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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스페셜리스트 뷰]

포도 생산 후 선택지 따라 달라지는 와인 비즈니스
협동조합이 만들어 낸 규모의 경제

농가에서 포도를 수확 중인 모습.[사진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 제공]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 와인 애호가들은 자신만의 와인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꿈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그 꿈을 실현한 인물들이 많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회장의 나파밸리 '이모스 와이너리',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쉐이퍼 빈야드', 그리고 이희상 동아원 전 회장의 '다나 에스테이트'가 대표적이다.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거나 자신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와인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매력을 지닌다. 이런 이유에서 최근 와인 애호가들을 겨냥한 와이너리(와인 양조장) 지분 투자 역시 새로운 투자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한국과 같은 와인 소비국에서는 와이너리 소유를 꿈꾼다. 반면 실제 와인 생산국에서 포도밭을 소유하고 경작하는 이들이 포도 수확 후 와인과 관련해 어떤 경제적 선택을 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포도밭을 보유한 농부들은 수확 후 다양한 선택지를 마주한다. 와이너리를 직접 소유해 와인 생산까지 이루는 경우도 있지만, 포도밭만을 소유한 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시는 와인은 어떤 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것일까. 포도 재배자들이 진행하는 경제적 선택과 와인 생산 비즈니스 생태계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와이너리 소유가 가진 수익 잠재력

직접 재배한 포도로 자가 와이너리에서 직접 양조, 병입해 판매하는 것은 ▲와인에 대한 구상 ▲방향성 제시부터 ▲포도재배와 ▲와인제조 단계를 모두 소화하는 '가치사슬통합형' 모델이다. 이것이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전통적인 와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모델을 분석해 보면 와이너리 소유는 단순히 포도밭을 구입하는 것 이상의 복합적인 투자다. 우리는 흔히 요트를 소유한 사람들을 부호라고 칭하는데, 이는 요트의 본래 가격뿐 아니라 정박료, 보험료, 유지 관리비, 선장과 승무원 등의 인건비, 항구 이용료 등 다양한 부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위치한 지안프란코 피노 와이너리 내부에 있는 와인 저장소.[사진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 제공]

이탈리아에 위치한 지안프란코 피노 와이너리 내부에 자리한 와인 발효 탱크.[사진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 제공]
마찬가지로 와이너리를 소유한다는 것은 와이너리 구입 비용 외에도 지속적인 유지비용을 동반한다. 포도를 발효시키고 와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탱크, 오크통, 압착기 및 병입시설 등이 필요하며 전문 양조가(프랑스어로 Oenologue, 주로 와인메이커라고 불린다)를 고용하는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마케팅과 영업 측면에서도 전세계에 수출을 담당할 수출 매니저 등의 인력비용과 와인 판매를 촉진할 브랜딩 및 광고 비용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속적인 유지비용이 필요한 업인 셈이다. 

자가 와이너리 소유의 가장 큰 장점은 직접 경작한 포도로 본인이 원하는 와인 스타일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는 점과, 이에 따른 수익 잠재력에 있다. 

특히 본인의 와인이 로버트 파커 주니어, 젠시스 로빈슨, 제임스 서클링 같은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거나, ▲디캔터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 ▲IWSC ▲문두스비니 등의 주요 와인 대회에서 메달이라도 획득한 경우라면 와인의 가치가 크게 상승해 프리미엄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와이너리 소유자가 장기적으로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수익 창출 모델로 작용한다

또한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는 농작인은 추수한 포도를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샴페인(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만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처럼 특별한 지리적 표시를 지닌 와인 산지의 경우, 농부들은 시장가를 반영한 포도 가격을 받아 추수한 포도를 곧바로 현금화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유명 대기업들은 판매량이 많은 와인을 생산한다. 하지만 자사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만으로 수요를 충족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들은 인근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를 구매해 와인을 생산하는데, 이러한 방식을 '네고시앙 마니뿔랑'(Négociant Manipulant, NM)이라고 부른다. 

지리적 표시나 특별한 브랜드 가치가 부여되지 않은 포도밭에서 생산된 포도의 가격은 주로 포도의 품질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결정된다. '샴페인'이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 같은 명성 있는 지리적 표시를 갖지 않는 경우, 해당 지역의 브랜드 가치보다는 포도 자체의 품질이 가격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은 흔히 와이너리라 하면 자가 포도밭을 소유하고 그곳에서 와인을 직접 생산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유통되는 상당수의 저가 와인은 포도밭을 소유하지 않은 기업들이 포도를 매입해 와인 양조 시설에서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포르투갈 프리미엄 와인 퀸타 도 파랄(Quinta do Paral)를 생산하는 와이너리 내부 모습.[사진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 제공]

