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에는 '사회 변화' 적극 반영…“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심교언 국토연구원장 인터뷰]
올해 5차 국토종합계획 개정 작업 시급
초고령사회 진입·저출생 문제·디지털 전환 등 변화 반영
[이코노미스트]가 2025년 새해를 맞아 각 분야의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한국 경제의 나아갈 길을 조망하고 인사이트를 제공한다.<편집자 주>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변화는 혼란을 부른다. 가만히 놓인 것을 뒤섞고 흔들면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혼란에서 성장의 가능성이 싹튼다. 신기술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새로운 산업이 등장한다. 기존의 기술과 산업이 신기술과 융합해 확장하거나 쇠퇴하기도 한다.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에 우리나라가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은 경제‧사회‧교육‧문화 등 경계를 가리지 않고 인간의 생활을 파고들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도 시험하지 못했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개통은 서울과 수도권을 30분대로 잇는 교통 혁신이다. 서울 주변 도시의 균형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지, ‘빨대 효과’로 인해 서울만 더 비대해지는 부정적인 효과가 생길지는 알 수 없다.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0.74명, 2025년 합계 출생률 전망치) 등 우리나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이슈를 한꺼번에 마주하고 있다. 여기에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의 장기화는 변화라는 바람의 세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이럴 때 더 바빠지는 곳이 있다. 국토연구원이다. 국토 발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연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곳이다.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기존의 계획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국토연구원은 ▲국토종합계획의 수립 ▲국가균형발전 ▲지역 및 도시계획 ▲주택 및 토지정책 ▲교통 ▲환경 등 국토 전반에 걸친 폭넓은 분야를 연구한다. 변혁의 시대, 국토연구원은 어떤 것에 주목하고 있을까. 지난 1월 8일 세종특별자치시를 찾아 심교언 국토연구원장을 만났다.
심교언 원장은 국토연구원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시무식 때에도 강조했습니다. (국가적인 큰 사건이 여러 건 일어났어도) 우리는 하던 일을 차질 없이 계속하자고요.” 그는 “(국토연구원이) 단순한 인프라 개발을 넘어 국민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하는 연구를 지향한다”고 했다.
올해 특히 중요한 일로 꼽은 것은 ‘국토종합계획’ 수립이다. 국토종합계획은 국토기본법 제9조(국토종합계획의 수립)에 의거해 국토에 관한 계획 및 정책 수립·시행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를 어떻게 개발하고 발전시킬지 방향을 정한다는 뜻이다. 1972년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나온 이후 2020년 제5차 국토종합계획(2020~2040년), 2021년 제5차 국토종합계획 실천 계획(2021~2025년)이 나온 상태다. 이미 5차 계획이 나왔기 때문에 이번에 국토연구원이 내놓게 될 것은 제5차 ‘수정계획’이 될 전망이다. 4차 계획이 발표된 이후에도 두 번의 ‘수정계획’이 나온 바 있다.
심 원장은 “국토종합계획은 20년 동안 우리 국토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계획”이라며 “5년 주기로 수정하는데 이번에는 ▲초고령사회 진입 ▲저출생 문제 ▲디지털 전환 등 변화된 환경을 반영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 균형발전 위해 저출생·고령화 문제 고민해야
연구의 최종 목표는 지역 균형 발전이다. 그는 “최근 지방 균형 발전과 광역권 계획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우리나라가 단순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이제는 주변 지역까지 거점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경제권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저출생 고령화 문제는 지방 도시의 쇠퇴와 직결될 수 있다. 심 원장은 “인구 감소는 도시와 지역 모두에게 위협이지만, 지역별로 맞춤형 전략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도 했다. 지방이 단순히 수도권의 하위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각 지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경제 거점으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외부에서 공장 하나 들여와 짓는 것으로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해당 지역의 특징이나 장점을 고민하고 확장해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진짜 발전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딸기가 유명한 마을이 있다면 딸기를 이용해 케이크나 음료, 디저트 등 여러 가지를 만들어 판매망도 넓히고 마을로 찾아오는 사람을 늘려야 지속적인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자각하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자가 늘어나는 상황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은 지역 간 인구 불균형을 초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심 원장은 “이런 문제가 경제활동 인구 감소나 지역 간 불균형, 세대 간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청년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일자리‧보육 환경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청년들이 지방에서도 좋은 교육과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받고, 안정적인 정주 환경에서 가족을 꾸릴 수 있는 조건이 마련돼야 지역이 살아난다. 이는 국토 균형 발전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심 원장은 “일본이 이미 초고령 사회를 먼저 겪으며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그 경험을 교훈 삼아 우리에게 맞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노인 주택 단지에 어린이집을 배치해 세대 간 교류를 활성화하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사는 실버주택 단지에 신혼부부가 입주하면 임대료를 절반 수준으로 낮춰주는 제도도 있다. 그는 “우리도 도시와 지역에 세대 간 통합을 고려한 공간 설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 도입한 GTX, 기대 큰만큼 우려도
균형 발전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GTX도 언급했다. GTX는 국토연구원이 연구한 혁신적 프로젝트 중 하나다. 심 원장은 “GTX는 수도권을 초고속으로 연결하는 세계 최초의 광역 교통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탄에서 서울 강남까지 20분 내로 도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수도권 전역의 경제권을 새롭게 재편할 잠재력이 크다”고 했다. 고속으로 장거리를 연결해 수도권을 하나의 거대한 생활권으로 만들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그는 “GTX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수도권 경제 구조 자체를 혁신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며 “송도에서 점심을 먹고 강남에서 저녁을 먹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GTX B와 C 노선도 계획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려도 있다. GTX는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정책이어서 부작용이나 이에 대한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참고할 만한 마땅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심 원장은 “도심 기능이 외곽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며 “주요 환승역에 어떤 기능을 배치할지, 주택과 업무 공간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할지도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1기 신도시 재정비나 철도 지하화 사업과 같은 일도 시급한 정책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런 사업이 늦어지면 많은 사람이 불편을 느낄 수 있다”며 “최대한 빨리 진행하는 게 올해의 목표”라고 말했다. ‘진행’한다는 것은 국토연구원이 해당 사업을 직접 시행한다는 뜻이 아니라, 관련한 연구를 통해 정책을 뒷받침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품격을 높이는 소프트웨어적 접근 필요
앞서 언급한 정책이 국가의 발전을 보여주는 하드웨어적인 요소라면 시민 의식 개선과 같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연구도 중요하다. 이런 연구가 국가의 품격을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심 원장의 설명이다. 국토연구원에서 시민 의식에 관한 부분도 연구하는지 물었더니 “국토연구원의 최종 목적은 국민 삶의 질 향상”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적인 발전)도 같이 따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시민의식과 같은 부분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고도 했다. ▲공공시설 관리 ▲불법 주차 ▲도시 청결도 등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토연구원은 ‘국토 품격 업(up)’ 프로그램을 올해부터 운영한다. 이를 통해 소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들을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민 생활의 작은 불편들을 해소하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 도시와 국토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서울의 한 지하철역 통로에 쓰여있다는 ‘소변 금지’ 푯말을 사례로 언급했다. 심 원장은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달러에 육박하는데, 여기에 맞는 품격을 갖춰야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도 정치인이나 권력자의 뜻에 따라 변경되는 일이 왕왕 생긴다.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 있게 이어져야 하는 정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심 원장은 특정한 정책보다는 함부로 정책을 바꿀 수 없는 근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정책에) 국민이나 시민 대다수가 동의하면 정치인이 바뀐다고 해서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인 가운데 임기 내에 끝을 보려는 사람이 있다”며 “그것도 중요하겠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아 근거를 만들면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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