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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실손, 왜 팔았나…“재정 건전성 강화 위해 개편 필요” 의견도

[실손보험 개편 논란]②
초기 연계 상품 판매로 이익 극대화
장기간 가입 유도하면 손실 만회 가능성↑

2024년 10월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2024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 미래세대를 위한 학술대회에 근막도수치료 관련 책이 놓여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정부가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 발표를 앞두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가운데 비급여·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개혁안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과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일부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진료를 받아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실손보험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사에 부담을 주는 도수치료 등 경증 진료에는 본인부담률을 높이고 보장을 축소하는 5세대 실손보험을 내년 6월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5세대 실손보험의 성공을 위해 앞선 실손보험 가입자를 5세대로 강제 전환하는 방안까지 언급했다.

문제는 2013년 4월 이전에 나온 1~2세대 실손보험에는 일정 기간이 되면 새로운 실손보험에 다시 가입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실손보험에 가입한 이들은 정부의 움직임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크로스 셀링, 시장점유율 방어 위해 단기 손해 감수

실손보험이란 사람의 상해 또는 질병으로 발생한 의료비를 보험사가 보상하는 상품을 말한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의료기관에서 지출한 의료비(입·통원, 처방조제) 가운데 약관에서 보장하는 항목을 보상한다. 판매 시기에 따라 1~4세대 상품으로 분류한다. ▲1세대 구실손(2009년 9월까지 판매) ▲2세대 표준화실손(2009년 10월~2017년 3월 판매) ▲3세대 신실손(2017년 4월~2021년 6월 판매) ▲4세대 실손(2021년 7월1일~)이 있다. 정부가 실손보험 개편 카드를 들고나온 것은 보험사들의 실손보험 적자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실손보험 보유 계약은 3579만건으로 이 중 생명보험사가 606만건, 손해보험사가 2973만건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보험료 수익을 보면 같은 해 기준 14조4429억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보험손익은 마이너스 1조9700억원을 기록했다. 보험손익은 보험료 수익에서 발생손해액과 실제 사업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보험손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것은 보험사가 가입자들에게 받은 보험료보다 나간 돈이 더 많다는 뜻으로 해당 상품에서 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2022년 기준 적자 규모가 1조5300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1년 새 손실이 약 4400억원(29%)가량 늘어난 셈이다.

주목할 점은 정부가 ‘강제 전환’까지 언급했던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보다 3‧4세대 가입자에서 손해율과 상승폭이 더 높다는 것이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실손보험 세대별 손해율을 보면 ▲1세대 110.5 ▲2세대 92.7 ▲3세대 137.2 ▲4세대 113.8로 나타났다. 전년도와 손해율을 비교하면 1‧2세대는 2.7%포인트(p), 0.5%p 떨어졌고 3‧4세대는 18.5%p, 22.3%p 증가했다.

그렇다면 보험사는 왜 손해를 감수하고 실손보험을 판매한 것일까.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1‧2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다른 보험 상품을 팔기 위한 미끼 상품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는 암보험 같은 정액 보장형 보험이 주를 이뤘는데, 이런 상품은 특정 질병이나 상황에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의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실제 지출한 병원비를 보장해 주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생겼고, 보험사는 실손보험을 활용해 정액보험 가입자를 확보하는 유인책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보험사가 실손보험에서 어느 정도 손해가 날 것이라고 예상했더라도 다른 수익성 높은 상품으로 가입자를 유도하는 크로스 셀링(연계판매)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실손보험은 2000년대 초반까지 끼워팔기 등 연계 상품으로 활용되는 것에 대한 제약을 받지 않았다. 정부는 2013년 실손보험의 단독 판매를 허용했지만, 실손보험만을 단독으로 파는 보험사는 극히 드물었다. 이후 끼워팔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금융위원회가 2017년 실손보험의 단독 판매를 의무화했다.

전문가들은 보험사들이 사실상 3세대 실손부터 단독으로 판매했는데, 손해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하면서도, 판매를 멈출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손보험이 국민 대다수가 가입하는 필수 보험처럼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제2의 의료보험’이라는 별명이 붙은 배경도 여기에 기인한다. 정부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손보험을 활용했고, 보험사들은 시장 점유율 유지‧확대를 위해 손을 놓을 수 없었다는 해석이다. 보험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3‧4세대 실손의 경우 장기적으로 보험료를 올릴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실손보험으로 재가입시킬 수 있어 가입자를 오랫동안 붙잡아둘 수 있다면 손해를 만회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보험료 인상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여서 민간 보험사가 손해율에 따라 자율적으로 올리기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의료비 지출 비중↑ 증가세도 빨라

일각에서는 민간 보험사의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실손보험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등 노인 인구 비중이 커지면서 의료비가 증가하고 국민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국민 의료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훨씬 빠른 추세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개인의 의료비 부담도 지속적으로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진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9.9% 수준을 기록했다. 5년 전(7.5%)과 비교하면 2.4%p 늘어난 수치다. 이는 OECD 평균을 앞지르는 수준이다. OECD 평균 의료비 지출 비중은 2023년 기준 9.2%를 기록했고, 5년간 0.5%p 상승했다. 

주요국 가운데 일본과 미국은 GDP 대비 의료비 비중이 각각 11.1% 16.7%로 높은 수준을 나타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9.7%로 우리나라보다 낮았다. 이들 세 나라의 5년간 GDP 대비 의료비 비중 증감률은 ▲일본 0.4%p ▲미국 0.2%p ▲오스트레일리아 -0.4%p로 집계됐다.

특히 도수·체외충격파·증식치료는 2023년 기준 손해보험사 전체 실손 지급 보험금의 18%가량을 차지해 보험사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치료를 포함하는 물리치료의 지급보험금은 2조원을 넘어섰는데, 도수치료의 경우 실손 지급 보험금 비중의 약 11%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2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실손보험 개혁안이 어느 정도 진척됐느냐는 질문에 “개혁을 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상당한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추진되어야 하고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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