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10포인트 글씨가 당신의 50대 이후를 결정한다 [스페셜리스트 뷰]
- 10분 만에 안경 나오는 나라 vs 40분 동안 눈을 검사하는 나라
50대 이후 생산성 시력이 결정…국민의 ‘교정 시력’이 국가 경쟁력 좌우

[박형진 브리즘(Breezm) 공동대표] 해외 리조트에 있는 수영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한 노부부가 풀사이드 베드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영화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장면인데, 한국 영화에서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탑골 공원에서 책 읽는 노인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해외에서는 평범한 일이 한국에서는 특이한 일이 되는 이유가 있다.
한국 노인은 왜 수영장에서 책을 읽지 않을까
무엇보다 책을 대하는 두 나라의 태도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여기에 ‘노안’에 대한 두 나라의 관심과 대응의 차이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노안은 보통 40대 중반부터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노화다. 가까운 거리의 사물을 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현상이다. 거리에 따라 초점을 맞추기 위해 수시로 두께를 조정해야 하는 수정체가 점점 딱딱해져 충분히 두꺼워지지 않는 것이 이유다. 수정체 주변 근육의 힘이 약해지는 것도 원인이다. 그래서 젊을 때 잘 보이던 가까운 거리의 글씨가 잘 안 보이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기기 등으로 인해 하루 종일 가까운 거리를 보다 보니, 30대부터 노안이 시작되는 추세다. 소위 말하는 디지털 노안이다.
한국에서는 노안이 오면 돋보기를 많이 쓴다. 돋보기는 말 그대로 가까운 거리만 더 잘 보기 위해 쓰는 안경이다. 먼 거리를 볼 때는 벗어야 하니, 하루에도 수시로 썼다 벗었다 반복하게 된다. 먼 거리가 잘 안 보이는 근시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먼 거리용 안경과 가까운 거리용 안경을 번갈아 가면서 써야 한다. 이 때문에 종종 안경을 잃어버리거나 번거로워서 ‘에이, 그냥 좀 덜 보고 살지 뭐’ 하게 된다.
이런 번거로움과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누진다초점 렌즈다. 누진다초점 렌즈 하나에는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초점이 들어가 있다. 먼 거리와 가까운 거리를 번갈아 볼 때, 안경을 바꿔 쓸 필요가 없다. 노안을 위한 최적의 솔루션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솔루션이 얼마나 잘 활용되고 있을까. 필자가 렌즈 회사 대표님께 들은 데이터로는 미국 노인의 60%가 누진다초점 렌즈를 쓴다고 한다. 반면 한국은 10%도 되지 않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게 될까.
일단 한국 안경 시장을 들여다보자. 한국 안경원 시스템의 속도와 가성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에서 안경은 언제든 매장에 방문하면 1시간 내로 맞춰서 나올 수 있는, 거의 표준화된 상품에 가깝다. 대부분의 안경 매장들은 다양한 종류의 렌즈를 재고로 갖고 있고 시력 검사용 장비와 렌즈 가공 장비도 갖추고 있다. 원스톱으로 빠르게 안경을 구매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
한때 안경원이 떼돈 번다고 소문났던 시절이 있었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고, 인터넷이 없어서 가격 비교가 안 되던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인구 4683명당 하나 수준으로 안경원이 난립해 있다. 미국은 인구 1만893명당 한 곳이다.
한국은 자연스럽게 경쟁이 치열해졌다. 취급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비슷비슷하다 보니, 결국 가격 경쟁으로 갔다.
동네마다 마주 보는 안경원끼리 치킨게임을 하느라, 렌즈를 포함해도 안경을 맞추는 데 10만원 선이 일상적인 가격이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국민 소득은 3배가 올랐는데, 안경 가격은 10% 떨어졌다는 통계도 있다.

싸고 빠른 한국 안경,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안경 객단가는 떨어지는데, 부동산과 인건비는 계속 오른다. 예약제가 여전히 정착되지 않다 보니 고객들은 주로 주말 오후에 몰린다. 한정된 주말 시간 동안 한 명이라도 손님을 더 받아야 돈을 벌 수 있다. ‘빨리빨리’는 성질 급한 한국 고객의 성향과도 잘 맞는다. 결국 안경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나에게 제대로 맞추는 ‘시력 보정 도구’가 아니라, 싸고 빠르게 집어 가는 ‘물건’이 됐다.
