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퇴보의 상징 확률형 아이템…대체 BM 찾아라
[위기의 한국 게임산업]②
게임사 매출 극대화 역할…유저들은 ‘울상’
칼 빼든 정부, 오는 3월 22일부터 정보 공개 의무화 시행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 최근 국내 게임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확률형 아이템’이다. 정부는 오는 3월 22일부터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를 시행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직·간접적으로 유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모든 게임 아이템의 확률 정보 공개가 의무화되는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일정 금액(현금 혹은 금전 대체물인 게임머니 포함)을 지불해 구매하지만, 구체적인 아이템의 종류나 그 효과와 성능 등은 소비자가 개봉 또는 사용할 때 우연적 요소(확률)에 의해 결정되는 상품을 말한다.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일본식 표현인 ‘가챠’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확률형 아이템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04년이다. 당시 넥슨은 일본에서 서비스하던 ‘메이플스토리’에 새로운 캐시 아이템인 ‘가챠폰티켓’을 선보였다. 가챠폰티켓은 1장당 100엔에 판매됐으며, 티켓을 가챠폰(뽑기 자판기)에 넣으면 무작위로 아이템이 나오는 방식이었다.
확률형 아이템으로 매출 극대화에 성공한 게임사들
가챠폰티켓 판매량이 예상을 뛰어넘자, 넥슨은 지난 2005년부터 한국 메이플스토리에도 확률형 아이템을 출시했다. ‘부화기’로 불렸던 해당 아이템은 처음에는 기간 한정으로 출시됐으나 판매량이 많이지자, 2008년부터는 아예 상시판매로 전환됐다. 넥슨이 시작한 확률형 아이템은 빠르게 국내외 게임사들로 퍼져나갔다.
게임 과금 모델은 크게 두 가지다. 정액제와 부분 유료화다. 정액제는 매달 고정 금액을 지불해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반면 부분 유료화는 무료로 게임을 제공하고 일부 아이템에 과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2010년대 들어서 부분 유료화가 업계 표준으로 본격 자리 잡으며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사들의 주요 수익모델이 됐다. 확률형 아이템 방식도 단순히 상자를 여는 방식에서 무기·방어구를 강화하거나 캐릭터를 수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도화됐다.
특히 지난 2015년부터 대형 게임사들이 본격적으로 모바일게임 시장에 뛰어들며 시작된 모바일 역할수행게임(RPG) 열풍은 게임사들에 일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PC 온라인게임에 비해 결제가 상대적으로 간편한 모바일게임과 확률형 아이템의 만남은 게임사 입장에서 신세계였다. 특히 당시 PC 온라인게임 결제 한도가 50만원이었던 반면 모바일게임 결제 한도는 없었다.
아울러 모바일게임의 경우 PC 온라인게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개발 비용이 저렴했다. 적은 비용으로도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진 것 역시 확률형 아이템이었다.
이후 확률형 아이템은 점점 더 진화했다. 이제는 ‘이중가챠’, ‘컴플리트 가챠’ 등 다양한 변종 확률형 아이템이 유행 중이다. 이중가챠는 기존 확률형 아이템을 통해 나온 결과물을 일종의 재화로 활용해 또 다른 상위등급 아이템을 뽑는 방식이다. 컴플리트 가챠는 확률형 아이템에서 나오는 재화들을 모으면 보상으로 또 다른 아이템을 주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빙고판을 채우는 것 등이 있다.
특히 컴플리트 가챠의 경우 완성형 확률형 아이템으로 불린다. 일본은 2020년 소비자청 고시로 금지했다. 컴플리트 가챠의 무서운 점은 최종 보상 확률을 게임 이용자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3X3의 9칸짜리 빙고판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게임 이용자들은 보통 각 칸에 해당하는 아이템 확률이 동일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특정 칸에 해당하는 아이템만 확률을 낮게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게임 이용자들은 해당 칸에 해당하는 아이템을 뽑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특히 8칸을 다 모은 게임 이용자는 중간에 포기하기도 어렵다. 나머지 한 칸을 채워야만 보상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확률형 아이템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유저들이 게임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점점 더 커졌다는 점이다. 특히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이 확률형 아이템으로 소위 ‘대박’을 터트리면서 이를 모방한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게 됐다. 게임의 다양성보다는 매출 올리기에 좋은 확률형 아이템들이 대거 등장하자, 유저들의 실망감도 커졌다.
결국 보다 못한 정부와 국회가 나섰다. 국회는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에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게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 공개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3월 22일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제도(확률 정보공개) 시행에 앞서 확률 정보공개 방식에 대한 세부적인 해석, 기준을 안내하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관련 해설서를 배포하기도 했다. 해설서에서는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한 게임사-게임 이용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할 수 있도록 ▲확률형 아이템의 범위 ▲확률형 아이템별 표시 사항 ▲게임 및 광고·선전물 내 표시 방법 등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했다. 아울러 문체부는 이번 해설서 배포와 함께, 제도 시행 이후 위법 사례를 감시하기 위한 확률형 아이템 모니터링단 24명을 게임물관리위원회와 함께 운영하기로 했다.
확률 정보공개 시행과 관련해 유저들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게임업계가 자율규제를 통해 확률을 공개해 왔지만, 홈페이지 구석에 확률표를 공개하는 등 편법을 쓰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이번 시행을 통해 게임사들의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들이 어느 정도 줄어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배틀패스 등 대체 BM 찾기 고심하는 게임사
실제로 일부 게임사들은 확률 정보공개 시행에 앞서, 확률형 아이템을 최대한 배제하고 ‘배틀패스’ 방식의 유료 아이템을 선보이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배틀패스란 과제 달성이나 출석 일수 등 게임 진척도에 맞춰 보상을 제공하는 일종의 비즈니스모델(BM)로, 최근 확률형 아이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넥슨의 ‘서든어택’이 배틀패스를 도입해 큰 성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넥슨 측에 따르면, 배틀패스 과금 상품인 ‘서든패스’가 유저들의 플레이 동기를 강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든어택 외에도 최근 많은 게임이 배틀패스 형식의 과금을 도입하고 있다.
다만 배틀패스의 경우 ‘박리다매’ 방식이라는 점에서 일정 수 이상의 유저를 확보하지 못하면 게임사 수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울러 여전히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대다수 게임의 수익은 확률형 아이템 BM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또 다른 대안은 패키지형 콘솔 게임 등 확률형 아이템을 도입하기 어려운 장르의 게임을 출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미나 유럽 등 서구권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유저들이 많다. 이에 해당 시장에서는 확률형 아이템 등이 배제된 콘솔 패키지 게임이 여전히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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