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의 공포’에 떠는 한국 경제…대미 수출 영향 받나 [스페셜리스트 뷰]
미 대중 반도체 추가 제제부터 엔캐리트레이드 청산까지…국제금융시장 패닉
향후 미 경제 둔화나 연착륙으로 전개 예상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최근 국제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세계적으로 주가와 가상자산은 급락하고, 국채 금리는 급락하며 엔화는 초강세를 기록했다. 지난 8월 1일 이후 3거래일 만에 미국 나스닥 종합지수는 8.0% 급락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4베이시스포인트(bp) 하락했다. 엔·달러 환율은 7월 초 161.7엔에서 8월 5일에는 142.6엔으로 약 20엔 급락했다. 지난 8월 5일 공포지수로 알려진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65.7로 치솟으며 코로나 팬데믹 초기인 2020년 이후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경제 침체 우려에 국제금융시장 요동
최근 국제금융시장이 발작 현상을 보인 데는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된 이유는 미국경제의 침체 우려이다. 그동안 미국경제가 선진국에서 나홀로 고성장을 구가하며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어 가던 상황에서 최근 예상보다 크게 악화된 최근 노동시장 지표들이 발표되었다. 특히 실업률이 예상보다 크게 올랐다. 2024년 3월 3.8%이던 실업률이 4개월 연속 상승하여 7월에는 4.3%를 기록했다. 시장 예상과 지난 6월 4.1%를 상회하였다. 그리고 올해 7월 비농업부문 취업자수는 11.4만명 증가에 그쳤다. 지난 6월 17.9만명, 시장 예상치 17.5만명)을 크게 하회하고 지난 12개월 평균 21.5만명에 비해서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한마디로 미국 노동시장이 일자리 구하는 사람은 느는데 고용은 줄고 해고는 늘어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그동안의 타이트한 노동시장이 급랭으로 반전될 것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었다.
또한 최근에 발표된 미국의 소비·기업 심리 지표도 악화되었다. 올해 7월 미시건대 소비자심리지수는 66.4로 8개월래 최저치로 하락했으며 올해 7월 ISM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도 46.8(기준치 50.0)로 크게 하락해 8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4개월 연속 확장기준(50)보다 낮았다.
특히 미국 실업률의 상승은 단순히 노동시장 냉각 우려에 그치지 않고 경기침체 리스크로까지 확산됐다. 실업률 지표를 이용해 경기침체를 판단하는 샴의 법칙(Sahm Rule)이 미국경제의 침체를 알리는 수준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샴의 법칙은 2019년 클라우디아 샴 전 미 연준(Fed) 이코노미스트가 고안한 것으로 최근 3개월 실업률 평균과 직전 12개월 중 최저 실업률 간의 차이가 0.5%p 이상이면 경기 침체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지난 8월 2일에 발표된 7월 미국 실업률이 4.3%로 높아지자 샴의 법칙 수치가 6월 0.43%p에서 7월에 0.53%p로 기준치 0.50%p를 넘었다. 기준치를 상회하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경기침체기 이후인 2021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이러한 지표들이 비슷한 시기에 발표됨으로써 그동안 세계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미국경제가 이제는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이로 인해 세계경제가 동반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여기에 다른 악재까지 겹쳤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추가 제재, 미국의 IT 업체 실적 악화에다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엔캐리트레이드 청산까지 가세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지난 7월 31일 미국 당국이 올해 8월 중으로 HBM 규제에 관한 세부 내용이 포함된 새로운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안을 발표할 계획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지난 8월초 발표된 인텔·아마존 등의 미국 주요 IT 업체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하였다. 또한 7월 31일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암살되면서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고조되었다.
엔캐리트레이드 축소로 국제금융시장 불안
특히 그동안 큰 폭으로 증가하던 엔캐리트레이드의 축소 리스크가 국제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켰다. 엔캐리트레이드는 초저금리인 엔화를 차입해 고금리 또는 고수익 통화 자산에 투자·대출하는 거래로 2022년 이후 초엔저 진행 과정에서 급증하였다.
