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이 시장이 된다…팬덤 경제의 새 판 여는 ‘크레페’ [이코노 인터뷰]
- 남선우, 장동현 쿠키플레이스 공동대표
창작자와 의뢰자 1대1 커미션 돕는 플랫폼
영어 페이지 구축해 글로벌 확장 준비 중

[이코노미스트 라예진 기자] 만화·애니메이션·게임·아이돌 등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열정적으로 소비하는 이른바 '덕질' 문화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일부 마니아층의 취미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팬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이 거래되는 디지털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정보통신(IT) 스타트업 쿠키플레이스가 운영하는 커미션 플랫폼 '크레페(CREPE)'가 있다. 커미션은 팬이 창작자에게 원하는 콘텐츠를 의뢰하고 제작비를 지불하는 C2C(소비자 간 거래)다.
크레페는 창작자(커미션주)와 의뢰자(신청자)가 직접 소통하며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으로, 일러스트·영상·글·보이스 등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가 활발히 거래된다. 그중 상당수는 특정 캐릭터나 아이돌, 게임 세계관 등 개인의 '덕질 대상'을 중심으로 제작된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쿠키플레이스의 남선우, 장동현 공동대표를 만나 팬덤 경제의 새 판을 열고 있는 크레페의 강점부터 앞으로의 도약 등에 대해 물었다.

덕후들의 거래, 하나의 산업으로
'덕후들의 거래가 과연 시장이 될까'라는 초기의 회의적인 시선과 달리, 크레페의 성장 속도는 눈에 띄게 가파르다. 크레페의 2023년 매출은 12억원이었으나, 2024년에는 23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회사는 올해 매출이 42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간 거래액도 2023년 140억원에서 올해 470억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플랫폼 이용자는 37만명에 달한다.
크레페의 급성장은 '신뢰 기반의 거래 구조' 덕분이다. 과거 커미션 시장에서는 선입금 후 결과물을 받지 못하는 등 거래 분쟁이 빈번했다. 크레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뢰자의 결제 금액을 플랫폼이 중간에서 보관하고, 거래 완료 후 창작자에게 지급하는 안전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남 대표는 “이용자들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 신뢰가 곧 플랫폼의 경쟁력이다"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점은 크레페가 아직 별도의 해외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음에도, 해외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플랫폼을 번역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동현 공동대표는 “현재 해외 거래액이 전체의 약 7~8%를 차지한다. 영문 페이지도 없고 결제수단도 페이팔 하나뿐인데, 해외 유저들이 직접 사용법을 각국 언어로 번역해 SNS에 공유하고 있다. 번역기를 돌려가며 커미션을 신청하는 모습은 우리도 놀라울 정도"라고 말했다.
남 대표는 “서비스 차원에서는 모바일 앱 론칭과 영어 페이지 구축이 가장 큰 목표이다. 글로벌 유저들이 크레페에 더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UI와 UX를 전면 개선하고, 국가별 결제 환경도 확대할 계획이다. 커미션이 전 세계 팬덤 문화를 잇는 창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커미션의 진화, 덕질의 고도화
크레페의 경쟁력은 단순히 시스템에 있지 않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구성원 대부분이 ‘덕질의 당사자’라는 점이 서비스의 세밀함을 만든다. 남 대표는 “현재 21명의 팀원 모두 크레페의 헤비 유저이자 서브컬처 향유자예요. 문화의 내부인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문제와 니즈를 팀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유저의 불편을 곧바로 서비스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남 대표는 한영외고와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리안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어린 시절부터 만화, 게임, 아이돌 문화에 깊이 빠져 있었던 그는, 자신의 ‘덕질 경험’을 비즈니스의 언어로 확장했다.
장 대표 역시 덕후 출신이다. 대구과학고를 졸업하고 울산과학기술원(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에 진학했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쿠키플레이스의 공동대표로 합류했다. 그는 “학교보다는 사람을 통해 배우는 게 더 가치 있다고 느꼈다. 내 덕질이 소중하듯 다른 사람의 덕질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덕질이 지속가능하려면 이를 지탱할 구조가 필요하다. 크레페가 바로 그 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크레페가 성장하면서 거래되는 커미션의 종류도 눈에 띄게 다양해졌다. 남 대표는 “최근에는 ‘타로 커미션’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아이돌을 주제로 타로 점을 의뢰하는 사례가 많다. 단순히 카드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나의 캐릭터’나 ‘최애’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상상력과 점술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창작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캐릭터의 성격과 세계관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곡해주는 ‘플레이리스트 커미션’도 등장했다. 특정 인물이나 설정에 맞춘 창작 활동이 하나의 거래 콘텐츠로 발전한 것이다. 남 대표는 “덕질의 대상이 다양해지면서 커미션의 형태도 무궁무진하게 확장되고 있다. 유저들의 창의성이 시장의 폭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덕질이 단순한 팬 활동을 넘어 하나의 창작 경제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크레페는 그 중심에서 ‘지속가능한 덕질 생태계’를 구축하는 플랫폼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장 대표는 “우리 팀 대부분이 커미션 문화의 참여자이자 팬"이라며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즈니스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문화를 더 건강하게 키우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저가 크레페에 처음 진입할 때 허들을 낮추고, 이후에는 커미션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거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이나 충돌을 완화하는 것도 중요한 가치"라며 "더 많은 창작자가 활동하고, 더 많은 유저가 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커미션 시장을 넓히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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