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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이후 스타트업과 창업가를 생각한다 [EDITOR’S LETTER]

“엑시트 이후 기업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

지난해 12월 배달의민족 입점 외식업주를 위한 '배민사장님페스타 2023'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렸다. 관람객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엑시트’(exit)라고 한다. 엑시트는 스타트업 창업가와 스타트업에 투자한 투자사에 모두 결승선으로 불린다. 결승선을 통과하면 창업가는 수많은 난관을 해결한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된다. 투자사는 성공 여부가 극히 불투명한 스타트업과 창업가가 험난한 과정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자본과 네트워크 등의 다양한 도움을 준 것에 대한 성과를 얻는다. 극히 불투명한 성공을 위해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이 엑시트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눈길을 끄는 엑시트 사례는 ▲넥슨 게임 제작사 네오플 인수(2008년 8월) ▲네이버 첫눈 인수(2006년 6월) ▲카카오의 김기사 인수(2015년 5월) ▲독일 딜리버리히어로 우아한형제들 인수(2019년 12월) ▲미국 매치그룹 하이퍼커넥스 경영권 인수(2021년 2월) ▲쿠팡 뉴욕증권거래소 상장(2021년 3월) ▲쏘카 코스피 상장(2022년 8월) ▲현대자동차 포티투닷 인수(2022년 8월) 등이 꼽힌다. 지금도 M&A와 IPO 등을 통해 엑시트에 성공한 사례는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하지만 결승선에 통과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국 스타트업의 엑시트 비율이 평균 2.3%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엑시트라는 결승선에만 시선을 집중하곤 한다. 엑시트 이후 창업가와 스타트업의 변화는 큰 이슈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공적인 엑시트 사례로 꼽히는 배달의민족(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관련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본지 정두용 기자가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DH)가 수익성 때문에 배달 수수료 인상을 요구했고, “어렵다”고 거절한 대표가 사임했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배민 특유의 문화가 사라지고 수익성에 올인하는 배민으로 변한 것이다. 

디자이너 출신의 창업가 김봉진 전 의장은 ‘배민다움’ 문화를 만드는 데 초기부터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휴가에는 사유가 없습니다’ 등으로 대표되는 자율과 규율이 공존하는 업무 문화를 배우기 위해 대기업 관계자가 견학을 왔다. ‘앉으면 내 땅’ 문구가 있는 돗자리, ‘여기 목 좋아요’가 찍혀 있는 목 베개, ‘깨우면 안대’라는 안대 등 보면 바로 웃게 만드는 배민이 직접 기획한 기념품 문구는 더 유명했다. 이런 기업 문화를 아는 이들은 우아한형제들의 엑시트를 두고 ‘문화를 팔았다’는 평가를 했다.  

보통 창업가들은 인수합병이 성사되면 일정 기간 그 기업에서 인수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거나 기업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기간을 흔히 ‘로크업’(Lock-up) 기간이라고 한다. 김 전 의장도 엑시트 이후 합작법인인 싱가포르 우아DH아시아 이사회 의장직을 맡으면서 배민 글로벌 사업에 진두지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기간이 끝난 후 고문으로 물러나 배민의 경영 자문 정도만 맡고 있고, ‘뉴믹스 커피’라는 신사업을 하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있는 이들은 배민의 변화에 “엑시트 이후 기업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한다. 엑시트에 성공하고 새로운 일을 하는 모 대표는 “창업가 입장에서 본인의 원래 의도와 계획대로 계속하고 싶은 욕망이야 있겠지만, 그걸 포기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선택했기 때문에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한 “많이 알려진 창업가의 경우 회사가 다른 방향으로 갈 때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다행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스타트업 투자 1.5세대인 투자사 대표도 “배민의 변화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기업은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하면 사라질 것이고 적응하면 살아남는 것이다”고 말했다. 

배민은 엑시트 이후 사람도 문화도 바뀌었다. 변화가 시작됐고, 그 변화를 아쉽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10년 후 배민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창업가인 김 전 의장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기회가 되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최영진 이코노미스트 산업부장 [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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