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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공유 킥보드’ 타보니...문제들 속속 보이기 시작해 [해봤어요]

[PM 산업이 흔들린다]②
서대문역~서울역 4km 구간 규제 지키며 주행
자전거 도로 주행 불가능하다는 것 단번에 느껴

8월 20일 공유 개인형 모빌리티(이하 PM)를 타고 서대문역~서울역 일대를 누볐다.   [사진 박세진 기자]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술은 마시지 않았다. 인도 주행도 피했다. 헬멧은 필수, 운전면허증도 챙겼다. 공유 개인형 모빌리티(이하 PM)를 탑승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다. 8월 20일 한낮 최고 기온 36도. 불볕더위에서 ‘문제아’ PM을 ‘법대로’ 타봤다. 약 30분간 서대문역~서울역 일대 4km를 달렸다. 그러자,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공유 킥보드와의 첫 만남은 시작부터 꼬였다. 서울 서대문구 한 건물 인근에 홀로 주차된 공유 킥보드 한 대가 보였다. 비 오듯 흐르는 땀에 고민은 사치. 외관을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곧바로 공유 킥보드 애플리케이션(앱)을 켰다. 그런데 이상하다. 눈앞에 버젓이 서 있는 킥보드가 앱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배터리’였다. 해당 킥보드의 배터리 잔량이 0%인 까닭에 앱에 따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버젓이 인도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이용할 수 없었다. 아련히 서 있는 해당 킥보드를 뒤로 앱을 다시 살펴봤다. 300m 거리에 배터리 80%의 킥보드가 한 대 주차돼 있었다. 앱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재차 킥보드를 찾아 나섰다. 

머지않아 두 번째 공유 킥보드를 마주했다. 곧장 ‘헬멧’을 쓰고 챙겨온 ‘운전면허증’을 꺼내 들었다. 전동 킥보드는 도로교통법 제2조 19항에 따라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개인형 이동장치’로 분류된다. 도로교통법상 전동 킥보드를 사용하기 위해선 ‘원동기장치자전거 면허’가 필요하다. 즉, 운전면허 없이는 전동킥보드를 빌릴 수 없어야 한다.

실상은 달랐다. 직접 공유 킥보드를 대여하는 과정에서 별도의 ‘운전면허증’ 인증은 없었다.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등과 같은 간단한 신상정보만 입력하면 전동 킥보드를 대여할 수 있었다. 운전면허 등록이 필요하다는 각종 안내 문구는 ‘건너뛰면’ 그만이었다. 면허 인증 절차가 사실상 ‘유명무실’인 셈이다. 10대 무면허 이용자들이 급증한 원인이 여기서 나온다.

경찰청의 ‘PM 연령대별 사고·사망·부상 현황’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이 무면허로 전동 킥보드를 주행하다 적발된 사례는 ▲2021년 3531건 ▲2022년 1만3365건 ▲2023년 2만68건으로 집계됐다. 3년 사이 5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같은 기간 10대 이용자가 일으킨 사고 건수는 ▲549건 ▲1032건 ▲1021건으로 증가했다.

갓길 차선을 넘어선 한 버스. PM이 다닐 여유 공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사진 박세진 기자]

초대받지 못한 손님 ‘공유 킥보드’


찝찝한 마음을 품고 차도로 향했다. 공유 킥보드는 도로 위의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쌩쌩 달리는 차들의 차량 흐름에 몸을 싣는 순간, 수많은 차의 격앙된 경적이 귓전을 때렸다. 바쁜 도심 속 공유 킥보드의 속도는 용납되지 않았다. 스트롤을 강하게 당겼다. 그럼에도 계기판에 나타나는 속도는 20km. 공유 킥보드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다. 바쁘디바쁜 서울 도심에선 걸음마 수준이다. 

