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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못할 대출 PF 욕심 후폭풍…메이저 건설사도 휘청

[1군 건설사도 흔들린다]①
태영건설 이어 롯데건설·신세계건설도 우려↑
금융당국 "우량 사업 돕고, 부실 사업은 정리"

태영건설의 성수동 개발사업 부지 모습.[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한국에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블룸버그통신은 “2023년 말, 태영건설의 구조조정 발표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재발 위험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이런 구조조정은 그림자 금융의 부담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난달 밝혔다.

그림자 금융이란 은행과 비슷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규제를 덜 받는 비은행 금융기관과 이런 기관에서 제공하는 금융투자상품을 말한다. PF 대출·보증, 유동화증권, 신탁, 펀드 등이 있다. 부동산 그림자 금융은 자금 중개 과정이 길고 차입 규모가 큰데, 부동산 시장 침체 등 강한 충격을 받으면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다 쓴 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해당 기업 하나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업과 관련한 자회사를 비롯해 거래처, 여기에 돈을 빌려준 다른 금융 기관 역시 줄줄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룸버그가 언급했던 ‘태영건설 워크아웃’이다. 2023년 기준 시공능력 16위에 이름을 올린 태영건설은 메이저로 분류되는 ‘1군 건설사’다. 태영건설은 충분한 자기 자본 없이 무리하게 PF 대출을 통해 부동산 개발에 참여했다가 돈을 갚지 못해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당시 태영건설이 관계한 PF 사업장은 총 60개,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140건이었고 600여 개에 달하는 공사 관련 협력업체와 하도급 계약 1000여 건이 연관돼 있었다. 태영건설의 PF 사태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023년 말, 태영건설의 구조조정 발표는 PF 부실 재발 위험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이러한 구조조정은 그림자 금융의 부담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그림자 금융 규모는 926조원. 10년 전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또 코로나19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PF 부실이 확대됐고 지난해 말 기준 저축은행 연체율은 6.55%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의 두 배 수준이다.

롯데건설·신세계건설…부동산 침체에 유동성 위기까지 

태영건설 사태는 정리되고 있지만, ‘PF’로 촉발한 국내 건설사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가 9일 발표한 ‘건설사 책임준공 의무, 가중되고 있는 책임의 무게’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11개 건설사의 책임준공 약정액 집계 결과 61조원으로 나타났다. 2022년기준 약정액이 약 58조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가량 늘어난 것이다. 나신평이 들여다본 주요 건설사는 ▲현대건설 ▲GS건설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DL이앤씨 ▲KCC건설 ▲SK에코플랜트 ▲코오롱글로벌 ▲HL디앤아이한라였다.

나신평은 “부동산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고위험군인 직접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에서 저위험군인 책임준공 약정으로까지 부정적인 영향이 확대되고 있다”며 “책임준공 약정이 건설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사진 연합뉴스]

시장에서 우려의 시선이 쏠리는 곳 중 하나는 롯데건설이다. 지난 1월 하나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롯데건설은 PF 규모가 크고, 1년 내로 돌아오는 PF 채무가 유동성보다 크다”며 “(사업성이) 좋지 않은 PF 사업장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태영건설과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건설의 PF 현황을 보면 자기자본 대비 PF 보증 비중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212.7%. 주요 건설사 중 태영건설(373.6%·별도 기준) 다음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 1분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미착공 PF 규모는 3조2000억원인데 서울 외 지역 공사 비중이 78.1%인 2조5000억원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기 서울보다 지방에서 미분양 우려가 커지고, 이 때문에 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롯데건설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짐작할 수 있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PF 우발채무까지 고려하면 롯데건설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PF 만기를 모두 연장해도 본 PF로 전환하지 않으면 리스크가 반복될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 우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롯데건설은 강원중도개발공사가 기업회생신청을 했던,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 당시 5000억원을 단기차입 했었다. 한 달 뒤에는 롯데케미칼과 호텔롯데 등 주주사를 대상으로 20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했다. 은행권 대출과 담보 차입 등으로 1조원 이상의 자금조달도 추진한 바 있다. 국내 5대 그룹사인 롯데그룹이 뒤에서 지원하는 건설사가 유동성 위기에 긴급 자금 수혈을 했던 상황임을 고려하면 PF발 건설사들의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최근 롯데그룹이 산업·신한·KB국민·하나·우리 등 5개 은행과 3개 증권사 등이 포함된 금융회사들과 함께 2조3000억원 규모의 롯데건설 PF 지원 펀드를 조성하며 숨통을 틔웠다. PF대출 만기를 3년 연장했기 때문이다.

신세계건설도 PF 여파를 피해 가지 못했다. 지난 3월 한국신용평가는 신세계건설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 기업어음(CP) 등급도 A2에서 A2-로 내렸다. 대규모 영업 적자를 비롯해 분양 실적 부진, PF 우발채무 리스크가 증가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방 주택사업장에서 미분양이 이어지면서 분양 실적이 나빠졌고 공사대금 회수에 차질이 생기면서 손실이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신세계건설의 PF보증금액(연대보증·채무인수·자금보충 포함, 이자지급보증 제외)이 2800억원. 기존 책임착공 의무를 약속했던 구포항역 개발사업을 기한 내 착공하지 못하면서 지난 2월 신세계건설의 PF자금보충(2000억원) 약정으로 전환되며 보증 금액이 불었다. 연신내 복합개발사업 현장도 신세계건설이 300억원의 PF자금보충 약정을 제공하고 있다.

PF발 위기에 대해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욕심을 냈다가 생긴 사고”라고 했다. 건설 경기가 어떤지 정확히 예측하지 않고, 막연히 개발에 성공할 것이란 전제로 막대한 자금을 빌려 썼다가 경기 침체와 미분양 사태로 탈이 났다는 뜻이다. 그는 “건축비용이 급등하고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면서 건설 경기도 당분간은 지금 수준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름 있는 건설사 가운데서도 유동성 문제로 곤란을 겪는 곳들이 더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부동산PF 정상화 추진을 위한 금융권·건설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부실 정리 칼 빼든 정부·금융당국 "부실 우려 사업장 매각"

정부도 PF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건설업에 드리운 먹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나섰다. PF 사업장에 대한 평가 기준을 개편하고, 최대 23조원에 달하는 부실 사업장을 구조조정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5월 1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합동으로 발표한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현행 PF 사업장 사업성 평가 등급을 양호·보통·악화우려 등 현 3단계에서 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 4단계로 세분화하고 사업성이 가장 낮은 4단계 사업장에 대해서는 경매와 공매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의, 부실우려 등급 판정을 받은 사업성 부족 사업장은 적극적인 사후 관리를 유도하고 ’유의‘ 등급 사업장은 재구조화와 자율 매각을 추진키로 했다. 사업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는 부실 우려 판정 사업장은 상각이나 경·공매를 통한 매각을 추진한다.

한편 건설업계 일각에서는 평가 기준을 완화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사업성을 평가할 때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더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우량 사업장들은 자금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사업성이 제고되지만, 자금수혈이 필요한 중견 건설사들은 오히려 더 위기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이 밖에 과도한 PF 수수료 개선과 유동성 공급을 위한 정책자금 확대 등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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