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價 너무 올랐나”… ‘월세’ 나비효과
[전세의 월세화]①
주택 공급난·아파트 전세 수요↑·전세사기 트라우마 영향
HUG 보증 한도 축소 계획도 전세 부담 증가로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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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국내 부동산 임대 시장에 ‘월세화’ 바람이 일고 있다. 서울 등 주택 공급 가뭄과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 정책, 비아파트 시장에서 논란이 된 전세사기 문제 등으로 전세 수요가 월세로 돌아서는 것으로 해석된다. 2월 10일 부동산R114가 2023~2024년 서울 아파트 전월세 실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분기 전세 비중은 56.0%(3만112건), 월세 비중은 44.0%(2만3657건)을 기록했다. 아직 전세 거래 비중이 절반을 넘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월세 거래가 직전 분기보다 3.3%포인트(p) 증가하는 등 월세 비중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환승지’ 역할을 했다. 전셋집에 살면서 월세로 내는 돈을 아껴 목돈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주택을 사거나 청약을 기다렸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세 선호 현상이 강해지고 전세 보증금이 치솟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많은 세입자가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보증금의 상당수를 마련하는데 금리가 인상되자 이에 따른 부담이 커진 것이다.
서울시 강동구에 사는 30대 회사원 A씨는 “오피스텔 전세를 구하며 은행에서 대출을 알아봤는데 연 이자율이 5% 수준이었다”며 “2억원을 빌리면 연 800만~1000만원까지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고려하면 월세보다 무조건 저렴한 게 아니어서 월세로 갈아타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2023년과 2024년의 국내 5대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 평균 금리는 4.5% 수준이었다. 대출받는 사람의 신용도나 주택 종류에 따라 금리가 변동되기는 하지만. 1억원을 빌리면 연이자로 평균 450만원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아파트 전세를 구하려면 부담은 더 커진다. 지난 2년간 전월세 거래가 가장 많았던 서울시 송파구 아파트 단지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의 경우 2024년 4분기 전세 평균 가격이 10억원을 기록했다. 대출 최대한도인 80%를 은행에서 빌린다고 가정하면 연 3600만원‧월 300만원을 이자로 내야 한다.
전세 보증금이 빠르게 오르는 것도 전세의 장점을 무력화하는 요인 중 하나다.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 전세 보증금은 2년 전인 2023년 1분기 기준 8억1000만원 수준이었다. 불과 2년 만에 23%가량 뛰었다. 만약 세입자가 현금 2억원을 보유해 2023년에 6억1000만원을 대출받았다고 가정하면 같은 금리 수준에서 연이자 2745만원‧월 229만원을 부담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세입자가 같은 집에서 살기 위해서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월 70만원 가량 증가하는 셈이다. 전세 수요 증가→ 보증금 인상→ 대출 이자 부담 증가의 고리가 ‘전세의 월세화’로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빌라 전세 사기 등 비아파트에서 생긴 보증금 사기 사건 등으로 서울 전역에서 아파트에 대한 선호 현상이 더 강해졌다”며 “서울에서 주택 공급이 사실상 막힌 상황에 아파트, 전세로 수요가 몰리며 전셋값이 더 오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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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 대출 한도 축소, 전세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
정부의 대출 규제도 전세 수요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올해 상반기(1∼6월) 중 전세대출 시 필요한 전세대출 보증 한도를 대출금의 100%에서 90%로 낮출 예정이다. 하반기(7∼12월)부터는 세입자의 상환 능력에 따라 보증 한도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전세대출 보증은 세입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대신 상환하는 보증 상품이다. HUG에서 보증 한도를 낮추면 목돈이 부족해 대출을 많이 받아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세입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지금까지는 HUG에서 세입자의 소득이나 기존 대출 여부를 따지지 않고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보증을 해줬다. 그런데 이런 보증 제도가 전세대출을 늘려 전세가‧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가계 부채의 뇌관을 키운다는 지적이 일자 제도를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세입자는 전세 5억원짜리 수도권 아파트를 구하며 전세 금액의 80%인 4억원을 대출받고 HUG로부터 4억원의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증 한도가 대출액의 100%에서 90%로 낮아지면서 HUG 보증을 통한 대출 가능 액수가 3억6000만 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하반기부터 세입자의 소득과 대출 등을 평가해 소득 대비 기존 대출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보증 한도는 더 줄어들 수 있다. 과거 1억원이 있으면 대출을 통해 5억원짜리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5억원짜리 집을 구하기 위해 최소 1억4000만원 이상이 필요해진다는 뜻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은행의 대출 심사를 더욱 까다롭게 해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대출을 줄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까지는 월세화 바람이 전세 보증금 규모가 작은 비아파트 시장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보증금이 5억원을 웃도는 아파트 전세 시장에서는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때 세입자가 얻을 수 있는 잇점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목돈을 보유한 사람의 경우 아파트 전세를 선택하면 매달 나가는 월세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전세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빌라나 오피스텔, 원룸처럼 보증금이 1억~2억원 수준인 임대 시장에서는 세입자가 월세를 선택하는 게 부담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고 대출을 받는 번거로움을 덜면서 사기 우려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형주택의 경우 보증금이 적어 월세도 감수할 수요자가 있지만, 아파트처럼 비싸지면 월세도 올라가기 때문에 월세 선호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대출을 받아 전세 계약을 하는 수요자라면 은행에 이자를 내는 것이나 월세를 내는 것이 큰 차이가 없어 월세를 선호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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