지난 2017년 8월 ‘안전 확인 대상 생활용품의 안전기준’이 시행됨에 따라 전동 킥보드의 최고 속도는 25km로 제한됐다. 최근엔 행정안전부 등 주관 부처 및 대여 업체 10곳이 업무 협약을 맺었다. 협약에 따라 공유 킥보드의 최고 속도를 20km로 낮추는 시범 사업이 운영 중이다. 정부는 시범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사고 예방 효과가 입증 될 경우 관련법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속도를 제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22년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연구 자료에 따르면 PM의 운행속도를 시속 25km에서 20km로 20% 낮추면 정지거리가 26%, 충격량은 36%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 정지거리는 일정 속도로 주행하다 전방의 돌발상황을 인지한 지점부터 멈출 때까지 주행한 거리다.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속도 제한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다만, 도로 위 운전자들은 이 같은 사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애꿎은 스트롤만 당겼다. 거북이 같은 속도를 참다못한 차량들은 기자를 하나, 둘 앞질러 지나갔다. 그 순간 운전자들의 따가운 눈길이 꽂혔다. 애써 못 본 척 정면만 바라봤다. 더 이상의 민폐를 피하고자 도로의 가장자리로 최대한 바짝 붙어 운행했다. 그곳에도 난관은 존재했다.

갓길에 주정차 된 차 한대. 해당 차량을 피해 직접 공유 킥보드를 손으로 끌고 지나갔다. [사진 박세진 기자]
보행자·주정차 차량 피하느라 진땀

이 같은 노력에도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갓길에 주정차 된 차들을 마주하자 또다시 위험이 찾아왔다. 공유 킥보드엔 사이드미러가 없으니 숄더 체크(고개를 돌려 차선을 확인하는 행위)를 통해 뒤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살핀 뒤 주차된 차량을 피했다. 그럼에도 쌩쌩 달리는 차량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주정차 차량을 피할 때마다 아슬아슬한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갓길 주행 중 기자가 마주했던 주정차 차량은 10여 대. 결국 주정차된 차량을 피하기보다, 공유 킥보드를 멈춰 세우고 인도로 향하는 방법을 택했다. 살기 위해서다. 공유 킥보드의 인도 주행은 불법이다. 이에 따라 직접 손으로 끌고 다녔다. 

기자가 사용했던 공유 킥보드의 무게는 약 20~25kg 남짓. 현행 ‘도로교통법’상 ‘개인형 이동장치’의 차체 중량은 30kg 미만이어야 한다. 갓길에 정차된 차량을 피하다 보니 무거운 공유 킥보드를 ‘타는 게’ 아닌, ‘끄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됐다. PM을 법대로 타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주행의 어려움은 자전거도로도 마찬가지였다. 도로교통법상 공유 킥보드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법대로 가능하다. 문제는 자전거도로의 상황이다. 서대문역~서울역 구간에 위치한 자전거 도로 곳곳에는 갑자기 끊기거나, 급커브 해야 하는 구간이 존재했다. 또 자전거 도로 노면의 갈라진 틈들은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자전거도로’는 사실상 인도였다. 자전거도로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개인형 이동장치를 이용하는 사람보다 보행자 친화적이었다. 공유 킥보드가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현행 도로교통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기서 나온다.

이날 기자와 만난 대학생 A 씨는 “차도, 자전거도로를 이용해 공유 킥보드를 운전하는 것 보다, 낮은 속도로 인도를 주행하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고 느껴진다”며 “안전과 관련된 공유 킥보드의 규제가 강화되는 현상은 찬성하지만, 관련 인프라도 충분히 뒷받침돼야 이용자와 보행자 모두가 안전하게 PM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용 시간 30분, 이동 거리 4km 남짓. 짧은 시간, 짧은 거리였지만 공유 킥보드를 운전하며 느낀 피로감은 컸다. 실제 공유 킥보드를 운전한 시간 보다, 끌고 다닌 시간이 더욱 길었던 탓이다. 결국 서울역 인근 공유 킥보드를 주차한 뒤, 반납 사진을 촬영했다.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헬멧은 마지막까지 기자와 함께했다.
공유 킥보드를 사용할 때 착용했던 헬멧 [사진 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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