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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을 춤추게 하라 [이근면의 시사라떼]

기획재정부 지정 공공기간 327개 달해…한 해 예산만 918조원
공공기관 대규모 통폐합도 고려해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월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직원을 ‘일잘러’로 만들기 위해서는 질책보다 칭찬이 훨씬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지적과 비난이 과연 공공기관의 무엇을 바꾸었는가? 이제는 다른 방도가 필요하다. 공공기관이 변화의 주역이 되어 스스로 목표와 규칙을 만들 수 있도록 마이크로 관리에서 벗어나 책임과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감시와 견제를 거두고 책임 있는 공공기관으로 재탄생 시키자. AI 시대에 걸맞은 신공공기관은 자율과 성과를 이루어야 한다. 누구나 원하는 일 잘하고 칭찬받는 공공기관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최고의 길이다. 

2024년 기준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공공기관은 총 327개에 달한다. 속한 인력만 해도 45만 명이 넘고 한 해 예산은 918조에 달한다. 공기업이 32개, 준정부기관이 55개이고 그 밖의 공공기관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되어 있다.

경제규모 커졌지만 공공기관 경쟁력 여전히…

공공기관의 지정과 해제, 인력과 예산 편성, 평가와 후속조치 등 공공기관 운영의 모든 측면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각 기관마다 주무부처가 있지만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고 기관의 생사여탈권은 전적으로 기재부에 달려 있다. 기재부 공공정책국에서 기관의 인사, 예산을 일일이 통제하고 경영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2007년 공운법이 제정된 이래 17년이 흘렀다. 경제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졌으나 공공기관의 경쟁력과 서비스 질은 좋아지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방만 경영, 무사안일주의, 낙하산 인사 문제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 공공기관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본 이들은 한목소리로 공운법 문제 해결을 외친다. 공운법이 오히려 공공기관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주범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운법 문제의 핵심은 공공기관 업무의 복잡성과 업종의 다양성, 규모의 방대함을 담아내지 못한 채 획일적인 틀에 300개가 넘는 공공기관을 가둬놓고 평가를 진행하는 데 있다. 그나마 2022년 기관 유형을 사회간접자본, 에너지, 산업진흥·서비스 등 업무 종류에 따라 나누었지만 여전히 적절치 않게 분류된 경우가 상당히 많다. 2021년까지는 기관 분류를 규모에 따라 대형과 중소형으로만 나누어 평가를 진행해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환경과 세계는 초격차를 지향하는 극한 변화를 추구하는데 순발성과 적응성, 미래 대비 및 준비의 속도는 충분한지 의문이다. 가히 국내 최대 기업의 두 배가 넘는 규모를 관리 운영 하는 기관으로써의 적절성을 시급히 점검해야 한다. 

공공기관에 대한 기재부의 평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공공기관운영위원장은 기재부 장관이 맡고 기재부 장관이 위촉한 20~30명의 평가위원들이 경영 평가를 실시하다 보니 평가위원은 기재부의 눈치를 보고 기재부는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정권은 공공기관을 국정과제 달성의 수단으로 활용해 대통령이 바뀌면 평가 기준도 바뀌어 공공기관을 혼란케 하고 기재부 장관이 임명한 평가위원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완벽히 보장할 수 없는 문제도 늘 지적되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린 2024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정부부처·지자체·공공 협력사업 통합 공모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한국국제협력단]

공공기관 일할 수 있게 ‘공운법’ 손 봐야 할 때 

이제는 우리 공공기관이 일할 수 있게 공운법을 손봐야 할 때다. 기재부 장관의 눈치만 살피는 통에 기관들이 일 년 내내 실사준비에만 매달린다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 

327개의 기관을 기재부에서 다 관리하니 전문성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첫째, 기재부는 공공기관의 운용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둘째, 각 기관의 실질적인 업무는 주무부처가 지휘, 통제하며 셋째, 인사권은 인사 전문 부서가 관리하도록 바꾸어 전문화를 이루어야 한다. 327개의 경영권을 각 부처가 책임지고 도맡아 현장에 밀착한 정책 수단을 통해 공공기관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대국민 서비스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협력관계 강화에 힘써야 한다. 그러려면 중구난방으로 뒤섞인 기관의 형태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 효율 중심, 서비스 중심, 생산성 중심 등 기관의 성격에 맞게 나누어 구분 관리하고 경영 평가는 민간 기관에 맡겨 전문적이고 경쟁력 있게 관리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공기관의 대규모 통폐합이 필요하다. 진흥원, 연구원, 개발원 등 비슷한 이름을 가진 공공기관이 너무 많다. 비슷한 기관에 감사, 이사장 등의 윗자리가 각종 법률에 의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비슷한 성격의 기관은 통폐합을 통해 낭비를 막되 늘려야 하는 기관과 줄여야 하는 기관을 정확하게 진단해 빠르게 줄어가는 인구수와 국가 경쟁력 강화에 맞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국적을 쇼핑하는 시대가 됐다. 공공기관의 서비스와 경쟁력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지키지도 못할 온갖 규제로 인한 허울뿐인 법률을 만들어내는 탁상공론 행정보다는 실질적 예방 규제의 필요성을 강화해 이상적인 법과 실제 시행할 수 있는 법 사이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 선택받는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각 기관의 경쟁력 제고에 직결되는 우수 인재 확보를 가능하게 하려면 공운법이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인사와 예산에 대한 통제를 느슨하게 풀어야 한다. 경영책임은 경영자율에 맡길수록 효용은 증진한다. 전근대적인 사고로 규제위주의 경영권과 경영자의 창의성은 필요 없는 덕목이 아니다. 예를 들면 공운법상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정원이 426명으로 묶여 있어 우수한 투자, 운용 인력을 유치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금은 늘어나는만큼 그 책임에 걸맞은 자율권은 필수적인 성과를 약속하는 길이다. 특히 공공기관장을 정권 획득의 상찬으로 삼는 전례에서의 탈피는 시대적, 소명적 과제이다. 

무섭게 다가오는 AI 시대에 공공 영역의 인적 수요는 효율 위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인당 생산성과 국가 서비스 비용을 획기적으로 바꾸려는 의지가 결국 국가위상과 존망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의 승부처가 될 것이다.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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