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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미국보다 주거비가 저렴한 이유[김현아의 시티라이브]

[통계로 읽는 도시] ②
‘소득 대비 주거비 30% 법칙‘…韓은 이보다 낮아
대출 이자·교통비도 주거비 포함돼야

서울 시내 한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도시에 살려면 과연 소득의 얼마를 주거비로 지불해야 할까? 지난주에는 집값 대비 전세가격 비율에 대해 살펴봤다. 그렇다면 이는 집을 빌리는 차주 입장에서 적절한 수준일까?

월세가 보편화된 외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구소득의 30%를 주거비로 지출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한다. 이는 일명 ‘소득 대비 주거비(Rent Income Ratio, RIR) 30%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적정 주거비는 소득의 어느 정도일까

30%라는 수치는 1910년대 미국 노동자의 주거비(임대료·전기료·난방비)조사 결과, 주거비가 가구소득의 20~25%로 나온데서 출발한다. 1940년대부터 미국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임대료 결정 시 이 원칙을 적용해왔다. 즉,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를 가구소득의 20~25% 이내로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물가가 오르면서 이 수치는 결국 1980년대 30%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제한한 이유는 주거비 부담이 소득의 30%를 넘을 경우 식료, 의류, 교통, 의료비 등 필수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다.

초기 임대주택 임대료 산정에 참고자료로 사용된 이 30% 원칙은 점점 주택 구매 시 융자한도를 결정하는 자료로도 사용됐다. 실제 1930년대 미국에서 일반 가구들에게 대출을 해줄 때 매월 상환금액이 가구소득의 25%를 넘지 않도록 했다.

물론 이렇게 한 이유는 차주의 경제적인 사정보다 은행의 건전성 때문이었다. 소득의 30% 이상을 모기지 상환금액으로 갚아야 하는 가구들은 경제상황에 따라 연체나, 채무불이행의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 비율은 조금씩 늘어났는데 우리나라의 대출규제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 역시 이 원칙(적정주거비 원칙)을 차용했다고 볼 수 있다.

미 연방주택도시개발부(HUD)가 제시하는 주거비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소득의 30%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가구는 ’주거부담가구(housing cost-burdened)‘로, 소득의 5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가구는 ’심각한 주거비 부담가구(severe housing cost-burdened)‘로 정의하고 있다.(박미선외, 교통비용을 고려한 주거부담지표 개발 및 활용방안 여구, 2018, 국토연구원 참조)

소득계층별 주거비 부담비율을 조사해 보면 저소득층일수록 이 비율이 높고 고소득층일수록 낮다.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의 절대금액 자체가 적은데 그나마 그것의 절반가량을 주거비로 써야 한다면 사실상 생활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이들에게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게 된 배경이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사진 연합뉴스]

국내 주거비 부담이 낮은 이유

임차방식의 40%가 전세며, 월세 역시 고액의 보증금이 보편화돼있는 우리나라의 주거비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 주거비 통계는 국토교통부가 조사해 발표하는 주거실태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22년 주거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2021년 임차가구의 월소득 대비 월 임대료 비율은 전국 기준 15.7%다.

지역별로 수도권 17.8%, 광역시 등은 14.4%, 도지역은 12.6%로, 지방보다 수도권이 더 높다. 앞서 살펴본 미국의 경우 이 비율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과연 우리나라의 주거비가 미국보다 낮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전세와 보증부 월세를 월세로 전환해 외국 통계와 비교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이다. 따라서 외국의 비율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하는지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다. 아울러 지난 정부에서 왜 그렇게 전세대출을 확대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의 평균 아파트 가격이 10억원을 넘으면서 전세보증금 역시 ‘억 단위’로 치솟았다. 이 정도 자금은 직장 생활 시작 후 수년간 저축해야 모을 수 있다. 또 저축을 한다해도 마련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전세대출이 시작됐다. 저금리 때는 대출이라도 받아 전세로 거주하는 것이 저렴하지만 고금리 때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렇게 전세대출이 보편화됐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세대출에 대한 이자부담 역시 주거비에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석유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유가변동에 따라 교통비가 크게 늘어난다. 미국도 교통비를 포함해서 주거비 수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출퇴근에 거의 2시간이 소요되는 원거리 출퇴근자의 경우 교통비를 주거비에 포함하면 현재 15.7% 수준인 월소득 대비 월 임대료 비율은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5년 동안 서울의 집값과 전세값이 급등하면서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경기도 등으로 이주하는 가구들이 늘었다. 이때 이들의 주거비 부담은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교통비는 늘어났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출퇴근 소요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감안한다면 이들의 주거비용은 결코 감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에 ‘뽀뽀뽀’라는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침 8시쯤 시작하는 방송이었는데 그 당시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뽀뽀뽀’ 보고 출근한다.”라고 하면 직장에서 집이 가깝다는 뜻이었다.

결혼 초기 시부모님께서 육아를 전담해 주시다가 직장근처로 거주지를 옮긴 필자는 살림과 육아, 직장생활을 병행하느라 힘들었지만 직주근접이 주는 삶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1시간 30분 이상 걸려 출퇴근하다가 ‘뽀뽀뽀’를 보고 출근할 수 있게 되자 더 많은 여유 시간이 생겼다. 아침과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교통비도 확 줄었다. 일자리와 거주지가 가까이 있는 삶,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선호하는 것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라면 더 그럴 것이다. 대중교통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우리나라는 그래서 역세권 주택에 대한 임차수요가 높다. 임대료가 높지만 교통비나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을 감안한다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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