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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온, 해외서 돈 벌어 ‘국산 바이오 기술’ 지켰다

[오리온-레고켐, 의미있는 동행]①
삼성도 주목한 ‘기술력’…기술 수출 9조원 육박 

오리온 본사. [사진 오리온]
[이코노미스트 이창훈 기자] 오리온의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레고켐바이오) 인수 절차가 한 달 뒤에 마무리될 예정인 가운데, 오리온의 바이오 사업 성장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레고켐바이오가 약 9조원에 달하는 기술 수출 성과를 내는 등 국내외 바이오 시장에서 항체-약물 접합체(ADC)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ADC 관련 협업에 나서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업계 안팎에선 “오리온이 레고켐바이오를 전격 인수하면서, 자칫 해외로 넘어갈 뻔한 토종 기술을 지켰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바이오 관련 국산 기술력을 한국 기업인 오리온이 확보했다는 관점에서 이번 인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오리온은 지난 1월 약 5500억원을 투자해 레고켐바이오의 지분 25%를 확보하고 최대 주주가 된다고 밝혔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및 구주 매입을 통해 지분을 인수하는데, 인수 주체는 홍콩에 있는 오리온 계열사인 팬오리온코퍼레이션이다.

이 회사는 오리온의 중국 지역 7개 법인의 지주회사다. 오리온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5만9000원에 796만3283주를 배정받고, 구주는 레고켐바이오 창업자 김용주 대표이사와 박세진 사장으로부터 기준가 5만6186원에 140만주를 매입해 총 936만3283주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대금 납입 예정일은 오는 3월 29일이다. 


ADC 뭐길래…“현재 아닌 미래 봐야”

유통업계에선 오리온의 레고켐바이오 인수를 두고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무리한 인수”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다만 정작 바이오업계에선 “성공적인 인수”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 2020년부터 3년 넘게 바이오 사업 확장에 몰두한 오리온이 그간의 경험을 살려 이른바 ‘알짜 업체’를 인수했다”라는 분석이다.

오리온은 2020년 중국 국영 산둥루캉의약과 합자 계약을 체결하면서 바이오 사업에 진출한 이후, 국내외 주요 바이오 업체와 협업하며 사업 보폭을 넓혀왔다. 2022년에는 시린 이 치료제 관련 기술력을 보유한 하이센스바이오와 합작 회사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했으며, 지난해엔 치약 연구소도 만들었다. 올해 초에 레고켐바이오까지 인수하면서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 사업 확장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다. 

바이오업계에선 “레고켐바이오가 지난해 3분기까지 적자를 내는 등 지금의 성적표는 그리 좋지 못하지만, 성장 가능성 측면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업체”라는 평가가 많다. 이는 이 회사가 ADC 관련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체-약물 결합 방식의 차세대 항암치료제인 ADC 항암제는 높은 치료 효과를 보유한 약물을 항체에 부착한 바이오 의약품이다. 정상 세포가 아닌 종양 세포만을 표적하고 사멸시키도록 설계돼 있어, 기존 항암제와 달리 정상 세포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도 치료 효과를 극대화한다. ADC가 차세대 항암 기술로 주목받는 이유다. 바이오 업계는 ADC시장이 2022년 8조원 규모에서 2026년 17조원으로 대폭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대표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도 ADC 개발에 뛰어들었는데, 이를 위해 협력한 업체가 레고켐바이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월 7일 레고켐바이오와 위탁개발(CDO) 신규 계약을 맺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계약을 통해 ADC 치료제 개발에 필수적인 항체 개발에 참여하고, 세포주 개발 등 임상 물질 생산 전반에 걸쳐 CDO 서비스를 레고켐바이오에 제공한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차세대 바이오 기술로 떠오르고 있는 ADC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투자 활동을 적극 이어 나갈 것”이라며 “레고켐바이오와 같은 국내 유망한 바이오테크와의 협업을 강화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라고 말했다. 

삼성뿐 아니라 글로벌 바이오 업체도 레고켐바이오와 협업하고 있다. 레고켐바이오의 기술 수출 규모가 9조원에 근접할 정도다. 지난해 말 글로벌 제약사인 얀센과 2조2000억원 규모의 기술 이전 협약을 맺기도 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레고켐바이오의 기술 이전 계약은 총 13건으로, 기술 이전료만 8조7000억원에 달한다. 2005년 설립된 레고켐바이오는 독자 연구 개발한 차세대 ADC 기술을 기반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ADC 분야에서 총 4개의 파이프라인이 임상 단계에 진입해 있는데, 향후 5년 내 추가로 임상 단계의 파이프라인 5개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개발 중인 신약 후보 중 3상에 진입한 유방암 치료제 LCB14는 상업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레고켐바이오는 국내외 굴지의 바이오 업체에 기술을 수출하는 등 이미 ADC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라며 “상업화 전에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 등으로 실적이 다소 저조할 수는 있지만, 차세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ADC 시장의 고성장으로 글로벌 주요 바이오 업체들이 ADC 관련 대규모 인수합병에 나서는 상황”이라며 “국내 토종 기업으로 ADC 기술력을 보유한 레고켐바이오를 한국 기업인 오리온이 인수한 것은, 한국의 바이오 기술력 측면에서 긍정적인 일”이라고 했다. 실제 지난해 미국의 바이오 업체인 화이자는 미국 ADC 관련 전문 업체인 시젠을 무려 56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주고 인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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