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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작가와 작화가’...웹툰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백세희의 컬처&로]

만화 산업 확대로 작화가·스토리작가 권리 분쟁
더욱 복잡해진 만화 산업...여러 분쟁 가능성 대비해야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웹툰 잡 페스타’에서 한 참가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예술 작품은 누가 만드는가? 물론 예술가다. 백지를 눈앞에 두고 홀로 고민에 빠진 사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예술가의 모습이다. 이런 이미지는 주로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만들어냈다. 빈센트 반 고흐로 대표되는 고독한 예술가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전형적인 작가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우리 상상 속의 평범한 예술가는 작품의 구상부터 완성까지 직접 혼자만의 힘으로 창작을 한다.

21세기의 예술은 어떨까? 미술 분야에 국한해 살펴보자. 지금까지도 혼자만의 친작(親作)을 고수하는 작가들이 있지만, 현대 미술 산업 분야에서는 순수미술부터 응용미술까지 넓은 영역에 걸쳐 ‘공동작업’이 보편적이다. 여기서 공동작업은 넓은 의미다. 대등한 관계인 협업부터 단순한 작업 보조까지, 나 이외에 다른 누군가의 노력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때가 많다. 

공동작업의 대표적인 예로는 ‘만화’를 들 수 있다. 만화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 즉 ‘작화가’가 줄거리와 대사를 모두 구상하고 그림까지 그리기도 하지만, ‘스토리작가’가 따로 있는 경우도 많다.

만화 유통 확대로 시작된 권리 분쟁

이런 경우 작화가와 스토리작가 사이의 대가관계는 서로 약속을 정하기 나름이다. 예전에는 저작권에 대한 의식도 철저하지 않았고 만화 시장도 만화방과 같은 곳에 머무는 수준이라 두루뭉술한 계약만으로도 크게 문제 될 일이 많지 않았다.

문제는 기존의 종이 만화가 디지털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작화가가 스토리작가의 허락 없이 종이 만화를 디지털화해 인터넷 플랫폼에 게시하거나, 편집 과정에서 원제목을 바꾸는 등의 일이 생겼다.

당연히 스토리작가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지만 만화는 작화가의 것이라는 의식이 공고한 만화계에서 이 목소리는 큰 힘을 얻지 못했다. 캐릭터용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공방은 더욱 치열해졌다. 분쟁은 결국 법원으로 갔다.

만화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작화가와 스토리작가는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 작화가는 ‘스토리작가는 작화가의 지휘·감독에 따라 만화의 줄거리를 만든 업무보조자에 불과하므로 스토리에 저작권이 따로 생길 여지는 없다. 만약 스토리에 저작권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소위 매절계약을 통해 작화가가 그 저작권을 완전히 양도받았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스토리작가는 ‘그림과 스토리가 한데 섞인 만화는 공동저작물이므로 스토리작가의 경우 만화의 공동저작권자로서 권리가 있다. 스토리를 제공하고 대가를 한 번에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만화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결론은 어떨까? 여러 건의 분쟁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판결까지 가기보다 스토리작가의 권리를 일정 부분 인정하는 합의로 마무리됐다. 합의의 내용은 ‘과거의 손해는 없던 일로 하는 대신, 앞으로 발생할 수익의 20~30%를 스토리작가가 가져가기로 한다’라는 방식 등 다양했다. 

하지만 화해가 이뤄지지 않은 사건도 있다. 이에 대해 우리 법원은 “만화의 스토리작가가 스토리를 창작해 시나리오 또는 콘티 형식으로 작화가에게 제공하고 작화가는 이에 기초해 다양한 모양과 형식으로 장면을 구분 및 배치하는 등 그림 작업을 해 만화를 완성한 경우” 해당 만화를 “유기적인 결합으로 완성돼 각 기여 부분을 분리해 이용할 수 없는 공동저작물”이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스토리작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나아가 “(스토리작가가) 만화에 대한 저작권을 양도·포기하였다거나 향후 재출판 또는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서비스 제공 등 다른 매체를 통한 배포, 전송 등에 대해서도 이용허락을 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라고 판단해, 스토리 저작권을 매절계약으로 완전히 양도받았다는 작화가의 주장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08. 12. 30. 선고 2007가합5940 판결 참조)

스토리작가와 작화가가 처음부터 함께 작품의 탄생을 목표로 스토리와 장면의 설정, 배치 등이 긴밀하게 연결된 창작물이 나왔다면 이는 두 사람이 공동저작권자가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공동저작권자 모두의 동의 없이 제목을 변경할 수 없고, 다른 매체에 배포·전송할 수도 없다.

물론 만화가 공동저작물이 되는지는 개별 계약에 따라 달라진다. 즉 획일적으로 ‘만화=공동저작물’ 도식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만일 스토리작가가 작화가와 기획의도·전개방향 등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 없이 독자적인 시나리오나 소설을 만들어 이를 작화가에게 돈을 받고 건네준다면, 이때 만화는 공동저작물이 아니다. 이런 경우 스토리는 원저작물, 만화는 2차적저작물로 볼 여지만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마포구 신강빌딩에서 만화가 이현세의 작품을 만드는 인공지능(AI) 디렉터가 인공지능(AI)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웹툰 산업화’로 당사자 더 많아져

위 사례는 단순히 작화가와 스토리작가 둘 사이의 권리관계를 정리하면 마무리될 수 있지만, 요즘 만화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만화 시장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웹툰 시장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웹툰 시장 초기에는 작품이 공개되는 플랫폼과 작가가 직접 교섭하고는 했으나, 머지않아 작가들을 관리하며 작품을 기획‧유통하는 전문 에이전시가 등장했다.

이런 에이전시들은 작가들을 단순 대리해 플랫폼과 연재계약을 맺거나 아예 작가로부터 콘텐츠 지적재산권(IP)의 이용허락 또는 양도를 받아 자신들 명의의 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나아가 대형 플랫폼들은 직접 자신들이 작가를 고용해 작품을 기획하고 창작하기도 한다. 이른바 ‘스튜디오’ 방식이다. 스튜디오는 분업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에 창작에 관여하는 작가들 숫자는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고전적인 배포자였던 출판사 역시 등장한다. 오늘날 만화 시장은 오프라인 소비, 즉 단행본의 출판이 온라인 소비보다 나중에 이뤄진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웹툰을 기반으로 한 영화·드라마·게임 등 2차적저작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때쯤 되면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가지고 있는 권리자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부터 신중해져야 한다. 작가가 에이전시나 플랫폼에 2차적저작물작성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넘겼는지, 아니면 작가가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교섭 대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최근의 만화 시장은 복잡다단하다. 따라서 만화가는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누군가와 처음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시점, 바로 그때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작품 하나에 얽혀있는 수많은 권리의 실타래를 예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데뷔가 급급한 신인 작가들이 원하는 모든 조건을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분쟁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는 것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채 당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만화가들이 아무쪼록 안전한 창작의 길을 걷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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