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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숙적, 층간소음엔…‘고통 줄이기’ 노력해야 [이코노 헬스]

‘칵테일 파티 효과’ 탓 거슬리는 소리도 집중
심리적·신체적 문제, 전문의와 함께 줄여야

바닥충격음 성능을 검사하는 사람들 [사진 국토안전관리원]
[김상욱 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연말은 연말이다. 공중파 케이블 방송에서 대중음악 시상식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니 올해가 끝나간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올해와 예년의 다른 점이라면 국내 시상식에서 팝 스타 브루노 마스를 볼 수 있었다는 점. 방송에 나온 그를 보면서 그와 로제가 발매한 ‘아파트’(APT.)의 선풍적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흥겹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 덕에 노래의 영어 가사 부분을 곱씹어 들어볼 수 있었다. 가사를 보고 나니 같은 아파트 공간이더라도 문화에서 한국과 외국의 차이가 있겠다는 인상이 들었다. 아파트를 클럽으로 만들어버린다거나(Turn this 아파트 into a club), 아파트에서 밤새 파티를 벌이면서 춤을 춘다고 한다거나(I’m talking drink, dance, smoke, freak, party all night), 한국의 아파트 환경에서는 시도해보기 어려운 내용들이 가사에 담겨있었다.

노래를 들으며 층간소음으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한국에서 아닌 밤에 홍두깨 얻어맞듯 파티 소음이 들렸을 때, 아파트 주민들이 어떻게들 반응할지 떠올려봤다. 괜스레 지난날 층간소음으로 병원을 찾았던 내담자들이 머릿속에 스치는 듯했다.

층간소음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개원한 이래로 매년 빼놓지 않고 봐 왔던 듯하다. 무엇보다 소음으로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거나 불안감을 느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쿵쿵대는 소리, 물 내려가는 소리 등 이웃에게서 나오는 소음 탓에 ‘미칠 것 같다’는 호소였다. 실내 생활 시간이 늘어났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가장 많았다.

하지만 팬데믹 지나간 지금이라고 한국인들이 층간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건 아닌 듯하다. 올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내담한 A씨 덕에 알게 된 사실이다. A씨가 상담 중 공유한 기사엔 아파트 현관에 소주병을 던지고 문을 발로 차는 사람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층간소음 피해를 주장하던 이웃 주민의 보복’이었다. 지난 6월 50대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을 포함해, 지난 10년 22건의 살인사건이 층간소음 탓에 벌어졌다는 게 기사 내용이었다.

기사를 공유한 A씨는 “윗집 아이들이 쿵쾅쿵쾅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 또한 살의가 치밀어오른다”며 “윗집에 되갚아줄 수단을 찾아보다가도 ‘애들한테 이게 맞나’ 싶어 구매를 취소하고, 윗집에서 쿵쿵거리면 다시 네이버 쇼핑이나 쿠팡을 뒤적거리는 반복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편안하려고 장만한 내집인데, 이게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누가 피해자인지를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도 층간소음 문제를 한층 어렵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일반적이라면 층간소음을 발생시키는 입장이었어야 할 윗집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B씨의 경우가 그랬다. 아랫집이 층간소음 신고를 넣는 탓에 집에서 편히 쉴 수 없다고 했다. B씨는 처음 신고가 들어갔을 땐 자신들이 잘못한 것 같아 조심했다고 이야기했다. 집안에 모임 등 행사가 있을 땐 아랫집에 양해를 구했고, 청소기와 세탁기는 되도록 주말 낮 시간에 돌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랫집의 불평불만은 끊이지 않았다고 B씨는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모두가 바깥 일정이 있어 집안에 아무도 없는 날에도 아랫집은 우리 집에서 소음이 난다며 경비실에 전화를 걸어댔다”며 “지금까지 층간소음이라며 우릴 괴롭힌 게 오해이고 환청일 수 있었다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고 했다. 이어 “전세금이 아직 묶여있는데, 남은 기간 틈만 나면 민원을 넣는 이웃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마음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옛말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했는데, 어느샌가 ‘이웃 간의 정’이라 할 수 있는 건 소음공해로 인한 앙금뿐인가 싶어 마음이 아팠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층간소음 문제는 발본색원(拔本塞源)이 어렵다는 데 있다. 최소한 의사 입장에선 그렇다. 소리를 막아내질 못하는 바닥재를 지적하는 일, ‘아파트’ 노래마냥 밤늦게 파티를 벌이는 이웃에게 경고하는 일을 내가 한다면 오지랖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층간소음을 “신경쓰지 말라”고 조언하는 일도 비슷한 맥락에 있을 것이다. 이른바 칵테일 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 탓이겠다. 인간은 주변 소음이 시끄럽더라도 듣고자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치 시끄러운 칵테일 파티에서 관심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취사선택해 들을 수 있는 상황과 같다.

인간의 진화, 듣기 싫은 소리에도 집중 

문제라면 인간 의식이 진화를 거치면서 좋은 소리뿐 아니라 나쁜 소리에도 집중한다는 점이다. 모기 소리는 백색 소음과 달리 귀에 거슬리기 마련이다. 문제는 모기는 한 번 잡으면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지만, 이웃 문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층간소음 문제는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연 단위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인간 의식은 문제의 근원을 없애라고 소리에 계속 집중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모두를 답답하게 만드는 셈이다.

의사로서는 대증요법을 차선책으로 선택하게 된다. 각자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문제의 근본에 대응하는 동안, 문제 해결 과정 중 발생하는 심리적·신체적 문제를 전문의와 함께 줄여나갈 수 있다. 잠을 자지 못하는 증상이나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하는 증상 등 층간소음으로 인한 고통은 약 처방을 통해 완화할 수 있다. 층간소음 자체를 줄일 수는 없었지만, 층간소음문제로 인한 고통만큼은 A씨도 B씨도 줄일 수 있었다.

B씨가 아랫집의 항의전화에 시도해봤다는 노력도 한 번쯤 주목해 볼 만하다. 첫째, 실내에서 푹신한 실내용 슬리퍼를 가급적 신는다. 쿠션 좋은 슬리퍼는 바닥에 가해지는 충격과 소음을 줄일 수 있다. 둘째, 의자에 소음 방지용 패드를 부착한다. 집안 의자 다리에 부드러운 패드를 씌우거나 부착하면 의자를 끌면서 발생하는 소음을 줄일 수 있다. B씨가 시도한 방식은 아랫집 윗집 모두에게 나쁠 이유가 없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이 든다. 층간소음 문제를 겪는 아랫집에겐 구원과도 같은 조치가 될 수 있다. 윗집은 아랫집의 항의전화를 미연에 방지하는 동시에, 자신의 노력을 모두에게 항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B씨가 그랬듯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만약 모든 노력에도 소음을 버텨내기 버겁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전문의를 찾길 바란다. 소음원을 당장 없앨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소음원을 없애기 전까지 고통을 덜어내고 버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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