엔캐리트레이드의 대용지표로 알려진 일본내 외국은행 지점의 주요자산이 2021년 월평균 7조4000억 엔에서 2024년 1~5월 평균 11조4000억 엔으로 55% 증가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엔캐리트레이드 규모가 지난해 말 137조 엔(약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렇게 증가하던 엔캐리트레이드의 흐름을 바꾸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 7월 중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는 엔화와 위안화의 저평가가 미국 제조업계에 재앙과 같다는 발언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행이 초엔저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재개하였다. 또한 7월 31일에는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0.0~0.1%에서 0.25%로 인상하고, 국채매입 규모 축소(양적 축소)도 단행했다. 이는 미국 증시 급락 등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일 금리격차 축소되고 엔화가 강세로 반전되면서 엔캐리트레이드 청산이 촉발되었다. 이는 다시 엔화 강세, 일본 주가 급락으로 이어지는 등 일본 금융시장은 악순환 양상을 보였다.
현재 엔캐리트레이드가 얼마나 청산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시카고선물거래소 엔화선물의 비상업적(non-commercial, 투기적) 포지션의 순매도 규모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지난 3월 12일 10만2000건 계약에서 7월 9일 18만2000건 계약(2007년 6월 18만8000건 계약 이후 최대)까지 확대되었다가 7월 30일 7만 3000건 계약으로 절반 이상 급감한 것을 통해 일정 부분 청산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글로벌 유동성 공급원 역할을 하고 위험자산 가격 상승에 일조한 엔캐리트레이드가 일부 청산되면서 금융시장 및 주요국 간 촘촘히 연결된 금융거래를 통해 금융불안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R의 공포 현실화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이 당분간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경기 침체 또는 경착륙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크게 네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 번째 최근 미국 노동시장 냉각이 일시적 요인에 기인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4주차 신규실업수당 청구건수는 대폭 증가한 데에는 악천후 등 일시적 요인이 가세했다. 미국 고용보고서의 가계조사에 따르면 나쁜 날씨 때문에 일을 못했다는 응답자 수가 43만6000명으로 지난 6월 5만9000명의 약 7배, 과거 역사적 평균치(7월) 3만2000명의 약 13배에 달했다.
즉 허리케인(Beryl)의 영향으로 텍사스주의 청구가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미시간주의 자동차 공장들이 여름 정비에 들어가며 해고가 늘어났고, 미네소타주가 시간제 근로자(교사 등)가 여름 동안 실업급여를 청구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는 등 일시적인 요인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즉 노동시장이 전반적으로 둔화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일시적인 요인이 해소되면 노동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으로 판단한다.
두 번째 경기침체를 알리는 샴의 법칙(Sahm Rule)이 이번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지표를 개발한 클라우디아 샴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최근 샴의 법칙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이 노동 수요가 줄어서가 아니라 노동 공급이 크게 증가하면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즉 최근 실업률 상승은 해고가 아니라 노동시장에 이민으로 인해 등 구직자가 더 많이 증가해 생긴 현상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지난 6월 해고율은 0.9%로 2000년대 들어 최저치를 보였다. 최근 점진적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은 늘어나고 기업의 구인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충격 이전에 비해서는 여전히 노동 공급(경제활동참가율)은 낮고, 노동 수요(기업의 구인자수)는 높은 수준에 있어 노동시장이 냉각되어 있다고 하기에는 이르다. 코로나19 팬데믹 충격으로 인해 노동시장의 구조변화가 노동시장 냉각을 막고 있다. 노동공급 측면에서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삶의 질 중시), 근무형태 변화(재택근무 선호)가 발생하고, 노동수요 측면에서 기업들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 채용난을 겪으면서 잉여 고용 유지 등 기업 고용 행태가 바뀌었다(Labor Hoarding).
세 번째 최근 개선된 경제지표가 발표되고 향후 경제전망이 양호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미국의 공급관리자협회 서비스 구매관리자지수(PMI)는 6월 48.8 보다 높고 확장 기준인 50를 상회하는 51.4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지난 7월 25일에 발표된 미국 2분기 성장률이 2.8%(전기비 연율 기준)를 기록해 예상치 2.0%과 1분기 성장률 1.4%를 크게 상회했다. 개인소비·정부지출·재고투자가 1분기에 비해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잠재성장률(1.8~1.9%) 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또한 최근 경제지표와 정보를 반영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실시간으로 전망하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 나우(now)' 모델은 최근 금융시장 공포 상황을 거친 8월 9일 기준으로도 올해 3분기 성장률을 2.9%로 전망하고 있다. 민간 전문가들의 전망을 수집한 '블루칩 컨센서스'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네 번째, 풍부한 유동성과 경기 악화 시 연준의 적극적인 대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 연준의 유동성 공급을 보여주는 미 연준의 자산 잔액은 2022년 5월 약 9조 달러에서 최근 7조200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약 4조 달러에 비해서는 여전히 1.8배 큰 수준이다. 유동성이 많이 풀려 있다는 것은 민간의 지속적인 자금경색, 유동성 부족 사태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그리고 경기 둔화가 가시화될 경우 미 연준의 금리인하·양적축소 중단 등 통화정책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점도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미 연준의 두 가지 책무는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다. 최근 FOMC에서 물가상승세가 꾸준히 둔화되고 있는 반면 실업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 미 연준이 이제는 물가와 함께 노동시장도 중요하게 고려할 것임을 언급하였다.