안경을 이렇게 싸고 빠르게 살 수 있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소비자에 따라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번에는 미국 안경 시장을 들여다보자.
한국은 눈과 안경에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군이 안과의사(Ophthalmologist)와 안경사(Optician) 2단계로 되어 있다. 안경사는 대학에서 안경 광학과를 졸업하고 국가 면허를 획득한 의료기사다. 안경 도수 조정을 전제로 법률로 일부 허용된 시력검사를 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총 3단계로 되어 있다. 안과의사와 안경사 사이에 검안사 (Optometrist)가 있다. 질환과 시력을 안과의사가 모두 담당하는 한국과 달리 질환은 안과의사, 시력은 검안사로 어느 정도 역할이 나눠져 있다.
미국의 검안사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4년 동안 검안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해서 의학박사는 아니지만, 일반인들은 검안사를 아이닥터(Eye Doctor)라고 부른다.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의료 전문가로 대접한다.
한국에서는 안과에서 안경을 처방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경원에서 시력검사를 받고 바로 안경을 구매한다. 미국은 시력검사와 안경 처방은 검안사에게 받고, 처방받은 렌즈를 판매하고 가공하는 업무는 안경사가 담당하는 것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검안사에게 안경 처방을 받는 데에만 보통 10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한국에서 그 돈이면 웬만한 안경을 맞출 수 있다.
처방전을 들고 안경원에 가면, 안경테와 렌즈에 최소 30-40만 원 정도를 쓰게 된다. 고급 사양으로 고르면 1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자가 창업한 3D 맞춤 안경 브랜드 브리즘의 뉴욕 맨해튼 매장도 렌즈를 포함한 안경 객단가가 한국보다 훨씬 높은 70만원에 육박한다. 가격은 비싸지만 대부분의 미국 안경 매장은 재고 렌즈나 가공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전문 공장에 렌즈 가공과 장착을 위탁한다. 오며 가며 시간이 걸리니 한국에서는 30분이면 완성될 안경이 미국에서는 짧아도 3~4일은 걸려야 완성된다.
‘안경 하나 맞추는데, 뭐가 그리 복잡하고 비싸?’ ‘유학생들이 한국 들어와서 안경 세 개씩 맞춰가는 이유가 있네’ 등 다들 한국 시스템을 칭찬한다. 분명 장점이 많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럴까라는 고민을 할 때다.
아직 젊은 나이에 근시가 좀 있을 뿐인 고객에게는 한국 시스템이 맞다. 하지만 노안이 시작되어 시력적 불편이 커진 사람들에게는 미국 시스템이 적합하다.

누진다초럼 렌즈 오명, 문제는 렌즈가 아닌 ‘시스템’에 있어
한국에서도 안경사가 아니라 안과 의사에게 가서 시력검사를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시력검사와 안경 처방을 의료 보험을 통해 진행할 때 보험 수가가 매우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제대로 하려면 30분은 족히 걸리는 이 프로세스를, 5분 진료가 보편적인 한국에서 몸값 비싼 안과의사가 직접 한다는 것은 지금의 상황으로는 도저히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대형 안과에서는 젊은 안경사를 고용해 시력검사를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의사는 마지막에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역할 정도만 하고 있다.
안경 처방은 단순히 1.0 시력을 기준으로 현재 시력이 모자란 것을 더해주면 끝나는 작업이 아니다. 장비를 통해 광학적으로 눈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다음으로 안경 착용자가 어떤 환경에서 눈을 많이 쓰는지, 어떤 부분에서 특히 불편을 느끼는지 꼼꼼히 챙기고 이를 반영해서 렌즈를 선택하는 과정이 필수다.