이러한 기업들은 포도 재배를 하지 않으면서도 양조, 마케팅, 판매 전 과정을 담당하며,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가치사슬분화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저가 와인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기업들은 시장의 다양한 수요와 소비자의 변화하는 취향에 맞춰 벌크 와인을 블렌딩해 경쟁력 있게 대응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포도 생산자가 와이너리에게 직접 포도를 판매할 경우 추가 비용은 포도밭에서 와이너리까지의 운송비 정도이기 때문에 이는 빠르고 효율적인 현금화 방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협동조합과 '비밀 와인'의 탄생
이탈리아 테라너(Terlaner) 협동조합의 와인 저장소.[사진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 제공]

우리가 흔히 '구세계 와인'이라 부르는 와인은 전통적으로 와인을 생산해 온 유럽과 그 주변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을 의미한다. 주로 프랑스·이탈리아·독일·스페인·포르투갈·헝가리 등이 주요 생산지다. 

이런 구세계 와인의 특징 중 하나는 '와인협동조합'의 존재다. 프랑스 와인 생산량의 약 40%, 이탈리아의 와인 생산량 중 약 50%, 스페인 와인 생산량의 60%가 와인협동조합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협동조합은 여러 소규모 포도 재배 농가나 와이너리들이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해 와인 생산, 마케팅, 유통 등의 과정에서 협력하는 형태의 조직이다. 이러한 협동조합은 개별 농가들이 와인을 생산 및 판매하는 데 필요한 시설, 즉 와인 양조시설, 저장고 등과 기술, 그리고 유명 와인메이커나 수출 매니저 등의 인적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생산비용을 절감하며, 더 나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특징이다. 

많은 포도밭 오너들은 협동조합에 가입해 매년 수확한 포도를 공급하는 독점 계약을 체결하고 추수한 포도를 납품한다. 각 협동조합의 지불 조건은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포도의 일부 금액은 납품 시점에 지급되고 나머지 금액은 와인 판매 후에 최종 정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협동조합의 독점 계약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지난 2005년 이탈리아 트렌티노 지방의 포도밭에서 일어난 이 이야기는, 유명 양조가 로베르토 치프레소의 제자 중 한 명과 관련돼 있다. 

이 제자는 자신의 농가에서 재배된 포도로 자신 만의 와인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제자의 가족은 협동조합 소속이었다. 협동조합 규정상 재배한 모든 포도를 납품해야 했기 때문에 이 제자는 자기 농가에서 수확된 포도로 자신 만의 와인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로베르토는 실의에 빠진 제자를 보면서도 도와줄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결국 이 제자는 모두가 잠든 새벽, 자신의 포도밭 농가에서 아버지 허락 없이 몰래 포도를 가져오기로 결심했다. 이 포도를 가지고 로베르토에게 자신의 와인을 만드는데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후 그들은 그 포도로 수백 병의 와인을 만들어 냈다.

이 제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포도를 빼돌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모른 체했고 경찰에 포도를 도둑맞았다고 신고했다. 스스로 아들에게 포도를 내어줬다면 협동조합 규정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2005년도에 만들어진 이 와인은 오직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맛볼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비밀 와인'으로 남아있다.

국내에서는 와인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협동조합이 저가 와인을 생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러 유명 와인들도 사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 예로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지방의 '프로두토리 델 바르바레스코'(PRODUTTORI DEL BARBARESCO)같이 잘 알려진 협동조합의 경우 50개의 회원사로 총 100헥타르(ha)에서 나오는 포도를 가지고 와인을 양조한다.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니콜라 푸이야트'(NICOLAS FEUILLATE)도 5000개 농가에서 포도를 받아 샴페인을 만드는 형식의 유명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이 발달된 이탈리아의 예를 들면 '깐띠나 디 소아베'(Cantina di Soave), '켈레레이 테를란'(Kellerei Terlan), '깐띠나 발폴리첼라 네그라'(Cantina Valpolicella Negrar), '산 미켈레 아피아노'(San Michele Appiano)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명품 와이너리들이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좋은 예로 손꼽힐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협동조합이 단순 중저가 와인을 생산하는 구조가 아니라, 고품질 와인과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포도 재배자들은 시장의 상황, 자원의 가용성, 그리고 자신의 사업 목표에 따라 위의 세 가지 옵션 중에서 경제적 선택을 한다. 물론 각 선택지는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다. 와인을 마실 때 향과 맛, 품질을 즐기면서도 이 와인을 빚는 데 사용된 포도가 어떤 선택의 결과였는지, 그렇게 이 와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아보며 마시는 것도 와인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일 것 같다.

홍미연 이코엘앤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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