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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양자·자동차…미국의 ‘중국 견제’와 세계의 ‘줄타기·줄서기’ [한세희 테크&라이프]

美 백악관, 중국 커넥티드 차량 기술 규제안 발표…첨단 기술 전방위 제재
우방국에 ‘중국 견제’ 동참 요구하는 美…“韓 정부, 지혜로운 판단 필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이제 군사력 못지않게 과학기술이 세계 패권의 열쇠가 되는 시대다. 인공지능(AI)·에너지·반도체·양자 등 첨단 미래 기술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의 중국 견제가 한층 격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양자 컴퓨터나 AI 첨단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기술 및 장비를 수출 통제 대상에 올렸다. 여기에 더해 중국산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가 쓰인 커넥티드 차량의 미국 수출을 금지한다는 조치도 발표했다. 

“커넥티드 차량에 공격 위협 있어”

커넥티드 차량은 통신망에 연결돼 운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주고받는 자동차다. 최근 자동차는 전자 부품 비중이 높아졌고, 테슬라 차량에서 대표적으로 보듯 통신망에 접속해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며 성능을 높이고 주행 정보를 받아 안전 운전을 돕는다. 자율주행이 확산하면 자동차는 완전히 통신망에 의존해 움직이는 기기가 된다. 데이터를 담은 패킷이 인터넷망을 오가듯, 데이터를 담은 자동차가 교통인프라 위를 움직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편리한 점도 많지만, 자동차도 해킹 공격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다. 자동차를 해킹해 사고를 일으키거나 도시 교통망을 일시에 마비시키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백악관은 이런 보안 위험을 직접 거론하며 중국 커넥티드 차량 기술 규제안을 발표했다. 차량 연결과 관련된 중국산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가 설치된 자동차의 미국 수입을 금지하기로 하고, 이해 당사자 의견을 듣는 기간을 가진다. 중국산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차량은 2027년식 제품부터, 하드웨어가 설치된 차량은 2028년식 제품부터 미국 판매를 할 수 없다.

미국은 지난 5월엔 중국 전기차 관세를 25%에서 100%로 4배 올리기로 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 관세는 25%로, 반도체와 태양전지 관세는 50%로 올렸다. 100% 관세도 중국산 전기차를 막는 진입 장벽이 되겠지만, 커넥티드 차량 관련 기술과 부품 규제는 중국 전기차에 대한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현재 미국 시장에 중국 자동차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

다만 중국은 자동차 수출을 크게 늘리며 유럽과 아시아 등 해외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중국 자동차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9% 늘었다. 저가의 중국 자동차가 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유럽 등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중국 전기차의 상륙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5월 중국 견제를 통상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규정하고 올해 안에 대중 투자 규제 규정을 완성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중국 견제하고 미래 기술 초격차 유지하겠다”

물론 미국이 시장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안보 문제이다. 커넥티트 차량 규제는 교통 네트워크에 중국 등 경쟁국의 영향력이 침투할 가능성을 우려함을 보여준다. 

안보 우려는 전기차나 배터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한 여론 조작이나 자국민 데이터 노출 등을 우려해 영상 플랫폼 틱톡을 중국 본사에서 분리하라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나아가 미국은 양자·AI·첨단 반도체·우주 등 미래 국가 역량을 좌우할 핵심 기술의 확보와 초격차 유지를 원한다. 9월 초 미국이 양자 컴퓨터와 AI 반도체 제조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 정책을 편 이유다.

양자 분야에선 양자 컴퓨터 및 관련 장비는 물론 부품소재·소프트웨어 기술 등이 통제 대상이 된다. 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와 게이트올어라운드(GAA) 반도체 기술, 3D 프린터 관련 장비와 소프트웨어도 수출 통제 목록에 올랐다. 중국과 러시아 등을 겨냥했다. 

양자 컴퓨터는 현행 인터넷 정보보호 체계를 무력하게 할 잠재력이 있다. 기존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성능으로 제약·화학·금융·과학 연구 등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AI의 중요성 역시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화웨이 등 중국산 통신 장비 사용을 규제하고 최신 반도체 기술의 중국 이전을 막는 등 중국 기술 발전을 견제하고 미국 인프라 침투 위험을 낮추는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바이든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이 추세는 변하지 않아 이제 그 대상은 배터리·에너지·AI·양자·우주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음 대선에 누가 당선돼도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이 편을 갈라 싸우는 가운데, 미국은 우방국들에 전선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양자 컴퓨터와 AI 반도체 등에 대한 수출 통제 정책을 시행하면서 비슷한 수출 통제 정책이 있는 나라엔 허가 절차를 면제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우방국들과 협력을 통해 중국이나 러시아가 이들 첨단 기술로 군사력을 키우고 민주주의 진영을 위협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다시 갈라지는 세계…줄타기와 줄서기

양자 기술의 경우 미국이 가장 앞서 있긴 하지만 아직 기술이 확립되지 않은 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는 상황이라 국제 협력이 절실하다. 고성능 AI 반도체는 대만이나 한국의 제조 시설이 없다면 생산될 수 없다. 미국은 이른바 ‘유사입장’(like-minded) 국가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는 중국의 ‘세계의 공장’ 역할이 끝나고, 여기서 큰 이득을 보던 기업이 시장을 잃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네덜란드의 ASML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네덜란드에 ASML의 첨단 극자외선(EUV) 공정 장비 외에 이전 세대 심자외선(DUV) 장비의 중국 수출까지 막으라고 요구한다. 

네덜란드가 미국에 보조를 맞추는 쪽으로 방향을 굳히는 가운데, 호주나 영국 등은 양자 컴퓨터 개발을 위해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일본에선 자체 기술 개발로 발언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이어가면서도 큰 틀의 협력은 강화되는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도 이런 국제적 흐름에 편승하는 정책인 셈이다. 다만, 중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우리로선 이런 흐름 속에서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움직일지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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