국내 최초로 라면을 선보인 선발주자이고 농심은 오랜 기간 라면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다. 

라면 원조 vs 부동의 1위…엇갈린 운명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라면 시장 규모는 약 2조6469억원. 지난 10년간 2조원대 규모에서 횡보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만큼 수요는 꾸준하다. 인스턴트 라면의 원조는 삼양이다. 농심이 라면업계에 뛰어든 1965년에는 삼양라면이 업계 강자였다. 무려 8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며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시장에는 삼양라면을 비롯해 롯데라면(농심), 풍년라면(풍년식품), 닭표라면(신한제분), 해표라면(동방유량), 아리랑라면(풍국제면) 등의 제품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1969년 들어 삼양과 농심만이 살아남았지만 지배적 위치를 유지하던 삼양에 비해 농심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1969년 들어 삼양과 농심만이 살아남았고 1980년대부터 농심은 라면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라면명가’(名家)의 격차가 더 벌어진 건 30여 년 전이다. ‘우지(소기름·牛脂) 라면’ 파동이 일어나면서부터다. 1989년 11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익명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투서에는 몇몇 기업이 비식용 우지로 라면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검찰은 즉각 수사에 나섰고 미국에서 비식용 우지를 수입한 삼양·오뚜기식품·서울하인즈·삼립유지·부산유지 등 5개 업체를 적발하고 대표 및 실무 책임자 등 10명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입건했다.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라면 제조업체의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그러면서 이들이 “비누나 윤활유 원료로 사용하는 공업용 수입 쇠기름을 사용해 라면 등을 만들어 시판했다”라고 발표했다. 우지 파동 여파로 3개월간 공장 가동을 멈췄고, 시장 유통 중인 제품 전량을 회수하면서 당시 피해금액만 무려 4000억원에 달했다. 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면서 1000여 명의 직원은 회사를 떠나 실직자로 전락했다.


(위) 1960년대 삼양라면 광고. (아래) 1970년대 삼양라면 제품 광고. [사진 삼양라운드스퀘어]

공업용 소기름 누명 ‘삼양’, 혐의 벗는 데 8년 


당시 업계는 반발했다. 소기름을 공업용으로 분류한 건 미국 기준에 따른 것이었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내장과 사골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식용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상황을 가정해 설명하자면 미국에서 김을 공업용으로 분류했다는 이유로 한국 국수에 들어간 김을 문제 삼는 것과 똑같은 케이스였다. 또 이미 20년간 우지를 통해 라면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동물성 지방을 공급한다는 취지에서 사용을 권장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라면에 활용된 우지가 1989년 개정된 식품공전 중 원료조항에 위배된다고 맞섰다. 검찰은 사건 첫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업용 우지가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는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건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까지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소비자 단체들도 분노에 차 성명 발표 및 불매운동으로 라면 업계를 압박했다. TV 토론에서도 학자·당국·소비자 등이 나서 갑론을박을 벌였다. 삼양이 대법원 판결로 혐의를 완전히 벗는 데는 8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사건 발생 13일 만인 11월 16일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이 라면 무해 판정을 내리면서 불을 껐지만 삼양라면은 이미 부도덕 기업으로 낙인찍힌 뒤였다. 소비자들의 항의와 환불 요구가 빗발쳤고 불매운동도 이어졌다.

정부가 인체에 무해한 기름이라고 발표하며 사태를 진화하려 했지만 불안에 떠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후에도 논란이 잦아들지 않자 정부가 보건사회부·검찰·학계·소비자단체 대표 등 8명으로 구성된 식품위생검사 소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다. 사건 발생 13일 만에 내려진 소위원회의 결론은 ‘이상 없음’이었다. 결국 법원은 구속된 5개의 업체 대표와 실무자 등 10명에 대해 보석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항소했지만, 1997년까지 이른 법정 다툼 결과 최종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농심의 신라면. [사진 농심]

하지만 우지 파동으로 라면업체들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국내 라면 시장의 70% 정도를 석권한 삼양라면은 우지 파동 이후 추락을 거듭했다. 사건 발생 10년이 넘어 창업주인 전중윤 전 삼양 명예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지 파동으로 직원 1000여 명이 회사를 떠났고 서울 도봉동 공장은 3개월 동안 문을 닫는 등 수천억원대 손해(3000억원 추정)를 가져왔다”며 “이로 인해 60%에 달했던 시장점유율은 10%대로 곤두박질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양이 빼앗긴 시장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우지 파동으로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던 삼양라면은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추락했다”며 “불량식품으로 낙인 찍히면서 소비자들은 철저하게 등을 돌렸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아 오명은 벗었으나 최종심까지는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됐다”며 “그 사이 한번 바뀐 소비자 입맛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삼양라면은 상당 기간 암흑기를 보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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