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낳아도 애국자? 안물안궁”이라는 청년들에게 [이근면의 시사라떼]
내 삶에 개입하지 말라는 청년들 아우성…기성세대 향한 원망
‘라떼들’ 무조건 내 편 되주는 것 가족뿐이라는 것 알아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몇 년 전부터 설날에 세뱃돈 주면서 조카들에게 잔소리하려면 과태료를 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유행했다. 성적은 어느 정도인지, 연애는 하는지, 취업은 언제쯤 할건지 물 어볼 거면 돈을 내라는 거다. 그러더니 어라? 대놓고 ‘설 연휴 잔소리 메뉴판’이 등장했다. 대학 질문은 10만원, 연봉 질문은 50만원, 둘째 계획 질문은 100만원이란다! 참 격세지감이다.
‘설 연휴 잔소리 메뉴판’에 가족의 변화 알 수 있어
우리나라 대표 명절 설날은 가족 간의 순수한 유대와 화합의 산물인데 갈등과 눈칫밥의 상징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친부모도 아니면서 내 삶에 개입하지 말라는 청년들의 아우성은 그만큼 먹고살기 힘든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를 향한 원망도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여러 잔소리 중에서도 출산에 대한 잔소리는 조금 다르다. 이 문제는 세대를 막론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경고는 이미 현실이 됐고 사회의 근간이 무너져가는 징후들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유치원은 노인요양시 설로 바뀌고 대학은 신입생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고 있다. 수도권엔 사람이 더 몰릴 것이고 시골은 이제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출산율이 0.6명대를 기록했다는 뉴스는 대한민국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충격과 공포를 줬다.
베이비붐 세대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늘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아이가 넘쳐나 집마다 자식이 대여섯 명씩 있는 건 흔한 풍경이었고 학교는 콩나물시루처럼 바글거렸다. 나의 경우 초등학교 한 반이 100명이었 다. 형제 많은 집안에서 어린이들은 사회성을 길렀고 질서를 익혔다. 무엇보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형제는 망망대해 같은 사회에서 의지할 수 있는 평생의 기댈 언덕이 되어 주었다. 노년기로 접어든 베이비부머들에게 형제는 노쇠한 육신과 시들어가는 영혼에 안식처가 되고 함께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지가 되어주고 있다.
필자가 어릴 땐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었 다. 형제 많은 집에서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려면 젓가락질이 가히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수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아 만성적인 배고픔에 먹을 것 가지고 형제지간 다툼도 빈번했다. 그러면서 눈물도 흘리고 다시 화해하고 동지애를 다지고 또 화합하는 것이다. 지금은 하나밖에 없는 귀한 자녀가 젓가락질은 어떻게 해도 좋으니 제발 밥만 먹어달라고 비는 세상이다.
어떤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인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궁금한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때 형제 없는 요즘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 겪게 될 풍파와 고독은 누가 채워줄까?
경험이 중요하다면서…왜 출산·양육은 권하지 않나
늙어가며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는 공평하게 다가온다. 부모들은 자기들만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하나만 낳아 최선을 다해 양육하지만 말 못하는 어린아이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은 과연 그 선택에 동의할까? 우리는 부모의 선택할 권리는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의 권리에는 도무지 무감각하다. 혼자서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은 의지할 형제를 정말 원치 않을지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출생권에도 소송이 벌어질 거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라고 한다. 젊었을 때 경험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나이가 들었을 때 한층 성숙한 인간이 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만큼은 누구도 경험을 많이 해 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힘들지만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고 그 속에서 성장과 성취를 느껴보라는 조언을 하 지 않는 것은 선배 세대의 직무 유기다.
필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국가의 산아제한 정책에 순응한 착한 국민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말 잘 듣는 국민이 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둘보다 더 많은 자식이 곁에 있다면 노년이 좀 더 풍성하고 든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육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이고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겠지만 가족을 위한 희생은 그 자체로 의미와 기쁨이 되어주는 것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사회생활에 찌든 ‘라떼들’은 절실히 느끼지 않았는가, 차가운 세상 속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은 오직 가족뿐이라는 것을! 머리 맞대고 눈을 마주하며 밥 같이 먹는 소중한 내 식구뿐이라는 것을!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지났다고 가족의 가치마저 달라질 것 같은가. 결국 당신도 아이 낳고 가정을 이루면 여느 부모와 같이 내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단한 부모가 될 터인데 그 모습을 왜 이리 희화하는가.
미국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애국과 가족 간의 정이다. 갈수록 잃어버리기 쉽기에 잊지 말라고 강조하는 의미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TV를 틀기만 하면 온갖 배신과 불륜 따위의 매운맛 소재로 결혼과 출산을 공포의 대상으로 몰아간다. 떨어지는 출산율에 국가소멸 위기를 외칠 때는 언제고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다.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시급한 모두의 내일을 언론부터 외면하는 것. 이것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까? 헬조선의 멍든 청년에게 주는 교훈일까?
지켜야 할 가치는 시간이 흘러도 같다. 한강의 기적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겪으며 이 소중한 존재의 가치와 품격을 잃어버린 것 같아 애석한 마음이다. 행복의 시초인 내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는 데서 가치와 품격은 시작한다. 어렸을 적 나는 그렇게 배웠다. 다 이루지 못한 사랑과 가치이지만….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써 내려갈 때 무엇을 느끼게 될 까? 영원히 젊음을 향유할 것처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감상과 울림으로 남겨질까? 상상해보라! 그리고 돌아봤을 때 행복한 길을 찾길 바란다
필자는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 후 40여 년 동안 인사업무를 맡은 전문가다. 2014년 초대인사혁신처장으로 국가의 인사혁신을 주도했다. 현재 성균관대 특임교수와 사람들연구소 이사장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제언 및 연구 활동 등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일자리연대·연금연구회 등에서 고문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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