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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경제 대들보 반도체…‘초격차’로 재도약한다

[반도체 살아야 한국 경제 산다] ①
‘한파 지나 봄’…내년 흑자 전환 
메모리 반도체 바닥 찍고 반등 ‘조짐’

삼성 서초사옥.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창훈 기자] 한국 경제의 대들보인 반도체 산업이 2023년 이른바 ‘최악의 한파’에 시달린 가운데, 우리 기업이 강점을 보이는 디램(DRAM)·낸드플래시(NAND)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살아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2023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4년에 실적 개선 속도를 높일 것”이란 기대감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에선 “2024년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 규모보다 공급 확대 규모가 작아 수익률 회복도 빠를 것”이라는 긍정론도 제기된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 시장 회복 속도를 두고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란 신중론도 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초(超)격차’를 꾀하는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역량을 발판 삼아 인공지능(AI) 등 시스템 반도체 시장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반도체 업계와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3년 연결 기준으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 솔루션(DS)에서 13조원 넘는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전자는 2023년 3분기 DS에서 3조7500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고 집계했다. 이에 따라 2023년 1~3분기 누적으로 DS 영업손실은 12조6900억원에 달했다. 국내 증권사는 대체로 2023년 4분기 삼성전자의 DS 영업손실 규모를 1조원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2023년 DS에서만 14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이란 예상이 많은 셈이다. 증권업계는 DS 영업손실을 포함해 삼성전자의 2023년 4분기 영업이익을 적게는 2조5000억원, 많게는 4조5000억원 정도로 전망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23년 1~3분기 누적으로 매출액 21조4602억원, 영업손실 8조763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고성능 메모리 제품을 중심으로 시장 수요가 증가하면서 회사 경영 실적은 지난 1분기를 저점으로 지속 개선되고 있다”라며 “특히 대표적인 AI용 메모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3, 고용량 더블 데이터 레이트(DDR)5 등과 함께 고성능 모바일 DRAM 등 주력 제품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2023년 2분기보다 매출은 24% 증가하고 영업손실은 38% 줄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2023년 1분기 적자로 돌아섰던 DRAM이 2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한 데 의미를 두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023년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2700억원 정도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사진 연합뉴스]

“2024년 디램‧낸드플래시 공급 넘는 수요”

국내 증권업계 등에선 “2024년 DRAM과 NAND 수요 증가 규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공급 증가 규모는 작을 것으로 보여, 시장의 예상보다 빠르게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이 같은 긍정론에 불을 지핀 증권사 중 하나가 KB증권이다. KB증권은 12월 14일 보고서에서 “2025년 전 세계 DRAM 시장은 1040억 달러(약 135조원)로 추정돼 직전 최고치인 2021년 935억 달러를 넘어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또한 “2024년, 2025년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DRAM, NAND) 시장은 전년보다 각각 66%, 39% 증가한 1310억 달러, 1820억 달러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B증권은 같은 보고서에서 “내년(2024년) DRAM, NAND 수요는 전년보다 2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라면서도 “생산량은 미세 공정 전환과 고부가 생산 집중 영향에 전년보다 7~10%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초 반도체 업계 등에선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삼성전자가 2023년 다소 소극적인 감산 정책을 펴, 시장의 기대만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있었는데, 실제론 감산 효과 등으로 회복 속도가 빠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감산 종료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기를 특정하긴 어렵지만, 2024년 메모리 반도체 수요 회복 등을 고려해 원래 계획보다 빨리 생산 규모를 다시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등에선 “삼성전자가 NAND를 생산하는 중국 시안 공장 가동률을 연말까지 최소 50%로 회복시킬 것”이란 말도 들린다. 

KB증권의 12월 21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객사는 큰 폭으로 DRAM, NAND 주문을 늘리고 있어, 주문량이 기존 예상을 크게 상회하고 있다. KB증권은 “최근 1년간 DRAM, NAND 평균 판매 단가(ASP)가 70% 하락해 가격 메리트가 주목받은 가운데, PC, 스마트폰 업체가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 재고 소진이 일단락되면서 내년(2024년) 상반기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재고 축적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12월 SK하이닉스의 전망치를 한 단계 상향 조정한 것도 이 같은 긍정론과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결정으로 보인다. S&P는 SK하이닉스의 기업 신용 등급을 ‘BBB-’로 유지했고 전망을 기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했다. 

