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벤트 시장 최악의 변수로 떠오른 ‘기후변화’ [E-마이스]
“70~80년 후 동계올림픽 개최 가능한 곳 일본 삿포로 뿐”
에너지 소비 많은 포상관광·기어행사 대체하는 글로벌 기업 늘어나
[이데일리 이선우 관광·MICE 전문기자] “70~80년 후 동계올림픽 개최가 가능한 곳은 전 세계에서 단 1곳만 남게 될 것이다.”
최근 캐나다 워털루대 연구진이 내놓은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경고한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동계올림픽이 열린 21개 도시 중 2100년에도 대회 개최가 가능한 기후환경을 갖춘 곳은 ‘일본 삿포로’ 단 한 곳”이라고 예상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마이스(MICE)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폭염과 폭우, 폭설, 혹한 등 기상이변으로 연기 또는 취소되는 행사들이 곳곳에서 속출하면서다. 기후변화 위기가 때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현실로 닥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컨벤션경영자협회(PCMA)가 발간하는 컨벤션 전문매체 컨빈(Convene)의 바바라 팔머 부편집장은 “기후변화는 이벤트 현장과 업계가 만난 역대 최악의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계·동계 올림픽 존폐 위기에 내몰려
예측 불가능한 기상이변으로 인한 행사 연기·취소 사태는 갈수록 그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지난 4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 마이스 행사 ‘블록체인 라이프’는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파행을 겪었다. 행사 이틀째인 16일 두바이엔 하루 만에 160㎜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연평균 강수량 90㎜의 2배에 가까운 양이다.
행사장인 ‘페스티벌 아레나’는 물에 잠겼고 도로와 공항, 기차역 등이 임시 폐쇄되면서 도시 기능이 완전 마비됐다. 120개국 1만여 명이 참여한 행사는 우여곡절 끝에 하루 뒤 재개됐지만, 주최사(제트 캐피탈 이벤트)는 하루 새 1억 원이 넘는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지난해 8월 미국 플로리다주는 시속 200㎞가 넘는 강풍을 동반한 대형 허리케인 ‘이달리아’가 해변 호텔·리조트 단지를 강타하면서 예정됐던 약 50건의 국제회의, 기업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됐다. 업계 추산 피해 규모만 450만달러(약 60억원)에 달한다.
같은 시기 하와이도 마우이섬에선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발생하면서 기업행사, 포상관광단 방문이 깡그리 취소됐다. 캐나다도 그해 봄부터 서부에서 시작된 산불이 가을까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크고 작은 기업 이벤트가 취소, 연기됐다. 이벤트 컨설팅회사 클리어 커렌트 컨설팅의 집계에 따르면 캐나다에선 200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취소된 대형 비즈니스 이벤트 67건 가운데 폭우, 태풍 등으로 인한 취소가 64건(9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외에서 치르는 스포츠 대회는 기후변화가 더욱더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매년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세계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 ‘호주 오픈’은 기후변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회가 처음 시작된 1910년보다 평균 기온이 1.5℃ 상승하면서 해마다 폭염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2022년엔 대회기간 한낮 최고 기온이 50.7℃까지 치솟았다. 급기야 주최 측은 선수 보호를 위해 ‘폭염 시 특별 규정’(Extreme Heat Policy)까지 신설했다.
로드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도 폭염으로 아스팔트 온도가 140℃까지 치솟으면서 120년 만에 대회 시기와 코스 변경을 검토 중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60~70년 안에 마라톤 대회를 열 수 있는 도시가 최대 27%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후변화 영향이 더 큰 종목은 동계 스포츠다. 국제스키연맹(FIS) 주관의 스키·스노보드 월드컵은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쇤덴부터 11월 스위스 체르마트와 이탈리아 체르비니아(강풍), 12월 프랑스 생모리츠와 발 디제르(폭설), 올 1월 프랑스 샤모니와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고온), 3월 슬로베니아 그란스카고라(폭우), 독일 베르히테스가덴(고온)에서 열리려던 경기가 줄줄이 취소됐다.
대표적인 메가 스포츠 이벤트인 올림픽은 기후변화로 인해 ‘존폐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7월과 8월 한여름에 열리는 하계올림픽은 갈수록 폭염의 정도가 강해지면서 시기를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간은 연중, 지역은 분산하는 방식으로 전체 대회 운영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계올림픽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강설량이 줄면서 대회를 열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갖춘 도시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평창과 소치, 베이징이 대회 개최를 위해 80~100% 달하는 인공눈을 사용하면서 ‘비환경적 대회’로 전락했다는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다양한 케이스 반영한 실효성 있는 대응 매뉴얼 필요“
급기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동계올림픽을 열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몇몇 도시를 정해 순회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영국 더 타임스,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가 올림픽 개최 시기와 방식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며 “특히 동계 대회는 하루라도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할 시급한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에너지 소비, 탄소와 폐기물 배출이 많은 포상관광, 기업행사를 축소하거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다국적 글로벌 기업도 늘고 있다. 세계 5위 석유회사 셰브런을 비롯해 유니레버, 마힌드라 그룹, BNP파리바, 슈나이더 일렉트릭, 이케아 등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이유로 기업행사, 장거리 출장과 단체여행 축소를 공식화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축소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수요 감소로 인한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유엔 산하 국제지속가능관광위원회(GSTC) 이사로 활동 중인 김현 충북문화재단 본부장은 “이산화탄소와 폐기물 배출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행사 기법을 고도화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을 높이는 기부 프로그램을 포상관광과 기업회의 상쇄(Offset) 프로그램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기상이변 변수에 대비하기 위한 추가 장비와 설비, 프로그램 도입, 보험 가입 등으로 비용 부담도 늘고 있다. 최근 기상이변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 캐나다 등에선 잦은 행사 연기·취소로 최근 1~2년 새 이벤트 보험료가 3배 넘게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바이 블록체인 라이프처럼 행사 일정 변경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주최·운영사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상열 고양컨벤션뷰로 사무국장은 “갑작스러운 행사 취소·연기에 따른 비용을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업계가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행사 성격과 유형, 시기와 규모 등 다양한 케이스를 세밀하게 반영한 실효성 있는 대응 메뉴얼과 관광진흥기금 등을 활용한 자금지원 등 리스크 관리와 피해 최소화를 위한 제도와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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