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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도시 집중화’ 해결 필요…독일 사례 연구해야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독일의 지역 강소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 활발
독일 지방 정부도 스타트업 재정 지원 적극 나서

6월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박람회 '넥스트라이즈 2024'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 수도권 집중화와 지방 소멸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직면한 심각한 사회 문제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실정도 다르지 않다. 많은 지역 스타트업이 더 풍부한 자원과 인프라를 찾아 서울로 떠나고 있다.   

여러 수치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의 67.4 %가 서울에 있고, 12.7%가 경기도에 분포하고 있다. 같은 해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초기 창업 기업의 70.7%가 수도권에 있다. 

스타트업의 도시 집중화를 잘 보여준다. 이 현상은 스타트업이 지역에 탄생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지방 정부와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는 청년 스타트업의 정주(일정한 곳에 자리 잡고 산다는 뜻)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로 ‘정주형 창업’은 최근 스타트업 세미나와 콘퍼런스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주제다. 

스타트업의 도시 집중화는 창업을 독려하는 여러 국가가 겪고 있는 공통된 문제이다. 미국의 스타트업들은 대도시들이 많이 있는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프랑스 스타트업의 70% 정도가 파리와 인근 지역에 소재하고 있다. 대부분 아시아 국가도 다르지 않다. 아시아 스타트업들은 자국 경제 발전의 축인 거점 도시에 몰려 있다. 

지역 스타트업 클러스터 육성의 모범 국가 ‘독일’

예외적으로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의 균형적 발전에 성공한 국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이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에 성공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역사적 배경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에는 ‘부르크’(burg·성이나 마을을 뜻함)로 끝나는 도시들이 많은데, 이는 도시 국가의 유산이다. 함부르크(Hamburg)·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등이 유명한 예시다. 이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산업을 키우며 발전했다.

이것이 지역에 뿌리를 둔 가족 기업이 독일에 많은 이유다. 폭스바겐(Volkswagen)이나 보쉬(Bosch) 등과 같은 상당수 대기업은 지역 기반 가족 기업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설립 지역에 정착하고 지역에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독일 경제를 대표하는 중견 강소기업, 이른바 수많은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들도 지역 사회에서 탄생했다. 

지역 기반의 경제 생태계는 오늘날 독일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많은 독일 스타트업들은 지역 사회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기회를 찾는다. 독일 스타트업 모니터(Deutscher Startup Monitor)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독일 스타트업 매출 거래의 71.5%가 기업간거래(B2B)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의 역사적 배경과 지역 기반 경제 생태계는 오늘날 지역 기반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졌다. 

한국과 독일의 창업 생태계를 연결하는 123 팩토리(123 Factory)의 이은서 대표는 “독일은 지역마다 전통 산업을 반영한 스타트업 허브를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베를린은 핀테크와 IoT, 함부르크는 물류, 뮌헨은 모빌리티, 프랑크푸르트는 금융에 특화된 스타트업들이 모인다. 모두 지역의 전통 산업과 연관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생태계가 과거에는 비교적 베를린에 집중되었지만, 최근에는 주 정부간 스타트업 육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역별 스타트업 클러스터가 빠르게 발전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흐름 속에 독일 지방 정부들은 스타트업의 재정 지원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지방 정부가 주도하는 스타트업 펀드 결성이 대표적이다. 지방 정부들은 내부 재원을 자본금으로 펀드를 결성하고 이를 활용해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지방 정부에서 재정 뒷받침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동안, 지역 기업들은 활발한 인수 합병(M&A)으로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를 돕고 있다. 독일의 지역 오픈 이노베이션 행사에는 지역 대기업과 강소 기업 그리고 지역 스타트업들이 모두 함께한다. 한데 어우러지는 가운데 인수 합병의 기회가 생긴다. 독일 스타트업 투자금 회수(exit) 시장의 90%는 인수 합병이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역 내 기업과 스타트업의 연계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국내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도 지역 산업과 연관성 높여야

국내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역 산업과 연관성을 높이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 자금과 주도권이 지방 정부로 이양되기 시작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우리는 모범적인 독일의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 육성 방식에서 무엇을 참고해야 할까. 

첫째, 지방 정부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 지역 가족 기업과 중소기업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현재 많은 지자체가 대기업과의 협업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길게 바라보면 독일의 사례처럼 지역 기업과의 협업이 지역 경제에 더 유리할 수 있다. 

둘째 지역 기업과 지역 스타트업의 인수 합병 사례가 많아져야 한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 합병 사례조차도 흔하지 않은 국내 시장 여건상 지역 기업의 스타트업 인수 합병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규모라도 인수 합병 사례를 계속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지방 정부가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지방 정부가 주도해 벤처 금융을 조성한 사례가 없다. 예정대로라면 대전광역시가 기금을 출연해 올해 7월 출범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대전투자금융이 첫 사례가 될 것이다. 독일의 경우처럼, 지방 생태계 활성화에 적절하게 지원하기를 바란다. 

독일과 한국의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를 동일 선상에 두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역사적 배경 및 경제 발전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역별로 전통 산업 클러스터를 보유하고 있고, 그 속에 수많은 가족 기업과 중소기업이 있다는 부분은 유사하다. 지방 정부가 지역 산업을 기반으로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를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 역시 공통 분모다. 독일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 방식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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