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산율 반승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 소득불평등 완화에 힘 쏟아야" [이코노 인터뷰]
[전문가 3인에게 듣는 저출산·고령화 해법]② 하타 다츠오 아시아성장연구소 이사장
“저소득층의 저조한 결혼·출산율이 저출산의 주요 요인”
지역 특화 산업 육성해 지방소멸에 대응해야
[이데일리 최연두 기자] “정부는 합계출산율 반등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 19일 신라호텔 서울에서 만난 하타 다츠오(八田達夫·Hatta Tatsuo) 일본 아시아성장연구소(AGI) 이사장은 "저소득층의 저조한 결혼·출산율이 저출산의 주요 요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의 정책 공유를 통해 상호 성장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AGI를 설립한 그는 한·일 양국의 공통 화두인 인구 위기와 지방소멸 문제에 대한 해법을 공유하고자 18~20일 열린 제15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지난해 10월 국내 민간 정책 연구기관인 정책평가연구원(PERI)과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한·일 정책 연구 교류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출산율 상승이란 수치를 어떻게 반등시킬 것이냐에 몰두할 게 아니라 그 원인인 빈곤과 소득 양극화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결혼과 출산은 소득 수준에 따라 양극화하는 양상을 띤다. 소득이 높을수록 혼인율이 높고 출산 가구 수도 많다. 한국경제연구원(KERI)이 지난 2022년 발표한 ‘소득분위별 출산율 변화 분석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19년 소득분위별 100가구당 출산 가구 수는 상위 3분의 1(3분위)이 5.78가구로 가장 많았고, 중위 3분의 1(2분위)은 3.56가구. 소득 하위층의 출산 가구 수는 1.34가구에 그쳤다.
일본도 저소득층의 결혼율과 출산율이 저조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타 이사장은 “일본의 경우 저소득층의 결혼율이 낮다. 인구 감소가 빈곤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면 (저출산 관련 내용은) 중요한 정책 이슈가 된다”면서 “빈곤율을 낮추는 것은 출산율과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규제 완화로 지역경제 살릴 수 있어”
인구 감소와 도심 집중화로 인해 더 심화하는 지방소멸과 관련해서 하타 이사장은 “정부가 현금성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의 지원이 아닌, 규제 완화를 통해 지역사회가 특화 산업을 더 잘 키울 수 있도록 자생력을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지방소멸에 대응해 현금성 재정을 투입하는 대신 지역 특화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건 일본의 경험에서 나온 그의 경험적 주장이다. 일본은 이미 2006년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를 마주했고, 이는 곧 지방소멸로 이어졌다. 일할 청년들이 사라지고 그나마 남은 이들 모두 도심으로 이동하자 아키타현·시마네현·고치현 등 무수한 지역이 소멸 위기에 처했다.
일본 정부는 지역발전을 위해 수조 엔(수십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부었으나 여전히 지방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방소멸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타 이사장은 특히 일본 정부가 현재도 지역 발전을 위해 운용 중인 지방창생추진교부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 효과가 미미한 데다 엉뚱한 데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는 “교부금은 지역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출되고 있다”면서 “낭비적인 지출의 전형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신 아베 신조 정부(2012~2020년) 때 시작한 규제 개혁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바람직한 정책 사례로 꼽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3년 ‘아베노믹스 전략특구’를 제안해 일본 현지 10여 개 지역을 국가전략특구로 지정해 기업 투자를 가로막아 온 각종 규제를 풀었다. 이를 통해 농업·관광·의료 등 지역별 산업 경쟁력을 높였다는 게 하타 이사장의 설명이다.
이는 역시 지방소멸에 직면한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해 2000년대 초부터 지역상생발전기금,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등 여러 기금을 운용해 왔지만, 그 실효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이 많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기업과 지자체가 손잡고 규제 해소를 통해 지역 투자를 활성화하는 기회발전특구 조성을 시작했지만 이제 시작 단계다.
그는 “이러한 실험적 규제 완화는 지역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당시 농업특구로 지정된 효고현 야부시의 사례를 공유했다. 일본은 농업이 핵심 산업인 일부 지역들에서 농업법인 설립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는 외부 기업과의 경쟁을 원치 않았던 일본 각지의 농부들이 배수진을 친 결과다. 야부시가 해당 대표 지역 중 하나다. 과거에는 야부시에 농업법인을 세우려면 기업 출자 한도 규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규제 특구로 선정된 야부시가 직접 나서 농업법인 설립의 장벽을 낮추자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업의 투자 한도를 자본금 총액 기존 ‘50% 미만’으로 끌어올렸다. 또 농사짓는 사람 한 명을 임원으로 두면 법인 설립할 수 있었다. 여러 농업법인이 생겼을 뿐 아니라 외부에서 청년층도 대거 유입됐다. 2020년 기준 야부시에서 운영되는 농업 경영체(농업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개인이나 법인)는 총 800개나 된다.
“기업들의 정년 연장, 강요 말아야”
하타 이사장은 인구 소멸 대응 정책과 같은 맥락에서 고령화에 따른 인력난 우려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도 정부의 직접 개입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사람들이 더 오래 일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법적 정년을 연장하는 건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지적이다.
그는 “일본에선 기업이 근로자를 정년까지 해고할 수 없는 종신고용제도가 잘 지켜지고 있지만 이 제도가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방해하고 더 나은 인재를 고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며 “여기서 정년을 더 연장한다면 기업이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직원까지 더 오래 일하도록 만들어 신규 채용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1994년 60세를 법적 정년으로 정하고 기업의 고용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초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이를 늘리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적 정년 연장보다는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편이 효율적이리란 게 하타 이사장의 주장이다. 실제 지난해 기준 일본 기업의 정년은 60세가 대부분(66.4%)이지만, 기업이 자체적으로 65세까지 늘린 곳도 23.5%에 이르며 그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타 이사장은 “정부가 법적 정년을 정해 민간기업에 맞출 것은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정년은 각 기업이 스스로 결정하고 정부는 각 기업이 스스로 정한 운영 방침을 잘 지키는지 점검하고 확인하는 역할에 그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더 나아가 기업이 자율적으로 근로자를 좀 더 자유롭게 해고하고 채용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타 이사장은 “능력이 부족한 임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없는 현 제도 아래에선 기업들은 젊은 층 채용을 늘리려 할 뿐 퇴직자 채용은 꺼릴 것”이라며 “제도를 뜯어고쳐 무능한 퇴직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된다면 기꺼이 퇴직자를 다시 뽑을 수 있는 유인이 된다”고 말했다.
하타 이사장은_일본 오사카대와 국립정책대학원에서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경제 전문가. 1965년 일본 국제기독교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미 존스 홉킨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정부 조세위원회 전문가위원을 비롯해 주택·토지 위원장 및 전기가스 감시위원회 창립 의장 등을 거쳤다. 일본 경제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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