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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잠식한 숏폼...'엄지손가락'은 바쁘다[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숏폼 콘텐츠 시대 활짝, '콘텐츠 보고 구매까지'
자극적 콘텐츠 양산 부작용도...제작가이드 필요

한 시민이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허태윤 칼럼니스트]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엄지손가락은 바쁘다. 자연스럽게 화면을 위아래로 끊임없이 스크롤한다. 틱톡·유튜브 쇼츠·인스타그램 릴스까지 우리의 일상은 어느새 15초에서 3분 사이의 짧은 영상들로 채워져 있다.

세로영상의 대중화 현상 또한 숏폼이 대세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는 이용자들이 화면을 돌리는 불편함 없이 위아래로 빠르게 피드를 넘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MZ세대가 세로형 광고를 가로형 광고보다 더 흥미롭게 느낀다고(칸타 조사 2023, 응답자 17.4%) 답한 데에는 이런 숏폼 영상을 빠르고 편하게 보고 싶다는 욕구가 숨어 있다.

새로운 ‘소통의 장’이 열리다

IT시장조사기업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400억 달러 규모의 숏폼 시장은 향후 5년간 매년 60%의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숏폼이 MZ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여러 장점들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복잡한 정보를 간단명료하게 전달하는 효율성 ▲누구나 쉽게 제작하고 공유할 수 있는 접근성 ▲시공간의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는 편의성 등이 숏폼의 장점들이다.

딜로이트코리아의 소비자 조사 결과도 숏폼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응답자의 72.5%는 숏폼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했고, 59.8%는 실제 구매로 이어졌다. 이는 숏폼이 단순 즐길거리를 넘어 효과적인 정보 전달과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해외에서는 숏폼 커머스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기업)이 된 기업도 탄생했다. 아마존과 틱톡의 대항마로 꼽히는 ‘플립’(Flip)이 주인공이다. 국내 주요 플랫폼들도 숏폼 시장 선점을 위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2023년 8월 숏폼 서비스 ‘클립’을 출시해 메인 홈피드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창작자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콘텐츠 생태계 확장에 나서고 있다.

미디어업계도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티빙과 왓챠 같은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은 10분 이내의 숏폼 시리즈를 제작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적인 미디어들도 이런 시류에 탑승해 관련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MBC의 ‘오분순삭’, SBS의 ‘애니멀봐’, TVN의 ‘금금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나영석PD가 만든 ‘아이슬란드에 간 세끼’나 ‘라끼남’등은 정규 편성 프로 뒤에 5분간 방영 후 유튜브 채널인 ‘십오야’에 풀버전을 공개하는 식으로 재미를 봤다.

게임업계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게임 기업의 숏폼 드라마 플랫폼 투자도 큰 뉴스가 된 바 있다. 게임 메이저 기업 크래프톤이 스푼랩스의 숏폼 드라마 플랫폼 ‘비글루’에 무려 1200억원을 투자한 것은 이 기업이 향후 콘텐츠산업에서 숏폼의 중요성을 파악한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지난해 7월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4 서울진로직업박람회에서 어린이들이 숏폼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숏폼 콘텐츠 소비의 그늘

그러나 숏폼 콘텐츠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워싱턴대의 데이비드 레비 교수가 ‘팝콘 브레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 소비의 문제를 지적한 것은 숏폼 콘텐츠의 과다 소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팝콘 브레인은 마치 팝콘이 튀어 오르듯 자극적인 콘텐츠에만 반응하게 되는 뇌의 상태를 의미한다. 지속적으로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면, 우리의 뇌는 점차 일상적인 활동에서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책 읽기, 깊이 있는 대화, 자연 관찰과 같은 ‘느린’ 활동들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스탠퍼드대학의 연구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10대들의 단일 업무 집중 시간이 평균 19초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줄리 자곤 칼럼니스트도 숏폼 콘텐츠의 과다 소비가 청소년들의 일상적 활동에 대한 흥미를 감소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숏폼이 의미 있는 콘텐츠형식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플랫폼, 제작자, 이용자 모두가 참여하는 생태계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이용자들이 숏폼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강화돼야 하며 플랫폼 차원에서는 알고리즘의 개선이 시급하다. 현재의 추천 시스템은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비슷한 콘텐츠만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보 편식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다양한 관점과 주제의 콘텐츠가 적절히 노출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보완해야 한다.

또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구체적인 제작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3분 이내라는 제한된 시간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숏폼의 특성상, 자극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이 쉽게 등장할 수 있다. 정보의 정확성과 윤리적 기준을 지키면서도 효과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실천적 지침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숏폼의 강점은 분명하다. 복잡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누구나 쉽게 제작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특징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효율성이 과도하게 강조되면 맥락이 사라지고, 쉬운 접근성은 무분별한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시공간 제약의 부재는 과다 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

마치 짧은 시 한 편이 긴 소설 못지않은 감동을 전하듯, 숏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는가다. 짧은 형식의 한계를 인정하되, 그 안에서 최선의 가치를 찾아내는 지혜, 바로 그것이 숏폼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허태윤 칼럼니스트(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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