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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가격 '1만원 vs 100만원' 뭐가 다르길래[홍미연의 와인 스토리:지(知)]

품질부터 생산방식, 평균 임금까지 영향 미치는 와인 원가
명품처럼 브랜드 희소성과 명성이 가격 결정하기도

이탈리아 친퀘테레(Cinque Terre) 지역에서 한 농부가 직접 포도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cantine litan]

[홍미연 씨엠비 와인앤스피리츠 CTO] 와인 소비자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을 궁금증이 있다. 바로 마트에서 만원 이하로 팔리는 와인과 비싸게는 몇 백만~몇 천만원까지 하는 와인의 원가 차이다. 동일한 포도를 원료로 만든 750 ml 용량의 주류임에도 불구하고 병당 가격이 이렇게 극명한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테루아와 포도밭서 오는 본질적 차이

와인의 본질적인 품질은 테루아(Terroir), 즉 포도가 자라는 환경에서부터 시작된다. 테루아는 단순히 포도밭의 지리적 위치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토양의 구성 ▲기후 ▲해발 고도 ▲경사도 ▲일조량까지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전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땅일수록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한 예로 프랑스 샴페인 지방의 그랑크뤼(Grand Cru)밭 같은 경우 헥터 당 가격이 최소 250만 유로에서 시작해 최대는 가늠짓지 못할 정도다.

이탈리아를 예로 들자면 최근 들어 피에몬테 지방의 최고 명품 와인을 생산하는 바롤로(Barolo), 바르바레스코(Barbaresco)와인의 밭들이 헥타 당 300만유로 이상에 팔린 적이 있다. 평당 150만원에 이르는 수치다. 

땅을 관리하는 농업 전문가, 애그로노미스트(Agronomist)의 존재 여부도 중요하다. 농업전문가는 토양 분석과 맞춤형 재배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때 이런 전문적이고 계획적인 부분은 재배되는 포도의 질을 올리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나 재배원가에 반영되서 가격상승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중소 규모의 와이너리 농가에서는 오너가 직접 밭과 양조관리에 나서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전문가의 손을 빌리고 있다.

수확 방식도 가격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계 수확은 비용적인 면에서 효율적이지만, 품질 관리 측면에서는 손 수확(Hand Harvesting)이 낫다. 손 수확은 숙련된 인력을 필요로 하며, 포도 한 알 한 알을 신중히 선별할 수 있어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과정은 인건비를 증가시키게 된다. 

각 국가별 노동자의 평균 임금도 와인 가격에 반영된다. 스위스처럼 인건비가 인근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훨씬 높은 국가에서는 농업 생산 비용이 와인 가격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기본 와인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다.

마지막으로, 포도밭이 위치한 나라나 지형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포도밭은 주로 구릉에 위치해 있는데 일부 험지 지형의 와인밭들은 산비탈을 깎아 만든 경우가 있어 경작과 수확에 특수 장비들이 요구된다. 경우에 따라 헬리콥터가 동원될 때도 있다.

[사진 cantine litan]
이탈리아 친퀘테레(Cinque Terre) 지역에서 한 농부가 미니 모노레일로 수확한 포도박스를 이동시키고 있다. [사진 cantine litan]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발텔리나(VALTELLINA)의 유수 와이너리 아프페페AR.PE.PE에서는 가파른 지형 때문에 수확한 포도가 자체 미니 모노레일로 이동한다. 이때 수확한 포도가 이동하는 시간이 대폭 단축되면서, 산화 가능성을 줄여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친퀘테레(Cinque Terre)의 특수지형에서도 같은 방법을 쓴다.

정리하면 와인의 원가는 본질적으로 포도가 자라나는 환경이 우수할수록, 재배자가 전문가일수록, 해당 국가의 평균 임금이 높을수록 비싸진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포도밭이 위치한 지형도에 따라 재배방식이 달라지는데 이런 부분도 와인 원가에 포함된다. 

와인 품질과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와인의 품질과 가격은 사용된 포도의 특성과 재배 과정에서 비롯된다. 포도 품종마다 요구되는 관리 수준이 다르며, 손이 많이 가는 품종일수록 생산 비용이 증가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의 네비올로(Nebbiolo)는 가장 먼저 싹이 트고 가장 늦게 수확하는 특성을 가진다. 이로 인해 병충해와 기후 변화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어져 관리와 보호에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이처럼 까다로운 특성을 가진 품종은 불가피하게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확량 역시 와인 가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명품 와인 생산지에서는 포도나무 한 그루당 수확량을 엄격히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지치기를 통해 한 그루에서 단 한 송이의 포도만을 수확하고, 그 결과 나무 한 그루당 1kg 미만의 생산량을 유지하게 된다.

