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기성복 아닌 맞춤복 잘하는 시스템 만들어야 할 때” [이코노 인터뷰]
[신년 인터뷰: K경제, 위기를 기회로] ①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
파운드리 분사 필요…”다만 자립할 수 있을 때 되어야 분사 가능”
이건희 선대 회장의 ‘마하 경영’ 복원해야…모든 것 바꾸는 혁신 필요
[이코노미스트]가 2025년 새해를 맞아 각 분야의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한국 경제의 나아갈 길을 조망하고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그 첫 번째 인터뷰이인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에게 한국 반도체의 현재와 미래를 들었다. <편집자 주>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한국 경제의 위기는 바로 삼성 반도체의 위기다. 2023년 한국 전체 수출액이 830조원 정도인데, 이중 삼성전자가 약 150조원(약 18%)을 차지했다.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18년 29.11%를 차지했다. 하지만 매년 그 수치는 줄어들고 있다. 2020년 21.65%, 2021년 21.5%를 차지했고 2022년에 18.91%로 20%의 벽도 무너졌다. 2024년 12월 말 예정됐던 삼성전자의 ‘반도체 50주년’ 행사도 백지화됐다.
그만큼 위기감이 삼성전자에 드리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동남아·호주·뉴질랜드에서 구조조정을 한다는 기사가 블룸버그통신을 통해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8만 전자’에서 어느 순간 ‘6만 전자’ ‘5만 전자’로 굳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의 위기는 왜 왔고, 그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31년 동안 삼성전자에서 시스템 반도체 개발 및 갤럭시 제품 개발,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개발 등에 참여해 삼성전자의 전성기를 함께 만들었던 인사로 꼽힌다. 삼성전자 퇴직 후 성균관대를 거쳐 지난해 말 가천대 반도체대학에서 석좌교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갤럭시 시리즈로 삼성전자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삼성전자의 위기라는 말이 나와서 안타깝다”면서 “삼성전자가 다시 저력을 빠르게 회복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HBM 빨리 도전했지만 중간에 포기했던 게 패착
Q 삼성전자의 위기가 곧 한국 경제의 위기라고 말한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왜 왔다고 생각하나.
A 삼성의 위기를 여러모로 분석을 하지만 지엽적인 것을 가지고 판단하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 삼성의 위기는 리더들이 업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왜’라는 질문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항상 업의 본질을 경영자에게 물어봤다. 업이라는 것은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뀐다. 리더들은 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쳐다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현재에 맞는 업이 있고, 5년 후 혹은 10년 후에 맞는 업이 있다. 삼성의 위기는 시대의 상황에 맞는 업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Q 삼성전자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인가.
A 반도체 부문(DS·Device Solution)은 가전·모바일(DX) 부문보다 더 빠르게 선행 개발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앞섰던 이유는 예측할 수 있는 분야에서 가장 빨리 그리고 잘 만들었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을 선점했다. 삼성은 표준화되고 규격이 있는 기성복 제품을 잘 만든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맞춤형 제품을 원하기 시작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 삼성이 빠르게 도전했지만 중간에 포기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2019년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 대규모 투자 결정을 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 영향을 끼친 게 너무 아쉽다. 당시 인공지능(AI) 시대를 예측하지 못하고 HBM 개발을 중단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Q 시스템 반도체가 반도체 시장의 60~70%를 차지한다. 삼성전자가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A 당시 결정은 삼성답지 않았다. 철저하게 분석한 후에 치고 나가는 게 삼성의 문화인데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갑자기 TSMC를 뛰어넘는다고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인력도 부족한 데 갑자기 TSMC를 넘어선다고 하면서 인력 재배치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지켜가면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 도전해야 했는데, 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지키지 못하면서 위기가 커진 것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인텔·마이크론 등을 ‘종합반도체’(IDM) 기업이라고 한다. 칩 설계부터 생산 및 판매 등 모든 분야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에서 설정해 놓은 표준 규격에 따라 설계하고 제작하게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든 제품이 성능에서 큰 차이가 없는 이유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위탁 생산 제조 전문기업(파운드리)과 반도체 설계만 하는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으로는 TSMC와 삼성전자가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다만 점유율은 큰 차이가 있다. 2024년 3분기 기준 TSMC의 점유율은 61%를 차지했지만, 삼성전자는 11%에 불과하다. 2019년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이다.
