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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원료의약품 기업…정부 지원 하세월

[의약품, ‘재료’가 없다]③
복지부, 건보종합계획 발표했지만 시기 모호
“원료의약품 직접 도움과 수출 지원 등 필요”

정부가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에 직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원료의약품(API)은 완제의약품을 만드는 재료다.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물론, 우리가 일상적으로 찾는 감기약도 원료의약품이 있어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여러 국가는 원료의약품을 중국과 인도 등 특정 국가로부터 상당량을 수입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원료의약품을 생산하거나 공급하지 않는다고 결정하면, 대다수의 국가는 자국의 의약품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산업계 곳곳에서도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의약품 공급망’이 화제가 된 이후 이런 목소리는 더 커졌다.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거나 국제 정세가 불안할 때 자유무역의 가치가 훼손되면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는 점을 경험해서다.

정부도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지난해 11%대로 하락했다. 전년 대비 반토막이 났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지난해 말 반도체와 자동차 등에 쓰이는 주요 품목 200여 개의 수입 의존도를 2030년까지 50% 아래로 낮추는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을 발표했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제품 수급에 문제가 생겨, 국내 산업이 타격을 입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다. 제약산업에서도 바이오의약품 생산 시 쓰는 배지와 일회용 백(bag) 등이 이 품목에 포함됐다.

하지만 원료의약품은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다. 의약품 시장에서 선진 국가인 미국에서도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정부는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논의의 물꼬가 트이지 못하니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일 방안과 정책, 기준과 계획은 조타수를 잃고 방황한다. 산업계에서는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10%대로 떨어졌다는 점을 우려하며 발만 구르고 있다.

정부가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일 방안으로 내놓은 대처도 사실상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료의약품의 생산 규모를 늘리거나, 해당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원 방안이 완제의약품 기업에 맞춰져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국산 원료를 사용한 의약품의 약가를 우대하는 방안 등이 제안되고 있지만, 국내 원료가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중국과 인도의 기업들을 이기기 어려워서다.

보건복지부(복지부)도 올해 초 이런 약제 지원 방안을 담은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공개했다. 제약사가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성분의 복제약(제네릭)을 국산 원료로 생산해 신규 등재하면 다른 의약품보다 약가를 우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완제의약품 생산 기업이 저렴한 원료의약품을 찾는다는 점을 고려했다.

약가의 가산 범위는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68%다. 국산 원료를 사용해 국가필수의약품에 속하는 제네릭을 생산하면 최초 등재 제네릭의 약가 가산 범위(59.5%)보다 높은 약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지원 방안은 완제의약품을 생산하는 제약사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은 ‘채산성’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료의약품은 생산 비용이 많이 들지만, 가격이 낮아 채산성이 낮다. 원료의약품을 많이 생산해도 쉽게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원료의약품 시장 자체를 키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의 한 관계자는 “완제의약품 약가를 우대하면 제약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원료의약품 기업에 필요한 지원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미-중 갈등, 우리에겐 기회?

정부가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공염불만 외우는 가운데, 제약사는 의약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공급 중단 및 부족’으로 보고된 국가필수의약품은 전체의 25%에 달한다.

국가필수의약품은 보건의료시장에 꼭 필요하거나, 시장 기능으로만 공급하기 어려운 의약품을 말한다. 복지부 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처장이 기관과 협의해 지정한다.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되고도 시장에 제대로 공급되지 못한 이유는 생산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해서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2020~2022년까지 의약품 공급을 중단한 기업의 30%는 채산성을 이유로 들었다. 또한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공급 중단 및 부족으로 보고된 국가필수의약품의 수급 상황을 살펴본 결과, ▲제조 기업의 문제(24%)와 ▲의약품의 수요 증가(21%) ▲원료 공급 불안(15%)도 이유로 꼽혔다.

한편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깊어지는 점이 국내 원료의약품 기업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현재 미국은 원료의약품의 상당수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다만 이번 중국과의 갈등을 기회삼아 미국이 원료의약품 공급을 우리 기업에게 맡길 수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국내 원료의약품 기업들이 일본 등 미국의 우방국인 국가에게 원료의약품을 수출할 가능성도 열렸다. 원료의약품 생산 기업의 한 관계자는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이, 인도는 복잡한 행정절차가 한계”라며 “원료의약품 기업의 수출길을 열어주는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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