이렇게 제한된 수확량은 포도나무가 흡수한 미네랄과 영양분을 소수의 포도에 집중하게 만들어 그 품질을 극대화한다. 자연히 이런 포도에서 생산된 와인은 대량 생산된 와인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며 가격 또한 프리미엄을 형성하게 된다.

와인의 양조 과정에서도 가격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특히 숙성 방식이 큰 영향을 미친다.

지난 1월 프랑스 남부지역 랑베스크에서 와인 재배자들이 레드와인을 옮기고 있다.[사진 AFP/연합뉴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로 숙성하는 경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지만, 오크통을 사용하는 경우 비용이 급격히 증가한다. 프랑스산 225L 바리크(Barrique) 오크통 한 개의 가격은 약 700에서 1200유로 이상이며 3~4회 사용 후에는 교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오크통을 사용한 와인은 그만큼 가격이 높아지게 된다. 

또한 와인의 숙성기간도 원가에 포함된다. 스페인의 RESERVA 와인 등급은 최소 3년 이상 숙성된 와인이며 GRAN RESERVA 와인은 출시 전 최소 5년 숙성을 기본으로 하며 이 중 18개월간 오크 숙성을 해야 한다.

이런 긴 숙성기간은 생산비용에 반영되며, 출시 전까지 와이너리의 자금 회전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수확 후 즉시 만들어 출시하는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와인이나 이탈리아의 노벨로(NOVELLO) 와인은 출시 즉시 판매 매출로 이어져 캐시플로우(현금흐름)를 원활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만큼 가격이 낮아진다.

스타 와인메이커의 컨설팅 비용도 와인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첫 플라잉 와인메이커라고 불리우는 미쉘 롤랑(Michel Rolland), 지금은 작고한 슈퍼투스칸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쟈코모 타키스(Giacomo Tachis), 미스터 메를로라 불리우는 까를로 페리니(Carlo Ferrini), 이탈리아 양조가협회 회장인 리카르도 코타렐라(Riccardo Cotarella), 교황의 와인을 만든 로베르토 치프레소(Roberto Cipresso) 등의 컨설팅을 받아 와인을 만들면 신생 와이너리도 슈퍼루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불된 고가의 몇 천만~수 억원에 이르는 컨설팅 비용 역시 와인 가격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 밖에 병의 디자인, 코르크, 레이블도 와인의 원가에 포함된다. 예를 들면 가장 저렴한 스크류캡은 개당 약 0.05유로이지만, 프랑스의 테크니컬 코르크인 디암(DIAM)은 0.1~0.5유로, 고급 천연 코르크는 5유로를 초과할 수도 있다. 스크류캡과 비교하면 100배의 가격 차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셀러(와이너리) 출고가격이 공장인도(Ex-Work) 조건으로 50유로를 초과하는 와인의 경우 생산원가 자체는 품질 부분에 큰 차이를 미치지 않는다. 이 가격대 이상의 와인은 생산량과 희소성, 그리고 마케팅과 브랜드 명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르도 5대 샤토나 로마네 꽁띠(Romanée-Conti)를 필두로 한 부르고뉴의 많은 와인들은 단순히 생산원가를 넘어선 희소성과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명품 와인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와인들은 높은 가격을 유지하며, 특히 구매자의 생년 빈티지라면 경매에서 부르는 것이 값인 경우가 많다. 패션업계에 비교해보자면 에르메스의 켈리백이나 버킨백과 같은 럭셔리 아이템이 가지는 가치와 흡사하다.

브랜드의 희소성과 명성이 만들어내는 시장의 독특한 경제학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최근 월마트가 버킨백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듀프(Dupe)를 약 10여 만원에 출시하고 완판한 사례가 떠오른다.

와인의 세계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물론 소비자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와인의 종류나 가격대는 천차만별이지만, 가성비를 연구하기에 와인만큼 흥미롭고 탐구할 가치가 있는 세계도 드물다.

직접 다양한 와인을 시도하고 공부하며 각 와인의 가격 대비 매력을 발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자 배움의 경험이 된다. 명품 와인이 가진 역사와 브랜드의 아우라도 매력적이지만, 세상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와인이 많다는 점을 독자들이 인지했으면 한다.

홍미연 씨엠비 와인앤스피리츠 C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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