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65세 정년, 또다시 반쪽짜리 개혁으로 끝낼 것인가 [이근면의 시사라떼]
- 정년만 늘고 임금체계는 제자리인 실패 답습 말아야
임금 개편 없는 연장은 독…선 제도 개선, 후 시행 법제화 필요
[이근면 사람들연구소 이사장] 25년을 마감하면서 정년연장 논의가 막바지다. 노란봉투법, 생산인구 감소, 장시간 근로시간, 4.5일 근무제 등 각종 노동조건 얘기가 넘쳐난다. 백가쟁명은 저리 팽개치고 답정너의 상황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사회적 합의나 과거 사례, 미래 예측에 대해서는 모두 함구한다. 더욱이 생산성 논리가 배제돼 있는 현실은 국민 모두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65세 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 뜨겁다. 노동계는 거리로 나섰고 경영계는 인건비 폭증을 걱정하며 맞서고 있다. 정부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로 늦춰지는 만큼 퇴직 후 5년간의 소득 공백을 메우려면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다. 고령층은 생계, 기업은 부담, 청년층은 기회를 이야기한다. 세대와 계층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이 논의는 이미 10여 년 전에도 한차례 똑같이 있었다.
2013년의 약속, 절반만 지켜져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으로 법정 정년 60세가 의무화됐다. 당시 정부·노동계·경영계는 세 가지를 합의했다. 첫째, 호봉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한다. 둘째, 임금피크제와 같은 임금조정 장치를 함께 도입한다. 셋째, 고령 근로자를 위한 재교육·직무전환 프로그램을 확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년만 높이고 제도개편을 병행하지 않으면 기업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청년고용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반쪽이었다. 정년 상향은 강제됐지만 임금체계 개편은 거의 이행되지 않았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직무급제를 전면 도입한 기업은 7% 수준에 불과하고 90% 이상이 여전히 연공 중심의 호봉제를 유지한다. 임금피크제는 형식적으로 도입됐으나 실질적 임금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2년 대법원은 일부 기업의 임금피크제를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 판시하면서 제도 자체가 법적 신뢰를 잃었다.
고령자 직무 전환이나 재교육 지원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고령자 고용지원금’, ‘재취업 훈련사업’을 추진했지만 참여율은 10% 미만에 그쳤고 대부분 서류상 사업으로 남았다. 결국 정년만 늘었고 제도는 제자리였다. 인건비는 급등했으나 생산성은 오르지 않았고 청년 채용은 줄었다. 기업은 부담을, 노동자는 불신을, 청년은 불만을 얻었다. 그것이 2013년의 결산이다.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번 65세 정년 연장은 이 실패를 교훈 삼아야 한다. 정년을 늘리는 것은 입법으로 가능하지만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설계가 병행되지 않으면 또다시 갈등을 낳는다.
정년연장은 단순히 ‘나이를 늘리는 조치’가 아니라 세대 간 노동 계약의 재설계다. 고령자는 일할 기회를, 청년은 진입의 사다리를, 기업은 예측 가능한 인건비 구조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선행 조치’와 ‘후행 조치’를 구분해, 법으로 연결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임금체계 개편·인사제도 개선·청년고용 대책이 확정되지 않으면 정년 상향은 발효되지 않는다’라는 연동조항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 지난번에는 이 장치가 없었다. 정년 상향만 법제화되고 나머지 합의는 선언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순서를 반드시 바꿔야 한다.
단계적 모델과 실행 로드맵
정년연장은 한 번에 65세로 가기보다 단계적·조건부 모델로 접근해야 한다. 1단계(준비기)에서는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를 법제화하고, 고령자 재교육·전직지원·직무 재배치 제도를 의무화해야 한다. 기업은 이행계획을 정부에 제출하고, 노사정이 함께 평가하는 상설 협의체를 구성한다.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만 2단계로 넘어간다.
2단계(시행기)에서는 정년을 60세에서 63세, 이후 65세로 순차 상향한다. 업종·규모별로 유예기간을 두어, 중소기업에는 세제·보험료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청년층 채용유지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정년 상향을 일시 중단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이런 조건부 정년연장제는 일본이 이미 시행 중이다. 일본은 2013년부터 65세까지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했지만, 임금조정·직무전환이 병행되지 않은 기업은 정부 인증에서 제외됐다. 한국도 그런 구조적 통제가 필요하다.
정년보다 제도가 먼저 서야
국민은 “지난번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 이번엔 다를까?”라고 묻는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고 밀어 부칠 일은 아니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두루 살펴야 한다. 이것이 성공적인 정책을 약속하고 모두가 승리하는 길이다. 신뢰가 없으면 어떤 개혁도 지속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입법보다 실행의 순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정년을 높이는 법은 하루 만에 만들 수 있지만 그 법이 지속가능하려면 임금과 제도의 개혁이 먼저 서야 한다. 정부는 ‘정년 65세 추진 로드맵’에 반드시 임금·직무체계 개편 일정, 청년고용 보완정책, 기업 지원방안을 함께 담아야 한다.
정년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와 사회적 약속의 문제다. 55세에서 60세로 올릴 때의 실패는 단순한 행정적 실수가 아니라, “법이 제도보다 앞섰던 구조적 실패”였다. 이번에도 같은 길을 걸으면 65세 정년은 또다시 갈등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필자는 정년폐지론자이다. 일할 수 있는 의욕과 능력이 있다면 누구든지 일하라 말라를 강제할 수 없다. 단, 노동의 시장 가격에 충실 할 때의 문제다. 즉, 생산성에 적합한 국내외 형편에 맞는 임금말이다. 결국 노동의 결과인 상품의 국제적 경쟁력은 수출형 국가인 우리의 생존적 정책과 가치이다. 정년연장은 고령자에게 더 오래 일할 권리를, 청년에게 일할 기회를, 기업에게 지속가능한 구조를 제공해야 한다. 그 균형의 시작은 정년보다 제도를 먼저 세우는 것, 그리고 합의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번만큼은 숫자를 늘리는 개혁이 아니라, 신뢰를 복원하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갓 잡은 갈치를 입속에... 현대판 ‘나는 자연인이다’ 준아 [김지혜의 ★튜브]](https://image.isplus.com/data/isp/image/2025/11/21/isp20251121000010.400.0.jpg)
![딱 1분… 숏폼 드라마계 다크호스 ‘야자캠프’를 아시나요 [김지혜의 ★튜브]](https://image.isplus.com/data/isp/image/2025/11/09/isp20251109000035.400.0.jpg)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1세대 연극 스타’ 배우 윤석화, 뇌종양 투병 끝 별세…향년 69세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이데일리
이데일리
박나래·키→입짧은햇님 “방송 중단”…‘주사 이모’ 게이트, 어디까지 번지나 [종합]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세계는 탈탄소 급제동…'에너지 외딴섬' 자초하는 韓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브랜드 못지 않게 구조도 중요"…달라지는 F&B 딜 성사 기준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윤승용 아델 대표 "내년 JPM서 다음 파이프라인 미팅도…사노피 딜 끝 아닌 시작"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