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버틸만큼 버텼다”…시행업계 EOD 위기 속출
[부동산 한파 주의보] ②
미래인·루시아홀딩스 등 청담 고급주택 EOD 고비 넘겨
국내 톱3 시행사 신영, 브라이튼 여의도 PFV서 300억원 선정산
[이코노미스트 박지윤 기자] 시행사들이 2022년부터 11차례에 걸쳐 급속도로 이어진 금리 인상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저조한 분양률 때문에 자금 조달에 골머리를 앓거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추진 사업장에서 대주를 찾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 위기까지 직면하고 있다.
부동산개발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루시아홀딩스, 미래인 등 규모가 작지 않은 시행사들도 서울 금싸라기 입지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고급 주거시설 분양사업장이 잇따라 EOD 사유가 발생해 공매 위기를 맞았다.
미래인은 지난 2021년부터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부지를 지하 8층~지상 49층 규모 공동주택‧오피스텔로 개발하는 ‘르피에드 청담’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고금리와 함께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으면서 2년 만에 EOD 위기에 처했다. 미래인이 르피에드 청담의 본 PF 대출 전 단계인 브릿지론으로 4640억원 규모를 조달했는데 만기 연장이 불투명해지면서다.
브릿지론 연장 겨우 성공했지만…본 PF 걱정 태산
전체 브릿지론의 40% 수준인 1800억원을 투입한 선순위 투자자인 새마을금고가 만기 연장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비치면서 EOD 선언 후 토지가 공매로 넘어갈 수 있다는 긴장감이 고조됐다. 브릿지론은 총 26개 채권자로 이뤄져있는데 전체 채권액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만기를 연장할 수 있는 구조다. 새마을금고가 40%의 의결권을 쥐고 있는 만큼 만기 연장 여부에 업계 관심이 집중됐다.
올해 5월 첫 브릿지론 만기일을 맞았지만 대주단이 각각 3개월, 2개월씩 만기 유예를 허용하면서 11월 14일로 미뤄졌다. 이후 다시 새마을금고가 채권 상환 조치를 유예하고 만기 연장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EOD로 인한 공매 위기에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앞서 루시아홀딩스 역시 같은 청담동에서 EOD 위기를 겪었다. 루시아홀딩스는 지난해 레고랜드 채권발 자금경색으로 ‘루시아청담514 더테라스’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받았던 1520억원 규모 브릿지론의 만기 연장에 실패하면서 지난해 12월 EOD 통보를 받았다. 루시아청담514 더테라스는 지하 6층~지상 20층 규모의 아파트 25가구, 오피스텔 20실을 짓는 프로젝트다. 루시아홀딩스의 이 사업장은 올해 2월 토지와 사업권이 공매로 넘어갔지만 지난 7월 대주단을 설득해 브릿지론 만기를 오는 12월 말로 연장하는 데 성공했다.
청담동에 위치한 ‘더발렌티 웨딩홀’을 고급주택으로 개발하는 사업의 경우는 기존의 건물주가 토지매각 계약금을 받은 후 사업장을 담보로 받은 대출이자를 납부하지 못해 EOD 위기에 부딪히기도 했다.
올해 6월까지 토지공매 절차가 4차례 진행됐는데, 매수자측에서 수차례 고심 끝에 기존 토지주의 주식을 전량 인수하면서 가까스로 금융 위기를 벗어났다. 현재는 매수자측에서 지하 4층~지상 20층, 오피스텔 12실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분양 시장이 향후에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금리도 높고 공사비도 2년 전에 비해 사업성이 도저히 나오지 않을 정도로 올라갔다”며 “브릿지론 연장까지는 겨우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입지가 좋고 건설사가 분양을 통해 공사비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분양불’ 조건의 PF사업장이 아닐 경우에는 본PF로 이어지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신영, 브라이튼 여의도 PFV서 5년 간 321억 무이자 차입
문제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주거시설을 짓는 사업장들은 겨우 만기 연장을 받아 일시적으로나마 숨통이 틔였지만, 지방 사업장은 이같은 기적이 일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부동산금융업계 관계자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진행하는 PF 사업장들은 그나마 여건이 괜찮은 편이지만, 지방은 상황이 다르다”며 “5대 광역시처럼 지방에서 입지가 좋은 곳들도 EOD가 발생해 공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산 해운대에서 추진하던 한 PF 사업장은 대주단 가운데 한 곳이 회사 내부 규정 강화로 해당 브릿지론 만기 연장을 거절하고 회수를 요청했다. 해당 프로젝트를 이끌던 시행사가 다급하게 새로운 대주를 찾아나섰지만 결국 새로운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고 결국 EOD로 인해 사업장은 공매에 넘겨졌다.
국내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 시행사 신영도 고금리에 맞설 현금 확보를 위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신영은 지난 10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추진 중인 ‘브라이튼 여의도’의 분양이 끝나기도 전에 사업시행사인 프로젝트금융회사(PFV)인 여의도MBC부지복합개발PFV로부터 일부 이익금을 무이자로 차입하는 방식으로 먼저 정산받았다. 차입금은 321억원 규모, 5년 만기로 이자율은 0%다.
브라이튼 여의도는 여의도MBC 부지를 개발해 지하 6층~지상 최고 49층 규모 공동주택 2개동과 오피스텔 1개동, 업무시설 1개동을 복합 개발하는 사업이다. 오피스텔은 2019년 일찌감치 성황리에 분양을 마쳤지만, 당초 3.3㎡당 약 1억원에 선분양하려는 목표를 세웠던 공동주택은 고금리와 부동산 시장 냉각으로 임대 후분양으로 방향을 틀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시행사들도 고금리에서는 현금흐름이 줄어드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며 “신영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시행사인데 몇 년사이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바뀌면서 임차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브라이튼 여의도 PFV와 협의해 원래대로라면 분양 이후 지분별로 정산받아야 할 배당금 대신 현재 일부 수익금을 무이자 차입금 형태로 받아 현금흐름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며 “분양사업 완료 전에 먼저 정산금을 받는 사례는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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