물론 현재로선 바닥을 찍어 반등하는 수준이라, 반도체 경기가 완전히 살아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12월 18일 대한상공회의소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경기 자체는 지금 록 보텀(최저점) 형태를 벗어나는 단계”라며 “아직 가격이 더 회복되고 수급 밸런스(균형)가 제대로 맞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반도체 시장 상황에 대해 “가능한 한 빠르게 내년 상반기 중에 회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그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전체적인 회복보다는 일부의 어떤 수요가 전체 마켓을 끌고 가고 있다”라며 “DRAM은 나아지고 있지만, NAND 쪽은 아직 거의 잠자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삼성전자, 아이소셀 비전 63D 공개.[사진 삼성전자]

“고부가 제품이 관건”…정부 지원 절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을 비롯해 AI에 쓰이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등 향후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고부가 제품 확대를 꾀하고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지난 11월 2일 서울 고려대학교에서 ‘메모리 반도체의 비전과 인재 육성’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에 나섰는데, 당시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바로 반도체”라고 강조했다. 곽 대표는 “인터넷부터 모바일, 빅데이터, 클라우드, AI와 같은 수많은 첨단 기술에 메모리 반도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라며 “앞으로 기술 발전 속도가 높아지면서 메모리 시장은 꾸준히 우상향하면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런 흐름 속에 메모리 반도체 고객은 필요에 부합하는 최적화된 스펙의 메모리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며 “고객별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시그니처 메모리’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를 노리고 있는 삼성전자는 초격차 기술을 앞세워 시스템 반도체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12월 19일 이미지 센서 제품군인 아이소셀 비전의 차세대 제품 2종을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공개한 아이소셀 비전 63D는 빛의 파장을 감지해 사물의 3차원 입체 정보를 측정하는 간접 비행시간 측정 센서다. 모바일은 물론 로봇, 확장현실(XR) 분야 등 다양한 미래 첨단산업에 활용된다. 아이소셀 비전 931은 사람의 눈처럼 모든 픽셀을 동시에 빛에 노출해 촬영하는 글로벌 셔터 센서다. XR이나 로봇, 드론 등 움직이는 피사체를 왜곡 없이 촬영해야 하는 분야에 최적화된 제품이란 평가다. 삼성전자는 현재 이들 제품의 샘플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래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초격차 기술 확보 등에 매진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대들보인 반도체 산업 성장을 위해 정부 지원이 지속돼야 한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범진욱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향후 AI 소프트웨어를 AI 반도체가 대체하는 등 시간이 갈수록 반도체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문제는 반도체 시장은 승자 독식 구조라, 살아남은 소수의 기업이 큰 이익을 거둔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우리 반도체 기업이 그간 승자 독식의 과실을 누렸다면, 현재는 각국이 자국(自國) 반도체 기업에 대해 대대적인 지원책을 펴고 있어 어느 정도 도전을 받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정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필수 기반 시설 구축 등에 대한 정책 지원은 필요하다”라며 “우리 반도체 기업이 건설 중인 미국 공장이 완공되면, 이에 따른 인력과 기술 유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라고도 했다. 국내 전문 인력 육성 등에 대한 지원도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2월 7일 ‘2024년 산업기상도 전망 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도체 산업은 업황 개선은 뚜렷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해외 반도체 업체의 공세가 거센 만큼,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전문기관은 2024년 새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모바일‧서버 등 정보기술(IT) 전방 수요 회복으로 2023년보다 13.9%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업체의 감산과 수급 조절 노력 등으로 2024년 반도체 수출은 2023년보다 15% 내외 성장할 전망이다. 다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현재 주요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지원책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필수 기반 시설 구축 지원 등 지속적인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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