5년 정도 지난 후 현실은 뼈아프다. TSMC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를 분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교수도 “파운드리 분야를 분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애플이 한때 삼성의 반도체를 사용했지만 계속 사용하지 않는 것은 경쟁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분사 시기에 대해서 “지금은 아니다. 파운드리 분야가 어느 정도 자립하는 시기가 와야 분사가 가능할 것”이라며 “지금 파운드리를 분사하면 굶어 죽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또한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를 함께 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애플이 2007년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삼성 파운드리에 맡기면서 잘 나가던 때였다. 그때가 파운드리를 분사할 수 있는 좋은 시기였는데, 아쉽게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엔지니어 일할 수 있는 조직 문화 필요
Q 리더십의 위기가 삼성전자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A 리더십은 결국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다. 리더는 항상 공부해야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그 부분에 있어서 철저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기업이지만 위기를 맞이하면 리더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 리더는 임직원을 긴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 이는 많은 것을 공부해야만 가능하다. 천재라고 소문났던 임원도 이건희 선대회장과 회의하면 벌벌 떨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그런 면에서 철두철미한 리더였다.
Q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에 대한 비판도 높다. 엔지니어가 아닌 관리자 중심의 조직 문화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A 엔지니어가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능력 있는 후배가 경쟁사에 가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인재 유출을 막으려면 연봉 이사이나 임용 기간 보장 등의 우대가 필요하다. 엔지니어 직군에는 기술 전문가를 임원급으로 대우하는 펠로우(부사장급)·마스터(상무급) 제도가 있는데 이를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엔지니어들이 규제 때문에 일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주 52시간 근무 제도를 반도체 분야에서는 없애는 게 좋을 것 같다. 갤럭시 시리즈로 한때 글로벌 시장을 선점한 적이 있는데, 지금처럼 52시간 근무 제도가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Q 근무 시간을 늘리는 것에 반대 목소리도 많이 들리는데.
A 52시간 근무제도가 삼성전자 위기의 본질은 아니지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반도체를 포함한 R&D 종사자들은 근로 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 52시간 근무제는 주어진 시간을 목표로 일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일을 목표로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갤럭시 시리즈의 성공신화를 경험했는데 만약 그 시기에 52시간 근무제가 있었다면 지금의 삼성 스마트폰은 없었을 것이다. 창의력이라는 것도 긴장감이나 절박감이 있어야 나온다고 생각한다.
Q 김 교수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마하 경영’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선대회장이 마하 경영이라는 것을 주장했던 것인가.
A 맞다. 마하 경영은 2002년 이 선대회장이 ‘제트기가 음속의 2배로 날려면 모든 재질과 소재가 바뀌어야 초음속으로 날 수 있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하 경영은 쉽게 말해 근본부터 모두 바꾸자는 말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처럼 마하 경영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꿔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 후에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려면 기성복 시스템을 맞춤형 시스템으로 탈바꿈했어야 한다. 삼성은 이제 혁신과 변화를 해야만 할 때다. 이 선대회장이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법원, 윤 대통령 측 체포영장 집행 이의신청 기각
2민주 “경호처장 실탄 발포 명령 내려”…경호처 “허위 사실”
3“밸류업 중요성 커지는데”…MBK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언제쯤
4 尹측 "대통령, 적정 기일에 헌재 출석해 의견 밝힐 것"
5"아버지가…" 강하늘 뭐라했길래 오겜2' 베트남서 보이콧?
6 尹측 "공수처장·경찰 등 체포영장 집행 관여 150여명 고발"
7문가비 전연인, 정우성 저격? “난민을 품어” 무슨 뜻?
8가수 소유, 대통령 이웃사촌?...한남동 자택 재조명
9유연석♥채수빈, 같은 이불서 하룻밤...개명까지 한 사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