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 안 되는 금리에 파산신청 봇물..기업이 무너진다
[빚내서 빚 갚는다]③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으로 기업 경영환경 악화
기업대출 연체율 증가…파산신청하는 건수도 늘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 증가
[이코노미스트 마켓in 이승훈 기자] 장기간 이어진 고금리 여파와 경기 침체 등으로 파산신청을 하는 기업이 늘어나며 줄도산 공포가 커지고 있다. 기업 대출 연체율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증가하는 등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파산신청한 법인은 121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4%나 늘어난 수준이다. 최근 10년간 가장 파산 건수가 많았던 2021년 1069건인데, 연말까지 3개월을 앞둔 시점에 이미 기록을 넘어섰다. 법인 회생 신청은 1160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63.6% 늘었다. 이 같은 추세가 연말까지 계속된다면 연간 기준으로 파산 신청이 회생 신청보다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으로 기업들 경영환경 악화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기업 대출 연체율이 상승세를 보이는 등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이 지난해 말 기준 3900개를 웃돈다. 전체 기업(외부감사 대상 비금융 기업)의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5년 만에 최고치다.
영세기업들이 자금난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중견기업도 그 충격의 예외가 아니었다. 자금난이 영세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확산되면서 1∼8월 어음부도액은 3조6200억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1조9000억원)이나 레고랜드 사태가 있었던 지난해(2조2500억원)보다 악화한 상태다.
자금난이 장기화하면 법정관리에 나서는 업체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감독원의 신용위험평가 결과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필요한 부실징후기업은 185개로 1년 새 25개 늘었다.
중소부터 중견기업까지 자금 유동성 위기 고조
중견 기업집단인 대유위니아 그룹도 존폐기로에 놓였다. 대유위니아 그룹은 현재까지 5곳의 계열사가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를 비롯해 위니아전자, 위니아전자매뉴팩처링, 대유플러스, 위니아에이드가 법정관리 희망 의사를 밝혔다. 대유위니아그룹 계열사들은 경영 상황 악화와 이에 따른 대규모 임금 체불이 맞물려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법정관리 여파로 협력사 450여 곳의 줄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고금리 시기 경쟁적으로 공급된 기업대출이 기업 연쇄 부실의 ‘약한 고리가’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시장의 우려가 커지자 정부도 진화하기에 나섰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한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에서 대유위니아 그룹 계열사의 법정관리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특별만기연장과 특례보증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은 아직 안도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 타 산업들도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건설업계다. 고금리와 더불어 공사비 인상, 미분양 증가 등으로 중소 건설사뿐만 아니라 중견 건설사들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 올해 종합건설사 폐업 건수는 지난해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 29일까지 종합건설사 폐업 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총 45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59건) 대비 74.9% 증가한 수치로, 지난 2006년 491건 이후 역대 최대치다.
최근에는 중견 종합건설사 대우산업개발도 회생 절차를 밝고 있다. 대우산업개발은 2011년 12월 대우자동차판매의 건설부문이 분할해 설립된 종합 건설사다. 올해 시공능력평가액 4115억원으로 시공능력평가 75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 이안(iaan), 엑소디움(Exodium), 외식업 브랜드 브리오슈도레(Brioche Doree) 등을 보유 중이다.
하지만 대우산업개발은 경영난으로 하도급 업체들에게 결제 대금을 연체하면서 지난 9월 7일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개시결정을 받아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회생 개시 결정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대우산업개발의 자산은 2930억원, 부채는 2308억원이다. 하지만 자산 구성 항목 중 약 1000억원은 공사매출채권과 장단기 대여금채권 등으로 상당수 부실화됐거나 회수가 불가능한 탓에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란 평가다. 여기에 시공하자 등에 따른 우발채무 추정액 630억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차입금에 대한 지급보증금 약 4300억원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자금 유동성 위기로 연쇄 도산 우려가 커지자 이를 막기 위해 특단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지난달 15일 일몰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기촉법) 재입법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기촉법이란 지난 2001년 한시법으로 최초 제정된 워크아웃 절차를 담은 기본법이다. 워크아웃은 채권금융기관의 75% 이상 동의를 받아 채무 유예·탕감 및 추가 자금투입을 대가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 기업을 회생하게 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악성기업을 선별적으로 거르고 우량기업을 중심으로 정책이나 금융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있는 기업도 높은 연체 이자의 부담으로 회생이나 파산의 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우량기업의 경우 대출연장이나 연체이자로 인한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며 “특히 법원 회생까지 가기 전에 기촉법을 연장시켜 워크아웃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도덕적 해이를 보이는 악성기업을 선별하는 감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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