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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불황에 “명분이…” 수도권 레미콘 운송노조, 집단 휴업 사흘 만에 철회

수도권 14개 권역별로 운송비 협상
건설 경기 부진 속 업체도 노조도 부담
향후 순조로운 협상 이어질지 미지수

사진은 1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레미콘 공장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1일부터 운행을 거부하며 단체 휴업에 들어갔던 수도권 레미콘운송노조가 4일부터 운송을 재개하기로 했다. 사흘 만에 사실상 파업을 중단한 것이다.

레미콘 업계에 따르면, 한국노총 산하 레미콘운송노동조합은 레미콘 제조사들 단체인 레미콘 발전협의회에 휴업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의 레미콘 운송 기사는 1만1000명 규모다. 이 가운데 8400여명이 한국노총에 속해 있다.

이들은 운송비 협상을 요구하며 단체 행동을 했었다. 요금 인상을 포함해 수도권 레미콘 제조사를 하나로 통합해 계약을 맺는 ‘통합 협상’을 주장했다. 레미콘 제조사들은 수도권 14개 권역별로 운송비 협상을 해야 한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했고 운송노조는 제조사의 요구를 수용하며 운행을 재개했다.

일각에서는 레미콘 운송노조가 명분이 부족해 파업 동력을 잃었고 결국 운행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운송기사들 대부분이 노조원 신분이 아니어서 이들의 단체행동이 사실상 ‘불법 파업’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제조사가 통합 교섭을 받아들이지 않고 시간을 끌 경우 운송기사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운송기사들이 노조로 인정받지 못한 부분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 산하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레미콘운송노조를 노동조합법상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지난달에는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2006년에는 대법원이 ‘레미콘 운전기사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레미콘 운송기사들이 차량 명의와 소유권을 가지고 사업자등록을 한 점 등을 미뤄볼 때 노동조합법상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판단했다.

건설 경기 침체로 레미콘 제조사들의 상반기 실적이 좋지 않았고 하반기에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5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분기 유진기업과 홈센타홀딩스, 보광산업, 모헨즈의 레미콘 매출은 각각 1437억원, 367억원, 83억원, 7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 32%, 33%, 34.7%씩 줄었다. 주력인 레미콘 사업이 악화하면서 영업이익도 많게는 6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레미콘은 제조원가의 30%가 시멘트, 20%가 골재, 운송비가 20% 정도를 차지하는데 원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실적이 나빠진 것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시멘트 가격은 12%, 골재는 10%(수도권 기준), 운송단가는 10%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도 레미콘사들은 올 초 건설사들과의 협상에서 원자재가 인상분만큼 레미콘 가격을 인상하지 못했다. 건설 경기 불황에 레미콘의 유일한 수요자인 건설사들의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미콘 업계가 운송사업자들과의 운송 단가 협상까지 일방적으로 밀릴 경우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아는 운송 노조도 원활한 협상을 위해 한발 물러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이제 시작할 운송노조와 레미콘 업체 간 운송비 협상이 순조롭게 마무리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운송노조는 운송 요금 인상을 바라고 있지만, 레미콘 제조사들은 그동안 운송비가 큰 폭으로 올랐고 건설 경기 침체라는 악재를 견뎌야 한다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레미콘 운반비는 1회당 기준으로 2019년 4만 7000원에서 2023년 6만 9700원으로 최근 5년간 48.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레미콘 가격은 33.8% 인상된 것으로 집계됐다. 레미콘 업계 관계자는 “건설업 부진 속에 (레미콘) 업체나 운송기사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서로 한 발씩 물러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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