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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도파민의 관계 [이코노 헬스]

알코올 중독 내담자가 술에 의지하는 이유
만성 음주는 ‘도파민 수용체’ 기능 낮춰

서울의 한 식당 메뉴판 [사진 연합뉴스]
[김상욱 샘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알코올이 건강에 해롭단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뉴스에서는 매일 음주운전 사고를 보도하고, 밤거리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40대 여성 A씨만 해도 그랬다. 건강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술을 마셨고, 그러다 알코올에 점차 의존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A씨는 “아이 셋을 모두 키우고 생긴 허전함과 함께 폐경 탓인지 우울함이 찾아왔다”며 “술로 마음을 달래면 몸이 안 좋아지고, 몸이 안 좋으면 다시 마음이 불편해지니 또 술을 찾게 된다”고 실상을 이야기했다. 

핵심은 알면서도 먹는다는 점이다. 술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지만 건강에 버금갈 만큼, 나아가 건강보다 중요한 어떤 이유들이 숨어있는 셈이다. 다양한 이유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인간관계일 것이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술이 인간관계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술은 술을 부른다

단순 친교에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30대 후반 여성 B씨가 그랬다. B씨는 업무 때문에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 탓에 사람 대할 때마다 심장이 뛰고 얼굴이 빨개져 불편했다. 그런 그도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려 심장도 차분해지고 얼굴 붉어짐도 없어졌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술을 찾는 사람도 꽤 많다. 50대 초반 남성 D씨는 인간관계 상처를 술로 달랬다고 심정을 드러냈다. 애초에 D씨에겐 주변 사람이 자신을 감시하며 괴롭힌다는 편집증 증세가 있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D씨를 심정적으로 지지해주던 부친이 사망했고, 모친도 충격을 받은 나머지 D씨에게 “너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고 엄마도 병이 생겼다”는 등 저주성 표현을 상습적으로 내뱉었다. D씨의 대인기피는 극도로 심해졌고 그 상처를 술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 알코올이 세로토닌,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기분을 고양시켜 우울감에서 벗어나게 하며, 도파민은 성취감,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집중력을 높인다. 이 과정에서 대뇌는 술에서 발생하는 쾌락을 기억해 음주 욕구를 부추기게 된다. 

문제는 알코올이 전두엽 등 두뇌 기능을 억제시킨다는 데 있다. 전두엽은 추리, 논리적 판단 등 ‘차가운 인지’와 사회성, 감정 조절 등 ‘뜨거운 인지’ 모두를 담당한다. 현실을 살아갈 동기를 도파민과 세로토닌으로 아무리 얻더라도 두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만성적 음주가 도파민 수용체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점이다. 수용체가 적어지면 도파민 분비량이 똑같아도 그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음주로 얻어왔던 쾌락 유지를 위해 더 많은 알코올이 필요한 것이다. 

뇌에서 음주를 부추기는 만큼 술을 끊으려 굳게 다짐해도 금주에 성공하기란 쉽지가 않다. 즉 알코올에 한번 빠지면 치료 후 호전돼도 음주충동이 다시 작동되면서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받은 환자의 45~80%가 치료 후 6개월 내 재발하는 것으로 보고한다. 한편 알코올 섭취를 중단했을 때의 오한, 구토, 무력감 등 금단증상도 이 회로를 통해 일어난다. 

술을 잘 마시고 못 마시는 사람의 차이는 알코올 분해 효소, 즉 ADH(알코올 탈수소효소)와 ALDH(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의 생산 능력에 달려 있다. 이 효소들을 생산하는 유전자 변이로 인해 특정 개인은 알코올을 더 빠르게 분해하고 배출할 수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인에게는 유전적 요인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 결핍증이 30~40%에서 나타난다. 이 경우 ALDH2(알데히드 탈수소효소 2형)가 부족해진 결과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지 못해 얼굴이 붉어지고 숙취를 유발한다. 술이 세다고 안심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코올 분해는 못하는 데, 숙취만 없는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ADH는 부족하고 ALDH는 정상적인 경우 아세트알데히드는 잘 분해돼 배출하는데 알코올은 잘 분해되지 않아 몸속에 그대로 돌아다니는, 실제로는 심하게 취해있으나 드러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다.

금주 노력, 일상에서 진행해보자

술을 끊으면 이런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술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과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술 끊기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사실도 모두가 알고 있다. 퇴근 후 집에서 치킨에 맥주 한잔이 주는 상쾌함, 친구들과 노포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받는 위로감을 빼앗긴다면 슬픈 일일 것이다. 사회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술자리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술을 끊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만약 음주가 일상생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 술을 줄여보려는 욕구만으론 음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다만 정상적인 활동은 가능하지만 술을 줄이길 원한다면 차선책을 고민해볼 수도 있다.

필자는 금주일지를 작성해보길 권유해본다. 요일별로 ⓐ금주에 성공했는지 ⓑ금주에 실패했다면 누구와 어디서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작성할 수 있다. ⓒ칭찬할 거리가 있다면 적어두는 것이 좋다. “술 생각났으나 간신히 참음”과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술만큼 강렬하진 않을지언정, 칭찬을 스스로 적으면서 소소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A씨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금주일기를 쓰면서 알코올 중독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습관을 들이는 일은 어렵다. A씨도 금주일기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라면 금주일기 습관은 쉬운 편에 속할 수 있다. 습관을 들이는 일이 어려울 수는 있지만, 최소한 술을 끊는 일보다는 쉬울 것이다. 가장 손쉽게 술과의 거리를 벌릴 수 있는, 나만의 노력을 지금이라도 시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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