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무법천지 '가상자산 시장'…‘가상자산 규제법’에 기대 반 우려 반 [김기동의 이슈&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내년 7월 시행
디지털자산시장의 ‘규제’와 ‘시장 육성’…양 날개로 접근해야

가상자산 (CG) [사진 연합뉴스]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LawVax) 대표변호사] 근래 들어 가상자산 시장의 불법·불공정 행위가 다양해지고 형사처벌이 늘면서 수사기관의 역량과 경험, 성과도 축적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서울남부지검에 ‘가상자산범죄 합동수사단’을 신설한 이후 가상자산 관련 범죄에 대한 정부의 대응 역량이 강화되고 있다. 

합수단은 지난 8월 가상자산 ‘피카’를 발행한 프로젝트 공동대표 송모·성모씨를 자본시장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조각 투자’ 방식으로 미술품을 공동 소유할 수 있다는 가상자산 계획을 대중에게 알리고 자본을 모았는데, 이에 대해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서울동부지검 사이버범죄수사부도 지난 8월 자체 발행한 코인의 시가와 거래량을 부풀리고 고객 예치금을 가로챈 혐의로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소닉' 대표 신 모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특례법 상 사기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그동안 가상자산 시장에 만연하고 있는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시세조종, 자전거래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처벌법규가 없어 감독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적발과 처벌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는 지난 6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2024년 7월부터 시행된다. 

이 법률은 가상자산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금융규제 입법이라는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가상자산으로 인한 피해사례가 급증하자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 체계를 우선 마련하고 이후 점진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는 여야 간 합의에 따라 급하게 입법이 이루어진 결과 문제점도 일부 발견된다.

형사처벌 관계 조항…시행과정서 논란 여지 커 
 
특히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중 형사처벌과 관계되는 조항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시행과정에서 논란이 제기될 여지가 많다. 형사처벌은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규제하는 행위와 그에 대한 처벌을 법률에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중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이 가장 큰 문제다. 자본시장법은 유가증권 정보의 공개 방법과 공개 시점을 규정하고 있는데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에는 관련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 정한 방법과 절차를 통해 공개해야 할 정보를 법으로 규정해야 그와 구별되는 미공개중요정보 이용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있다.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냥 잘못된 길로 갔다고 처벌하는 것과 다름없어 가상자산 시장과 사업자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논란이 된 유명 가상자산 프로젝트들만 봐도 대부분 SNS를 통한 정보 공개에 대해 자칭 ‘공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충분한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고 있는지 우려가 크다.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의 정보 공개는 불충분, 불균질, 임의성 등으로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많다. 정보 공개의 대상과 절차가 정해져야 하는 이유이다.

유가증권시장의 미공개 중요정보는 그 의미에 대해 기존 판례와 논의가 축적된 개념이지만, 가상자산시장에선 ‘미공개 중요정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고 이를 가상자산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보로 이해하면 무한정 확대될 여지가 있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을 앞두고 실효성과 한계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특히 유가증권시장의 정보는 증권을 발행한 상장 법인의 투자 전략 발표 등 주로 ‘법인 정보’를 대상으로 삼지만, 가상자산 시장 정보는 락업(lock-up) 기간, 상품으로서의 활용 방안 등 ‘상품 정보’를 주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가상자산 시장에서의 ‘중요정보’를 해석하는 데에는 그 시장의 특성에 기반한 각별하고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주식시장처럼 일정한 범위의 시장조정 행위(market making)을 허용하지 않고, 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모든 행위를 예외 없이 시세조정 행위로 처벌하게 되면 가상자산의 상장 자체를 포기하는 등 시장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시장의 양상과 현실 외면한 지나친 규제는 ‘독’

자본시장법상 ‘시장조성행위’란 유가증권의 모집 또는 매출을 원활히 하기 위해 모집 또는 매출한 증권의 수급을 상장 후 일정 기간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거래 부진 종목에 대해 지정 증권사들이 매수·매도 가격을 아래위로 촘촘하게 제시해 가격 형성을 주도하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게 된다. 대부분의 가상자산도 거래소에 상장하는 초기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주식시장과 유사한 시장조성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전부 금지하게 되면 가상자산 시장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장의 양상과 현실을 외면한 지나친 규제는 부작용이 더 크다. 디지털자산시장이라는 새는 ‘규제’와 ‘시장 육성’이라는 양쪽 날개로 날아야 발전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금융 국가들의 입법 방향도 그와 같다. 세계 최대 IT 기업 구글은 가상자산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등 미래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산업과 국가는 도태할 수밖에 없다. 

최근 법원이 가상자산에 대한 시각을 보여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남부지법은 9월 26일 일부 거래소 상장비리를 둘러싼 배임수증재 피고인들에 대해 중형을 선고하면서 “가상자산은 이미 제도권 자산으로 사회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가상자산 거래소의 상장 업무엔 공공 영역에 준하는 철저한 감시와 관리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판시했다.

법원 지적처럼 “가상자산 시장에 공공 영역에 준하는 감시와 관리가 절실하다”는 건 앞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보완 입법을 진행할 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국과 전문가들이 가상자산 시장을 공공영역처럼 고도의 공익성과 대중 영향력을 가진 영역으로 대할 때 가상자산 투자자들에 대한 두터운 보호가 시작될 거라고 믿는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뉴진스님 디제잉’ 말레이 불교계는 질책…“입국 막아 달라”

2맥쿼리자산운용 이수진 전무, 해외 PEF 첫 한국인 여성대표로 승진

3정부, 법원에 2000명 ‘의대증원’ 자료 제출…내주 집행정지 여부 ‘촉각’

4정부도 日 라인야후 행정지도에 뿔났다…네이버는 지분매각 가능성 시사

5강남 ‘20억’ 로또 누가될까…반포 원베일리 딱 1가구 풀린다

6“유미야, 오랜만이야”…화면 속 이야기는 끝났지만 ‘현실 마침표’ 아직

7거래소, 밸류업 공시 담담자 의견 청취…이달 중 가이드라인 확정

8조재구 대구 남구청장, 공약이행 '최우수 등급' 획득

9홍준표 대구시장, 제22대 당선자와 오찬 간담회... "지역현안 공동 대응키로"

실시간 뉴스

1‘뉴진스님 디제잉’ 말레이 불교계는 질책…“입국 막아 달라”

2맥쿼리자산운용 이수진 전무, 해외 PEF 첫 한국인 여성대표로 승진

3정부, 법원에 2000명 ‘의대증원’ 자료 제출…내주 집행정지 여부 ‘촉각’

4정부도 日 라인야후 행정지도에 뿔났다…네이버는 지분매각 가능성 시사

5강남 ‘20억’ 로또 누가될까…반포 원베일리 딱 1가구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