미국에서 브리즘과 협업 관계인 검안센터의 검안사가 안경을 처방하는 과정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미국에서 통상적으로 시력검사는 100달러 정도다. 다만 상세한 검안 옵션을 선택하면 300달러가 넘어가고, 무척 다양한 장비를 동원해 40분 이상 검사와 상담을 진행한다. 브리즘도 시력검사와 렌즈 상담에 30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하지만, 미국 검안사가 수행하는 시력검사 과정은 훨씬 더 길고 꼼꼼했다. 특히 누진다초점 렌즈는 고객의 생활 습관과 직업 등을 반영한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안경 착용자가 먼 거리를 많이 보는지 가까운 거리의 작업을 많이 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이 상황에서 가까운 거리는 70cm 거리의 노트북 화면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3m 거리의 거실 TV를 이야기하는 것인지와 좌우를 볼 때 눈동자를 돌려서 보는지, 고개를 돌려서 보는지 등의 습관과 환경에 대한 세심한 파악이 필요하다.
40분 동안 아이닥터의 상세한 설명과 상담을 거쳐서 처방된 누진다초점 렌즈와 10분 이내의 짧은 시력검사 과정을 통해 추천된 렌즈를 비교할 때 고객의 수용도와 적응도가 어느 쪽이 더 높을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
결국, 한국에서 누진다초점 렌즈는 어지러움과 부적응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인이 누진다초점 렌즈를 쓰고 가다 계단에서 넘어졌다더라’ ‘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다더라’ ‘어지러워서 못 쓴다더라’ 등 수많은 전설이 난무하다. 대부분 적응을 위한 꼼꼼한 상담과 충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월 2만원 투자 아끼지 말아야 할 때
“김 대리, 이 보고서 12포인트 폰트로 다시 출력해 줘.”
주변에서 임원 보고용 보고서를 10포인트 폰트로 작성했다가 야단맞았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정보는 10포인트 글씨로 흐른다. 신문·책·잡지도 10포인트로 작성된다. 내가 10포인트 글자를 읽지 못한다면, 그 글자들은 무의미한 배경으로만 보이게 된다. 50대 이후 우리들의 삶은 행동반경과 새로운 경험의 양이 줄어드는 시기다. 여기에 텍스트를 통해 입력되는 정보량마저 크게 줄어든다면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눈은 노출된 뇌로 불린다. 뇌는 두개골이라는 골방 속에 갇힌 어둠 속의 장기다. 이런 암흑 속 뇌를 돕기 위해 눈에서 엄청난 시각 신경다발이 뇌로 직접 연결,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량의 80% 이상을 뇌로 보내주고 있다.
시력이 떨어져 세상이 흐리게 보이면 그만큼 뇌로 들어오는 정보의 양도 줄어든다. 노인들의 교정시력, 즉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낀 이후의 시력이 낮아지면 치매 유병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수도 없이 나와 있다.
시력은 50대 이후의 삶에서 우리의 생산성과 건강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다행히 조금만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교정 시력을 확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많이 출시되어 있다. 오랜 공부를 기반으로 꼼꼼하게 시력검사를 진행하는 안경원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안경 한 번 바꾸면 못해도 2년을 쓴다고 생각하면, 50만원을 투자하면 월 2만원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삶의 질을 이렇게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도구에 월 2만원 정도 쓰는 것을 아까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50대 이후의 삶, 10포인트 폰트를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한 개인으로서의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한다.
한국, 최고 수준의 저시력 사회 오명
가장 대표적인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처로 꼽히는 곳이 안경원이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비용이 아닌, 내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대상이 안경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시력 관리는 국민 건강 차원을 넘어, 생산성과 국가 경쟁력 유지를 위한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관심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안경이 본연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안경 산업 종사자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절실하다.
머지않아 모두가 스마트글라스를 착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눈앞에 스마트폰 화면을 달고 다니듯, 우리의 시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이는 국민의 눈 건강을 더욱 위협하는 동시에, 시력을 통해 정보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 사이의 생산성과 삶의 질 격차를 크게 벌릴 것이다.
이미 나빠진 시력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적절한 방법을 활용하면 교정 시력은 충분히 향상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저시력 사회인 한국에서 전 국민의 교정 시력 향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결국 ‘10포인트 글씨’를 읽을 수 있는가 없는가가 인생의 질을 좌우한다.

필자는 3D 맞춤 안경 스타트업 브리즘의 공동창업자이자 공동대표다. 2006년 패션 아이웨어 전문 브랜드 ALO를 창업한 이후, 20년간 안경업계에 몸담아 왔다. 브리즘은 한국과 미국에 총 15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사례 연구 주제로 선정되어 올 가을학기 수업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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