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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과 문화 브랜딩[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K컬쳐, 수평적 확산에 수직적 깊이 더해져
한국 브랜드, 세계와 차별화 할 문화적 브랜딩 기회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허태윤 칼럼니스트]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한 문학적 성취를 넘어선다. 그것은 한국문화가 세계와 만나는 새로운 문(門)이 됐다. 가을을 수놓는 은행나무 잎처럼, 이 수상은 세계 문화의 풍경 위에 선명한 한국의 색채를 덧입히고 있다.

日 노벨문학상 수상, 많은 것을 바꾸다

지난 1994년,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일본은 이미 경제대국이었다. 그러나 문화적 정체성은 여전히 모호했다. 오에의 수상은 일본 문학 세계화의 전환점이 됐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세계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는 데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 일본 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로 대표되는 현대 일본문학의 세계화를 가속화했다. 1994년 이후 일본 문학 번역 출간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했으며,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누적 판매량 1억부를 넘어섰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당시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의 성장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 산업은 급성장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는 이 시기에 '원령공주'(1997)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을 연이어 발표하며 세계적 성공을 거뒀다. 이는 오에의 수상이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간접적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오에의 문학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사회적 메시지와 인식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이 일본 문화의 수용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방한했던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서울의 한 카페에서 열린 소설 '익사' 출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이러한 일본의 경험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렇다면 한국도 ‘한강효과’를 볼 수 있을까. 이런 조짐은 얼마 전 열린 세계 최대 도서 출판 전시회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비롯 많은 곳에서 나타났다. 한강 이외의 한국 작가들에 대한 판권문의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다만 한국작가들의 문학적 성취가 곧바로 산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높이고, 문화적 위상을 격상시키는 촉매제 역할은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이미 K-팝(K-pop), K-드라마(K-drama) 등 대중문화 분야에서 강력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벨문학상의 파급효과는 일본의 경우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이미 방탄소년단(BTS)과 '기생충'으로 대중문화의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표층적인 성공이었다. 이제 한강의 문학은 한국문화의 심층, 그 정신적 깊이를 세계에 보여줄 것이다.

韓에 찾아온 기회...'문화 가치 전파'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한국인의 내면을 해부하는 예리한 메스다. 폭력과 광기,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성에 대한 탐구는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는 지금까지의 한류가 이루지 못한 문화적 깊이를 제공한다.

미국이 구축한 문화 확산 모델은 단순했다. 할리우드의 영화가 먼저 진출해 문화적 교두보를 확보하고,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미국적 라이프스타일이 그 뒤를 따랐다. 디지털기술이 도입되자 구글, 메타와 같은 기술 기업들은 기능적 편익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했다. 애플의 경우는 좀 다른 양상을 보였지만, 이 역시도 일방향적이고 수직적인 문화 확산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 모델은 다르다. K-팝이라는 대중문화를 시작으로, K-드라마, K-뷰티, K-푸드로 이어지는 수평적 확산이 이뤄졌다. 이는 쌍방향적이고 참여적인 특성을 지닌다. 팬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문화의 공동 생산자가 된다. 이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 수평적 확산에 수직적 깊이를 더할 것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시민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작품들을 고르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한국의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은 확실히 정체 상태에 있다. 기업들은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선두를 빠르게 뒤따라 가는 전략 또는 기업) 문화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등떠밀려 세계 1위에 올라선 몇몇 산업들은 퍼스트무버(first mover:산업의 변화를 주도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창의적 선도자)로서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미국, 중국, 일본의 도전에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반면, 한국의 문화 경쟁력은 다양한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한국 문화의 글로벌 수용성이 어떤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이념적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혁신적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한 산업 전반에 영감을 주고 있다. 

더글라스 홀트(Douglas Holt) 옥스포드대 마케팅 석좌교수는 브랜드가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에게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연결을 통해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한국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순한 물질적 가치가 아닌,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자동차는 더 이상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한국적 모빌리티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단순한 스마트폰을 넘어, 문화를 담아내는 플랫폼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LG전자의 가전제품들은 더 이상 차별화가 어려운, 단순한 기능적 우위를 뛰어넘어 한국적 미학과 생활양식을 세계에 전파하는 매개가 될 필요가 있다. 또 K-뷰티는 한국의 전통 미학을 스토리로 입히고 깊은 문화적 가치를 제안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브랜드가 세계와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른바 문화 브랜딩의 기회인 것이다.

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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