향후 미국경제는 침체 가능성이 낮지만 완만한 경기 둔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주된 이유는 큰 폭의 실질금리 플러스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물경제에 있어서는 명목금리보다 실질금리가 중요하다. 실질금리가 높아지면 현재 소비와 투자의 기회비용이 상승해 소비와 투자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실질금리가 플러스인 상황에서 현재 소비를 하게 되면 나중에 저축해 벌 수 있는 이자소득 등을 포기해야 하는데 금리가 오를수록 포기해야하는 가치가 늘어나기 때문에 소비가 감소한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미국의 실질금리(Treasury Inflation-Protected Securities (TIPS))가 2022년 8월 이후 플러스 반전되었고 그 이후 가파르게 상승한 후 큰 폭의 플러스를 지속하고 있다.
다음으로 미국의 견조한 소비를 가능케 한 미국 노동시장도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공급은 늘어나는데 반해 노동수요는 줄어들고 있어 실업률이 상승하고 있다. 또한 4%를 크게 상회하던 미국의 시간당 평균 임금상승률이 지난 7월에는 3.6%로 코로나 팬데믹 직전 3.3%, 장기 역사적 평균인 3%에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끝으로 그간 소비 모멘텀을 지지해왔던 가계 전체의 초과저축이 소진된 점도 경기둔화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샌프란시스코 연준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통해 누적된 초과저축이 2024년 3월경 소진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미 경제 변화…한국 금융·무역에 영향 미쳐
향후 미국경제는 침체나 경착륙보다는 둔화나 연착륙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미국경제의 변화는 한국경제에 금융경로와 무역경로를 통해 영향을 미친다.
우선 미국경제의 둔화가 가시화될 경우 미국경기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거나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경기 둔화로 미국이 정책금리를 인하할 경우 경기침체 우려와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전개될 수 있고 미-일 금리 격차 축소로 최근과 같은 엔캐리트레이드가 청산될 리스크가 있다. 최근 엔캐리트레이드가 청산되기는 하였지만 그동안 크게 축적된 엔캐리트레이드의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향후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발 금융불안이 재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 함께 그동안 미국의 고성장, 고금리 지속으로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위험자산에 대거 유입되었는데 미국경제의 성장세 둔화와 이 과정에 단행될 미국의 금리인하로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 최근 미국발 금융시장 패닉 과정에서 국내 주가 급락, 원·달러 환율 상승 등 국내 금융시장도 혼란을 경험해 향후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고조될 경우 국내 금융불안 재발을 완전히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음으로 미국경제의 성장세 둔화는 한국의 제1 수출 시장인 한국의 대미 수출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해 1~7월 미국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19.0%로 중국과 함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의 주요 대미 수출업종은 자동차 비중이 가장 높다. 뒤이어 전기전자 및 일반기계, 반도체, 철강 순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공 단계별로는 전기전자, 일반기계, 반도체, 철강 등 주로 중간재로 활용되는 제품의 교역이 대미 수출의 주력 수출군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경제의 둔화가 본격화되면 이들 업종의 대미 직접 수출과 제3국을 통한 대미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의 첨단산업 유치 강화로 인해 한국기업의 대미 직접투자가 확대되고 있어 공급망을 통한 대미 수출이 수출 급랭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은 높은 금융시장 변동성에 대비해 자금관리, 환위험 관리 등 위험 관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경제 성장세 둔화에 따른 대미 수출 시장 부진에 대비해 가격 및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안보와 공급망 안정화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수출시장 다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삼성경제연구소(현 삼성글로벌리서치)에서 23년간 금융 및 거시경제를 연구하였으며 현재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에서 국제금융 및 국제거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연구 관심 분야는 세계경제·금융위기·글로벌 자금흐름·외환시장·금융국제화·금융협력·글로벌 부동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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