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값 급등 우습게 보던 정부 ‘발등의 불’…일주일 만에 “모든 정책 총동원”
서울 아파트 값 18주 연속 상승
국토부 장관 ‘잔등락 확신' 일주일 만에 바뀌어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정부의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과 시장에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뛰고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 실패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등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데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집값 폭등을 잡지 못한 상황이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정부는 김범석 기획재정부 제1차관과 진현환 국토교통부 제1차관 공동 주재로 기재부·국토부·행정안전부·금융위원회가 참석하는 ‘제1차 부동산 시장 및 공급 상황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었다. 정부는 회의에서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서울·수도권 일부 지역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 폭이 확대되는 만큼 투기 수요가 번지지 않도록 보다 경각심을 갖고 시장 상황을 철저하게 모니터링하면서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번 회의는 지난 18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열렸다. 그만큼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고 평가한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이날 발표한 ‘7월 넷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이번 주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주보다 0.30% 상승했다. 18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상승 폭도 커지고 있다. 7월 셋째 주 상승 폭이 0.28%였던 것과 비교하면 0.2%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이는 2018년 9월 둘째 주(0.45%) 이후 5년 10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매매뿐 아니라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62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정부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계획을 언급했다. 다음 달 발표 예정인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 ▲절차 단축을 통한 도심 정비사업 신속화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택지 주택공급 조기화 ▲수도권 내 추가 택지 확보 ▲비아파트 공급 확대 등을 담겠다고 밝힌 것이다.
또 지난 1∼5월 전국 주택 착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1% 늘었지만, 평년보다는 낮은 수준이라고 보고, 착공 대기 물량 해소를 위해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이밖에 공사비 갈등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전문가 파견·중재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3기 신도시 공급 계획이 예정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공정을 철저하게 관리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가장 먼저 공급이 이뤄질 인천 계양의 경우 ‘올해 9월 최초 분양, 2026년 12월 입주’가 목표다.
일주일만에 바뀐 판단…‘잔등락’ 외치다 ‘급등’에 화들짝
문제는 서울 부동산 가격 급등 현상에 대한 정부의 판단이 일주일 사이 극명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집값 상승이 심상치 않다는 지적에 대해 “추세적 상승 전환은 없을 걸로 확신한다”고 했었다. 박 장관은 “우리나라 경제,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집값을 급등시킬 힘이 없는 상황”이라며 “지역적으로나, 일시적으로 빚어진 ‘잔등락’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3기 신도시 착공이 시작됐고, 분양 물량도 만만찮게 대기하고 있다”며 “모든 정부 부처가 가계부채 관리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만큼 전 정부처럼 무지막지하게 집값이 오르는 상황은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준비는 항상 해놓고 있다”면서도 “시장 개입은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만에 정부의 인식이 달라진 셈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석한 18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 모두 발언에서는 더 많은 주택 공급을 약속하기보다 당초 공급계획을 이른 시일에 마무리할 계획을 발표했다. 상대적으로 교통과 정주 여건이 우수한 3기 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23만6000호의 공공택지 물량을 2029년까지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분양 가격은 ‘시세보다 크게 저렴한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그린벨트 해제 등을 통해 수도권 신규 택지도 2만호 이상 추가 공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당장 불붙은 집값 상승세를 막아설 대응 방안이 사실상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3기 신도시 건설로 인한 주택 공급 계획도 이르면 2026년에야 시작되는 만큼 주택 공급을 통한 부동산 가격 상승세를 꺾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시기를 7월에서 9월로 2개월 미루는 등 시장에 대출 확대를 용인하는 시그널을 주고, 주택 가격 상승세를 ‘잔등락’이라고 표현하는 등 사태를 가볍게 본 결과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나타났다는 지적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 주택 가격 상승세는 ‘집값이 폭등하면 앞으로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 불안해했던 무주택자들이 매수에 나서며 나타났던 현상인데, 이를 보고도 이번 정부는 그 불안함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상당 기간 부동산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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