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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남는 건 많고 걸리긴 어려워…안 하면 손해?

[건설 시장 담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②
건설‧가구‧방음 업체 줄줄이 적발
美 클레이튼법, 무조건 피해자 손해의 3배 배상

7월 30일 김용식 부장검사가 공정거래조사부(공조부) LH사건 수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건설 시장에서 담합과 관련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쟁 업체끼리 서로 제품 판매가격을 공유하고 돌아가며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다른 업체들이 들러리 서주면서 ‘무늬만 경쟁’을 하다 적발된 것이다. 당국은 업체들의 이런 행태가 시장에서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태우에이티에스와 하이텍이엔지 등 20개 방음 방진재, 조인트, 소방내진재 제조 판매 사업자들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2억1400만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2016년 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대우건설이 발주한 77건의 방음 방진재, 조인트·소방내진재 구매 입찰에 참여하면서 사전에 낙찰 예정자‧들러리 사업자 및 입찰가격 등을 합의했다.

방음 방진재는 아파트 등 건축물에서 소음·진동 완화, 배관 연결, 내진 설비 등에 사용되는 건설자재다. 조인트는 배관과 배관을 연결하는 장치, 소방내진재는 지진이 발생할 때 소방시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다.

이들 업체는 입찰이 공고되면 합의한 낙찰 예정자가 입찰할 가격을 정해 다른 업체에 알려주고, 나머지 업체는 ‘들러리’를 서는 방식으로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이런 담합 행위로 공정한 경쟁이 저해되고 건축물의 분양 대금이 상승하는 등 소비자 피해가 있었다고 보고 제재를 결정한 것이다. 공정위는 “국민의 주거생활 등 의식주와 밀접히 관련된 중간재 시장에서 발생하는 담합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적발 시 법에 따라 엄정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아파트 가구 입찰 사업에서도 8개 가구업체가 담합한 혐의로 전·현직 임직원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건설산업기본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샘·한샘넥서스·넵스·에넥스·넥시스·우아미·선앤엘인테리어·리버스 등 8개 가구업체 임직원 11명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각 법인에는 1억∼2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담합이 입찰 공정성을 해치고 시장경제 발전을 저해해 국민 경제에 피해를 끼치는 중대한 범죄”라며 “이 사건에선 담합이 장기간 진행됐음에도 당국이나 수사기관에서 발견조차 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입찰 건설사들의 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은 점, 피고인별 담합 참여 기간과 낙찰가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가구업체는 2014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24개 건설업체가 발주한 전국 아파트 신축 현장 783건의 주방·일반 가구공사 입찰에 참여해 낙찰 예정자와 입찰가 등을 합의해 써낸 혐의를 받았다. 담합한 입찰 규모는 약 2조3000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월 공정위는 주한미군이 발주한 공사 입찰에 담합한 건설사 7곳에 대해 제재를 결정했다. 공정위는 주한미군 극동공병단이 발주한 시설유지보수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우석건설, 율림건설, 성보건설산업 등 7개 건설사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9억 2900만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들 건설사는 주한미군이 2016년 8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발주한 23건의 공사에서 미리 낙찰자를 정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낙찰 순번은 제비뽑기로 정했다. 제재 대상이 된 7개 건설사는 과징금과 별도로 담합에 대한 배상금으로 미 법무부에 310만 달러를 지급했다.

美, 공정 경쟁 저해 행위 엄단…피해액의 3배 배상

일각에서는 담합 등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약해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고 지적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회사들끼리 경쟁하면 ‘제 살 깎아 먹기’라고 할 만큼 수익이 줄어드는데, 짬짜미를 할 수 있으면 가격 경쟁을 하지 않아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담합을) 해도 적발되기 어렵고, 문제가 생겨도 회사 입장에서는 과징금이나 배상금을 내는 게 훨씬 남는 장사”라고도 했다.

실제 지난 2015년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4대강 입찰담합행위로 조달청의 부정당업자 제재대상이었던 17개 업체는 모두 8·15 사면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던 김현미 의원은 조달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은 “4대강 업체들은 담합으로 인해 정부 공사 입찰이 제한되는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았지만, 행정소송을 통해 제재를 정지하고,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정부 공사를 수주해 왔다”며 “결국 부정당업자 제재마저 풀리면서 ‘법보다 건설사가 위’라는 평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담합에 대한 처벌이 엄격한 편이다. 특히 담합‧독점을 막고 공정 경쟁 촉진을 유도하는 대표적인 법 가운데 하나인 클레이튼법은 불법 행위 기업을 엄단한다. 클레이튼법 제4조는 반독점법 위반행위로 인해 영업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자는 누구든지 연방법원에 소송을 통해 자신이 입은 손해의 3배를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피해자의 손해액이 확정되면 다른 요소에 대한 고려 없이 3배에 해당하는 배상액을 받을 수 있다. 배상액에 대한 판사의 재량도 인정되지 않는다.

과거 주한미군 유류 납품 과정에서 담합했다가 적발된 우리 기업도 막대한 대가를 치른 바 있다. 지난 2020년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정유회사들은 벌금과 배상금을 내는 조건으로 민·형사 소송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벌금은 우리 돈으로 1750억원, 민사배상금은 2300억원 수준이었다. 당시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에쓰오일) 등 주요 업체들이 담합으로 올린 매출액은 7500억원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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