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 소음, 운전자 안전과 직결
흡음재 활용 ‘정숙성 ’마케팅도 성황
롤스로이스엔 100kg 흡·방음재 들어가
수만 개의 부품이 모여, 하나의 차량이 완성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작은 부품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작고 하찮아 보일지라도, 그 어느 하나 대체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부품들이 차를 움직이고·길을 만들고·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지금부터, 미처 보지 못했던 부품들을 하나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편집자주]
롤스로이스 고스트 차량. [사진 EPA/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면 차가 반응한다. 이때 차량마다 내는 소리는 제각각이다. 실내로 스며드는 미세한 진동과 바퀴가 노면을 타고 전해오는 낮은 울림 등이 귀를 자극한다. 이 모든 것을 무심히 지우는 존재가 있다. 바로 흡음재(吸音材)다. 흡음재는 겉으로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용한 차의 품질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흡음재는 한자 뜻 그대로, 소리를 빨아들이는 재료다. 자동차의 ‘소리 관리’ 부품 중 하나다. 방음재(防音材)가 단단한 벽을 세워 소리를 막는다면, 흡음재는 스펀지처럼 소리를 빨아들이고, 진동을 잡아 울림을 없앤다. 차량의 고요함을 설계하는 핵심 부품으로 통한다.
소리를 잡는 덫
흡음재에는 주로 ▲발포 우레탄 ▲폴리에스터 섬유 ▲펠트 등 작고 많은 구멍이 있는 다공성 소재가 쓰인다. 거창한 소재는 아니다. 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자동차에 이 같은 소재가 쓰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소리는 공기의 파동이다. 엔진이 회전하거나 타이어가 노면을 밟을 때, 공기 분자들이 미세하게 앞뒤로 흔들린다. 이 파동이 귀에 닿으면 '소리'로 인식된다. 문제는 이 파동이 차 실내로 그대로 들어올 경우, 대화와 음악이 묻히고 장거리 주행의 피로감이 커진다.
흡음재는 이 파동의 길목에 놓인 '덫'이다. 수많은 미세 구멍(기공)으로 구성된 다공성 구조 속으로 소리가 들어가면, 공기 입자들이 좁은 통로를 비집고 나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 저항이 생긴다.
하나는 마찰 저항이다. 좁은 골목길을 달릴 때 벽과 어깨가 스치는 것처럼, 파동이 기공 벽과 부딪히며 에너지를 잃는다. 다른 하나는 점성 저항이다. 공기 분자끼리도 약간의 '끈적거림'이 있어, 좁은 길을 지나면서 서로를 붙잡아 속도를 늦춘다.
마찰과 점성 저항이 누적되면 파동의 힘은 급격히 줄어든다. 남은 에너지는 미세한 열로 바뀌고, 소리는 점점 작아져 귀에 닿기 전 사라진다. 흡음재에 숨은 과학이다. 물론 재질과 두께, 구조는 차마다, 부위마다 다르다.
먼저 엔진룸 방화벽에 쓰이는 흡음재는 고온과 기계 진동을 견뎌야 하기에 내열성이 뛰어난 발포 우레탄이나 복합 펠트가 두껍게 적용된다. 기공 크기도 상대적으로 크다. 엔진 고회전에서 나오는 중저주파 소음을 막기 위함이다.
문짝(도어) 내부는 조금 다르다. 도어 내부의 경우 상대적으로 얇은 구조물이어서, 두께를 최소화한 폴리에스터 섬유 매트가 주로 쓰인다. 바람이 문 틈을 타고 들어오며 만드는 고주파 풍절음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 기공이 촘촘하고 부드러운 소재가 주로 사용된다.
자동차 바퀴 위쪽을 감싸는 내부 덮개(휠하우스 라이너)에는 타이어가 노면과 맞부딪히며 발생하는 저주파 충격음을 흡수하기 위해 두꺼운 펠트나 내마모성이 강화된 발포재가 사용된다. 비·눈·자갈 등 이물질에 직접 노출되는 부위이므로 내구성과 방수성도 중요하다.
자동차 실내 천장을 덮는 마감재(루프 라이너)는 천장 쪽에서 울려오는 공명음을 잡기 위해 가벼운 발포 우레탄이나 얇은 폴리에스터가 쓰인다. 머리 위 공간은 차체 진동보다 실내 울림이 더 크게 전달되는 구간이어서, 흡음재 배치 위치와 면적이 설계의 관건이다.
경기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차량의 실내 유입 노면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고요함도 경쟁력
흡음재의 역할이 나날이 커지면서, 자동차 업계는 ‘고요함’을 상품성으로 내세우고 있다. 과거에는 엔진 출력과 주행 성능이 판매 경쟁의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실내 정숙성이 구매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여러 완성차 업체들 중 대표적으로 BMW그룹이 있다. BMW그룹은 롤스로이스의 ‘침묵’을 브랜드의 고급감과 연결시킨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부품의 투입 정도다.
BMW그룹에 따르면 신형 롤스로이스 고스트에는 차량 전반에 걸쳐 총 100kg에 달하는 흡음재와 방음재가 들어간다. 소리를 잡는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흡음재는 고급 대형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뿐 아니라 전기차에서도 적극적으로 쓰인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는 도어 패널과 루프 라이너, 바닥 매트 하부에 고밀도 흡음재를 겹겹이 배치해 바람과 노면 소음을 줄였다.
제네시스 G90 역시 차체 바닦과 휠하우스, 트렁크 벽면에 전용 흡음재를 촘촘히 채워 외부 소음 유입을 최소화했다. 전기차인 현대 아이오닉 6는 모터와 인버터 주변, 그리고 하부 배터리 케이스 둘레에 특수 흡음재를 덧대 전기 구동계 특유의 고주파음을 잡았다.
차량의 정숙함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운전 중 소음이 줄어들면 운전자의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고, 집중력과 반응 속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립도로교통연구소(VTI) 연구에 따르면 차량 내부로 유입되는 저주파 소음은 운전자의 주행 수행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구체적으로 저주파 소음이 증가하면 속도가 감소하고, 특히 야간 주행 시 차선 이탈 횟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차량의 정숙하면 정숙할수록, 운전자의 안전이 높아지는 셈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주행 중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을 줄이는 데 흡음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고려해야할 부분도 존재한다”며 “흡음재를 많이 넣을수록 차량의 정숙성은 좋아지지만, 차량 무게가 증가하는 단점도 존재하고, 또 소재의 친환경성도 살펴봐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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