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때 우산 씌워주는 VC 만들 것” [이코노 인터뷰]
김동환 UTC 인베스트먼트 대표
하나벤처스 성공 스토리 만든 주인공…UTC 합류로 업계가 주목
500억원 규모 펀드 2개 결성 목표…바이오 분야에 적극 투자할 것

[이코노미스트 최영진 기자] 2012년 중국어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내세운 스타트업이 설립됐다. 당시 중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투자사의 관심을 끌었고, 창업 1년 만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미래에셋벤처투자 등의 유명 투자사도 이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교육의 전문성을 인정받았고, 중국어 회화교육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는 이 스타트업에 직격탄이 됐다. 중국어 교육 수요가 꺾였지만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오프라인 교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시련이 이 스타트업을 덮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오프라인 교육 시장은 한마디로 급전직하했다. 그동안 받았던 투자금은 온데간데없어졌고 인력도 구조조정을 해야만 했다. 스타트업이 폐업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절치부심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경제 콘텐츠 유튜버 지원 사업을 새로 시작하면서 다시 성장 스토리를 쓰고 있다
이 스타트업을 초창기 때부터 지켜봤고 투자를 했던 한 투자자는 재기에 나선 이 스타트업에 20억원의 후속 투자를 결정했다. 2012년 창업 이후 ‘교육’이라는 포인트를 지키면서 사드나 코로나19 같은 예상치 못한 외부 이슈에 대응하면서 사업을 피봇팅했던 창업가의 집념을 높이 산 것이다. 투자자는 창업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구성원들과 함께 해결책을 만들고 구성원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이 투자자는 “창업가가 비를 맞을 때 투자금을 회수하는 게 아니라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투자자의 역할이다”라고 말한다. 이 투자자는 하나벤처스의 설립부터 성장을 이끈 후 업력 20년이 넘은 UTC 인베스트먼트의 대표로 지난해 자리를 옮겨 업계의 주목을 받는 김동환 대표다. 김 대표가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심사역으로 일할 때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동반자의 시선으로 눈여겨보면서 후속 투자를 진행했던 스타트업은 ‘어스얼라이언스’다.
김 대표는 후속 투자를 잘하는 투자자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투자 철학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반대하면 투자하지 않는다. 다만, 투자했던 곳이 어려워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잘 살펴보고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면 후속 투자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만난 성공한 창업자의 공통점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일에 두는’ 것이다.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지만, 그는 짧은 기간 내에서의 워라밸이 아닌 장시간 내에서의 ‘워크 앤 라이프 하모니’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사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긴 시간을 두고 일과 인생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뭔가 해결해야 할 때는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미국 시카고대 부속 경영대학원인 시카고 부스 스쿨 오브 비즈니스에서 MBA를 취득한 후 골드만삭스에서 고유계정 운용업무를 하다가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시아에서 심사역을 통해 스타트업 투자 업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2018년 하나금융지주가 설립한 하나벤처스 설립 때 대표로 합류하면서 하나벤처스의 성장을 주도했다. 하나벤처스에서 5년 동안 대표로 일하면서 펀드 운용 규모를 8500억원으로 올려놓아 하나벤처스의 현재를 만든 주인공으로 꼽힌다. 그는 리디·에이피알·타파스미디어·어스얼라이언스·이노스페이스 등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하나벤처스 역사를 만든 대표였지만, 5년 만에 설립 25년이 지난 UTC 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자리를 옮겨 업계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김 대표에게 “좀 더 있었으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을 것 같다”고 묻자 “아쉬운 점도 있지만, 하나금융지주 계열사 중에서 내가 대표직을 가장 오래 했다”면서 웃었다.

“조용히 꾸준하게 투자하는 게 UTC 인베스트먼트 장점”
하나벤처스에서 일궈 놓은 성공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UTC 인베스트먼트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UTC 인베스트먼트는 1988년 투자자문업을 했던 삼승투자자문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고 1998년부터 벤처투자를 시작했다. 1998년 현재의 사명으로 바꿨고 펀드 운용 규모는 8200억원 정도다. 그동안 IT·반도체·바이오·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했고 투자 포트폴리오는 240여 곳이다. 업력에 비해 인지도가 높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조용하게 꾸준히 투자하는 게 우리회사의 장점이다”면서 웃었다.
그가 UTC 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한 지 1년이 이제 지나갔고, 그동안 구성원들과 투자 철학을 공유하면서 업그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UTC 인베스트먼트는 올해 2개의 펀드결성을 추진 중이다.
하나는 바이오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 다른 하나는 콘텐츠와 IT 분야에 주로 투자하는 펀드이다. 눈에 띄는 것은 바이오 분야다. 시장에서 2020년대 초반만 해도 바이오 분야의 투자성적은 좋았지만, 최근에는 가장 어려운 분야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바이오 분야를 선택한 것은 그동안의 재정비 과정을 거쳐 바이오 분야가 다시 성장할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2022년을 기점으로 바이오 스타트업의 상장도 벽에 막혔고 성과도 좋지 않지만, 3~4년 동안 바이오 분야가 실패를 피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본다”면서 “지금은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바이오 분야에 다시 관심을 가질 시기라고 판단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처럼 김 대표의 투자 철학은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미래를 본다’로 요약할 수 있다. 남들이 가는 길을 가기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하므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조용했던 UTC 인베스트먼트가 김 대표의 합류로 이슈를 만들어내는 투자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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